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떼와 그리운 금강산
고향은 우리 모두의 시작이고 끝이다. 그곳을 중심으로 인류의 문화는 이뤄지고 발전해 왔다. 고향에 갈 수 없다고 할 때 우리는 절망한다. 농경민족의 고향은 죽을 때까지 떠날 수 없는 땅을 의미한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지향성만이 아니라 고향에 묻히지 않으면 안된다는 당위성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국민애창곡 1위
「그리운 금강산」이라는 가곡이 있다. 국민애창곡 1위로 뽑힌 노래다. 곡도 좋지만 그 곡에 담긴 국민적 향수가 이 노래를 온 국민의 애창곡으로 끌어올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노래는 단순히 부르는 것만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북녘에 있는 금강산은 갈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더욱 그리워지는 땅이다. 절망이야말로 희망의 反語(반어)이지만 그리움이라는 표현으로 조금은 위안받을 수가 있다. 「그리운 금강산」은 그리움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니/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북한에서 살았거나 해방전 수학여행을 갔던 사람을 제외하고는 금강산을 직접 가본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그 아름답다는 금강산을 상념의 유희로만 떠올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사업과 금강산개발은 항상 정책으로 떠올랐지만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때 재벌 총수가 북한의 고향을 찾아 금강산개발을 논의한 적도 있었지만 그뒤 이렇다 할 소식은 없었다.
그 재벌이 이번에는 북의 동포들에게 나눠줄 1천마리의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겠다고 밝혔다. 말이 1천마리이지 그 많은 소가 목동의 「이랴」소리를 들으며 북녘으로 향한다면 이 얼마나 장관이겠는가. 소가 도착하면 그때부터 금강산개발을 논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달나라보다 더 먼 북한을 소떼를 몰고 가겠다는 그 기발한 착상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지만 그 뒤에는 금강산개발을 추진하겠다는 뜻이 있다니 끈질긴 집념이다.
○「작은천사」가 부른 금강산
때마침 지구촌의 작은 천사들인 「리틀엔젤스」가 지구의 끝인 평양을 찾아가 노래와 춤을 선사하면서 「금강산 찾아가자」라는 동요를 불렀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로 시작되는 이 노래에 북한 관람객들은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기뻐했다고 한다.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도 않았던 62년,그 무렵 지구의 저편 코리아는 다만 전쟁과 빈곤과 고아로만 상징되는 나라였다. 그 잿더미 속에서 놀랍게도 한국 고유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리틀엔젤스」가 탄생되어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그마치 5천여회의 무대공연을 가진 바 있다.
그 「작은 천사」들이 평양을 찾아가 금강산을 노래했다니 감동적이다. 지구를 수없이 돌고돌아 한국을 심었던 그들이 이제야 1천만 이산가족의 고향을 찾은 것이다. 더욱이 한민족에게 금강산은 금수강산을 대표하는 마음의 고향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새삼스럽게 「두고 온 산하」 「잃어버린 땅」이라고 표현해서는 분단은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
서로의 출발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돼야 한다. 남과 북,어느쪽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대결로는 남북교류는 이뤄지기 어렵다. 북의 문이 완고하게 닫힌 이유가 어디에 있든 국토의 일부로서 명산을 개발해서 한민족의 고향으로 만드는 일은 바람직하다.
○누구나 갈 수 있어야
이산가족교환사업은 결코 정치적인 목표가 될 수가 없다. 1천만 가족의 한도 풀지 못하면서 어떻게 통일을 감히 논의할 수가 있는가. 4천만민족이 그리워하기만 하고 정작 서로가 볼 수 없는 고향은 마치 「그리운 금강산」처럼 저만큼 떨어져 있다. 겨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다보는 금강산이 아니라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인 휴전선 최북단 고성군 현내면 대진리에는 실향민의 한을 담은 망향의 비가 서 있다. 눈앞으로 해금강 희불바위가 펼쳐 있는 곳이다.
『황토마루 그리운 고개 넘어 그리운 고향/꿈엔들 잊힐리야 우리의 소원/메나리가락에 목들이 메어/어머님 품안으로 안기어 가는 이 길은 고향의 길/불망의 길』
비문에 새겨진 실향민들의 금강산을 향한 염원이다. 고향의 영감으로 만들어진 노래들은 그리움을 더할 뿐,망향을 극복하지 못한다. 금강산은 누구나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산」으로 서있어야지 「그리운 금강산」만으로는 통일의 염원을 실현시킬 수 없다.
장마로 떠내려온 황소는 남쪽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또 북으로 가는 소떼는 멀지않아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갈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그것도 동포들은 왜 안 되는가.
申瓚均 논설고문(文化칼럼)
[세계일보] 1998-05-11
○국민애창곡 1위
「그리운 금강산」이라는 가곡이 있다. 국민애창곡 1위로 뽑힌 노래다. 곡도 좋지만 그 곡에 담긴 국민적 향수가 이 노래를 온 국민의 애창곡으로 끌어올린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노래는 단순히 부르는 것만이 아니라 한 시대를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소리」이기 때문이다.
북녘에 있는 금강산은 갈 수 없다는 절망감 때문에 더욱 그리워지는 땅이다. 절망이야말로 희망의 反語(반어)이지만 그리움이라는 표현으로 조금은 위안받을 수가 있다. 「그리운 금강산」은 그리움으로 끝을 맺는다.
『그리운 만이천봉 말은 없어도/이제야 자유만민 옷깃 여미니/그 이름 다시 부를 우리 금강산』
북한에서 살았거나 해방전 수학여행을 갔던 사람을 제외하고는 금강산을 직접 가본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 국민들의 마음속에는 그 아름답다는 금강산을 상념의 유희로만 떠올린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산가족의 고향방문사업과 금강산개발은 항상 정책으로 떠올랐지만 아직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때 재벌 총수가 북한의 고향을 찾아 금강산개발을 논의한 적도 있었지만 그뒤 이렇다 할 소식은 없었다.
그 재벌이 이번에는 북의 동포들에게 나눠줄 1천마리의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넘겠다고 밝혔다. 말이 1천마리이지 그 많은 소가 목동의 「이랴」소리를 들으며 북녘으로 향한다면 이 얼마나 장관이겠는가. 소가 도착하면 그때부터 금강산개발을 논의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달나라보다 더 먼 북한을 소떼를 몰고 가겠다는 그 기발한 착상에 감탄을 금할 수가 없지만 그 뒤에는 금강산개발을 추진하겠다는 뜻이 있다니 끈질긴 집념이다.
○「작은천사」가 부른 금강산
때마침 지구촌의 작은 천사들인 「리틀엔젤스」가 지구의 끝인 평양을 찾아가 노래와 춤을 선사하면서 「금강산 찾아가자」라는 동요를 불렀다.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 볼수록 아름답고 신기하구나』로 시작되는 이 노래에 북한 관람객들은 박수로 박자를 맞추며 기뻐했다고 한다.
전쟁의 상흔이 채 아물지도 않았던 62년,그 무렵 지구의 저편 코리아는 다만 전쟁과 빈곤과 고아로만 상징되는 나라였다. 그 잿더미 속에서 놀랍게도 한국 고유의 문화예술을 알리는 「리틀엔젤스」가 탄생되어 세계 곳곳을 누비며 자그마치 5천여회의 무대공연을 가진 바 있다.
그 「작은 천사」들이 평양을 찾아가 금강산을 노래했다니 감동적이다. 지구를 수없이 돌고돌아 한국을 심었던 그들이 이제야 1천만 이산가족의 고향을 찾은 것이다. 더욱이 한민족에게 금강산은 금수강산을 대표하는 마음의 고향이어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새삼스럽게 「두고 온 산하」 「잃어버린 땅」이라고 표현해서는 분단은 결코 극복되지 않는다.
서로의 출발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돼야 한다. 남과 북,어느쪽이 주도권을 잡기 위한 대결로는 남북교류는 이뤄지기 어렵다. 북의 문이 완고하게 닫힌 이유가 어디에 있든 국토의 일부로서 명산을 개발해서 한민족의 고향으로 만드는 일은 바람직하다.
○누구나 갈 수 있어야
이산가족교환사업은 결코 정치적인 목표가 될 수가 없다. 1천만 가족의 한도 풀지 못하면서 어떻게 통일을 감히 논의할 수가 있는가. 4천만민족이 그리워하기만 하고 정작 서로가 볼 수 없는 고향은 마치 「그리운 금강산」처럼 저만큼 떨어져 있다. 겨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다보는 금강산이 아니라 누구나 갈 수 있는 곳이 되어야 한다.
금강산으로 가는 길인 휴전선 최북단 고성군 현내면 대진리에는 실향민의 한을 담은 망향의 비가 서 있다. 눈앞으로 해금강 희불바위가 펼쳐 있는 곳이다.
『황토마루 그리운 고개 넘어 그리운 고향/꿈엔들 잊힐리야 우리의 소원/메나리가락에 목들이 메어/어머님 품안으로 안기어 가는 이 길은 고향의 길/불망의 길』
비문에 새겨진 실향민들의 금강산을 향한 염원이다. 고향의 영감으로 만들어진 노래들은 그리움을 더할 뿐,망향을 극복하지 못한다. 금강산은 누구나 「언제든지 갈 수 있는 산」으로 서있어야지 「그리운 금강산」만으로는 통일의 염원을 실현시킬 수 없다.
장마로 떠내려온 황소는 남쪽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또 북으로 가는 소떼는 멀지않아 판문점의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갈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그것도 동포들은 왜 안 되는가.
申瓚均 논설고문(文化칼럼)
[세계일보] 1998-0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