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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엄정행 노래30년 기념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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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립고 아쉬움에 가슴조이던/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내 누님같은 꽃이여」.
음악인생 30년을 맞은 테너 엄정행씨(55)가 원숙한 국화의 이미지로 돌아왔다. 68년 가졌던 첫독창회를 기념해 가곡음반 「내마음의 강물」(삼성뮤직)을 이번주 출시한 엄씨는 오는 8월31일 세종문화회관대강당에서 노래30년 기념독창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그새 귀밑에는 하얀서리가 내리고 눈가에는 세월의 더께가 내려앉았지만 푸근한 미소만은 여전하다. 엄씨만큼 음반을 많이 낸 성악가가 국내에 또 있을까. 30년간 녹음한 음반이 LP 22장, CD 10장. 그중에는 한국 최초의 스테레오 LP와 최초의 CD도있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은 단 한장의 CD도 내지 않았다. 흔한 독창회 한번 열지 못했다. 그동안 모교인 경희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데 몰두했습니다.

음악교사였던 아버지의 인생을 대물림하나 봐요. 이젠 누가 물으면 성악가라기보다 교육자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시골에서도 축음기를 갖고있던 엄씨의 아버지. 어린 그는 테너 유시 비욜링을 들으며 성악가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고교시절 배구선수였던 엄씨는 음대 진학후 쓰라린 좌절을 맛봐야 했다. 경남 양산에선 알아주는 「가수」였으나 학창시절 발성법 등 기본기를 익히지 못한 탓에 노래연습때면 목구멍에서 피가 솟구치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했던 것이다.

엄씨는 급기야 강의를 「땡땡이」치며 영화 「피서지에서 생긴 일」을 하루에 3번 보는 생활에 빠져들었다. 휴학을 결심하려는 찰나 이탈리아 유학에서 돌아온 홍진표교수를 만났습니다. 그의 지도 아래 기초부터 다시 시작했죠. 독일과 이탈리아가곡을부르기 위해 외대생 하숙집을 들락거리며 어학공부에 매달리기도 했습니다.

작곡가 장일남씨의 도움으로 첫음반을 낸 게 72년. 때마침 개국한 FM방송국은 유일한 한국가곡음반이었던 씨의 레코드를 밤낮으로 틀어댔다.「목련화」 「가고파」 「비목」 「희망의 나라로」…. 그 노래들은 이번 음반에도 고스란히 실렸다. 「오늘」 「또 한송이의 나의 모란」 「옛날은 가고 없어도」 등 젊은음악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곡들도 많다.

엄씨는 목소리가 한창때처럼 매끄럽고 투명하진 않지만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평한다" 저는 학생들에게 「소리에 살지말고 노래에 살라」고 가르칩니다. 좋은 목소리를 타고 나긴 쉽지만 노래로 남을 감동시키긴 어렵기 때문입니다" 좋은 테너의 제일 조건으로 인간성을 꼽는 엄씨. 소리에 인간적인 무게가 실려야 노래가 된다고 믿는 그는「양심이 허락할 때」까지 노래를 부르다 조용히 가고 싶다고 말했다.

☞ 98년 04월 14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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