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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성악가 1백인이 뽑은 최고의 한국 가곡[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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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문조사]작곡가·성악가 1백인이 뽑은 최고의 한국 가곡, 작곡가, 성악가
2.「그리운 금강산」 제친 「가고파」 / 李殷相과 金東振의 합작


자부심과 개성이 강한 응답자들이 만만한 곡을 추천할 것 같지 않았지만, 의외로 순위에 든 곡들은 대중적이고 무난했다. 대다수가 추천곡 세 곡 속 에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곡과 대중적 認知度(인지도)를 고려한 곡을 균형감 있게 올려놓았던 것이다. 그 결과 단연 두 곡이 부각되었는데 바로 「가고 파」와 「그리운 금강산」이다. 이 두 곡은 한 시대를 대변하는 민족의 노 래로 널리 애창되어 왔다.
前者(전자)는 식민지 조국의 정서를, 後者(후자)는 분단 조국의 정서를 「 그리움」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우리 정서에 실어 표현하고 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근소한 차이로 「가고파」가 「그리운 금강산」을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30명이 추천한 「가고파」(李殷相 詩, 金東振 곡)는 『한국 사람이면 좋아 할 수밖에 없다』(張淑·성악)는 말대로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내고향 남 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란 구절을 감흥에 젖어 따라 부르는 노래 . 「한국 서정가곡의 교과서」(閔庚燦·평론), 「한국 가곡의 모든 요소를 다 갖춘 한국 가곡의 대표」(金奎桓·작곡), 『우리 민족의 대표 정서인 향수를 시와 곡의 조화 속에 어떤 노래보다도 잘 표현하고 있다』(崔永燮· 작곡)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 곡은 金東振씨가 숭실중학 재학시절 열아홉 살에 만든 곡이다. 담임 梁柱東(양주동) 선생의 강의로 李殷相(이은상) 시인의 「가고파」를 알게 된 뒤, 玄濟明(현제명)씨 독창회에서 자작곡 「가고파」를 듣고서 나는 저보 다 더 나은 곡을 작곡하리라 결심하고 만들었다고 한다.


李殷相과 金東振의 합작

이은상 시인의 노래말을 좋아한다는 사람도 많았다. 이은상씨가 만주에서 고향인 마산 앞바다를 그리워하며 쓴 시조로 알려져 있는데, 단순히 마산 앞바다라기보다 해방된 조국을 그리는 마음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많다. 金東振씨가 시조 열 편 중 네 수를 먼저 작곡하고, 40년 후에 나머지 작곡을 완성하였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전편 네 수이다. 실향민 처지가 된 金東振씨는 통일된 조국을 그리는 마음으로 이 곡을 썼다는데, 시인과 작곡가의 처지는 달랐지만 가사 내용은 기가 막히게 들어맞았던 것이다.

『고향을 그리는 마음, 통일조국에 대한 염원, 죽음을 앞에 둔 종교적 경건 함까지, 인생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노래』라고 金東振씨는 자신의 노래를 평했다. 그가 6·25 때 남으로 오는 피난길에서 검문에 붙들렸다가 「가고 파의 작곡가」라 하여 무사통과된 일화도 유명하다.

1980년대 중반까지 애창가곡 부동의 1위는 「가고파」였으나 이후, 이 곡과 자리다툼을 하게 되었다. 25명의 추천을 받아 2위에 오른 「그리운 금강산 」(한상억 시, 최영섭 곡). 이 노래에 대해선 「말이 필요없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부분 덧붙이는 말이 없었다. 「한국 가곡사 中·後半期 최고 의 히트작」(金申煥·방송인)이라는 한마디로 대변되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평소엔 아무리 빨라도 2주 이상 걸려야 완성하는데, 이 곡은 하루 만에 멜로디와 피아노 반주까지 완성했습니다. 시를 받아든 순간 구절구절 우러 나오는 시대의 아픔이 가슴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작곡자 崔永燮씨의 회고담이다. 한신평 KBS 라디오국장은 『이 노래로 인하 여 방송사가 우리 가곡 보급으로 국민 정서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가 再考(재고)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1970년대 우리 가곡이 대중화되는 데 는 「내마음의 노래」라는 TV 프로그램 등 방송이 기여한 바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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