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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노래[박목월 시/김성태 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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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노래를 부르면 한 폭의 동양화가 연상된다. 여백의 미를 좋아한 박목월 시인의 눈물이 그 빈자리에 찰랑 거리는 듯 하다. 이 시의 클라이막스는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 하는 대목이다. 여기에 얽힌 시인의 아가패적 비련을 알고 나면 더욱 이 시의 뜻이 애틋하고 아름다워 진다.
박목월 시인의 수필집 '구름에 달 가듯이' 에는 이별의 노래에 얽힌 사연이 실려있다. 주인공의 신분과 이름, 만난 계기나 시기는 고백하지 않았으나 그 여인에 대한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의 이야기가 서술되어 있다.

오월의 어느 날 오후 그의 사무실에서 첫 대면을 하고 눈발이 내리던 거리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그녀를 세 번째 해후한 날은 유달리 눈부시게 햇빛이 비친 맑은 날이었다. 저편에서 걸어오는 한 여인, 소복한 여인은 햇빛을 등으로 받으며 불꽃에 싸여 있었다. 석고처럼 창백한 그녀의 얼굴은 아름다웠다. 중병을 앓고 있던 그녀는 그 날밤 자신의 병실을 지켜주길 박목월 시인에게 청했다. 병실에서 두 사람은 건배를 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가을 어느날 오후 , 그녀는 세상을 떠났다. 그는 비통한 심정으로 "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하며 이별의 노래를 조용히 읊었다.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날 밤에 촛불을 밝혀 두고 홀로 울리라"라는 표현은 낭만적인 것 같지만 그는 "나는 햐얗게 재가 되어 삭아내린 기분'이라고 당시의 비애를 표현했다.


시인 박목월의 본명은 박영종이다. 1916년 경남고성에서 출생했으나 부친이 전근하면서 경북 월성군 건천읍 모량2리로 이사했다. 그는 박두진, 조지훈과 함께 청록집을 발간했는데 청록파 시인은 이 제목에서 유래한다.
빛나는 재질과 향토적인 서정으로 시의 형식과 내용에서 미학을 추구한 그는 시단에 금자탐을 세우고 1978년 3월 28일 눈을 감았다.


시 '이별의 노래'에 곡이 붙여진 것은 박목월 시인의 그 여인이 임종하고 그로부터 며칠이 지나서이다. 박시인이 대구에서 작곡가 김성태를 만난 날이었다. 당시 김성태씨는 해군정훈악대를 조직해 지휘를 맡고 있었는데 박목월 시인을 만나기 위해 대구에 온 길이었다. 두 사람이 어스름한 저녁 술집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박 시인이 새로 지은 시라면서 '이별의 노래' 가 적힌 쪽지를 김씨에게 내밀었다. 속으로 그 시를 읽는 순간 김성태씨의 가슴에는 뭉클하는 감동이 솟았고 너무나 아름답고 깨끗한 시상에 빨려들어갔다. 작곡가 김성태씨는 그 날 박 시인과 헤어져 여관에 돌아온 즉시 시의 감흥을 멜로디로 옮겼다. 오선지도 없어서 백지에 줄을 긋고 악보를 그렸다. 1952년 11월의 일이었다. 이 곡은 작곡 후 많은 성악가들이 다투어 독창회에서 불렀고, 특히 가을 독창회에서는 빠지지 않는 레파토리가 되었다. 작곡가 김성태 선생은 1910년 11월 서울 광희동에서 태어났다. 조부가 세운 교회에 다니면서 합창단원으로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는데 훗날 연희 전문학교 상과에 진학한 후 홍난파, 현제명, 채동선 등에게서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았다. 그는 연전 졸업 후 도쿄 고등음악학교(현 일본 국립음대) 작곡과에 유학했다. 그는 일본에서 작곡을 전공한 최초의 국내 작곡가이다. 집안이 부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음악공부를 반대해 돈을 주지 않았다. 그의 소망을 아는 부인이 부모 몰래 패물을 팔아서 준 돈으로 일본으로 떠났다. 그는 '아내가 아니면 오늘의 내가 없었을 것' 이라고 말하며 아내에게 감사해한다.


참고문헌; 이향숙 저 '가곡의 고향(1988) 한국문원'

박목월 저 '구름에 달 가듯이(1979) 삼중당'
4 Comments
이수현 2007.10.24 02:02  
가을밤 들으면 감동이 정말 남다른 곡이죠.
luft 2020.06.01 19:06  
새롭게 알게되어 갑니다 감사합니다
리미 2020.09.10 17:10  
이 글을 읽으니 예전에 수업 중에 배웠던 내용들이 다시금 생각이 납니다
노래 들어도들어도 참 좋습니다
리릭91 2020.10.30 14:10  
가을인데 듣기좋네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