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歌曲은 정녕 죽었는가
한국인의 詩的 감수성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해 온 歌曲은 1990년대 이후 우리 곁을 떠나고 있다. 이 詩노래의 부활은 불가능한가
[주요내용]
-순수예술의 암흑기
-가곡은 詩노래
-가곡 쇠퇴의 원인
-가곡 부흥을 위한 몇 가지 제안 / 물과 소금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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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예술의 암흑기
우리 歌曲(가곡)은 죽었는가? 가곡을 작곡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물음에 답하는 심정은 한없이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점을 먼저 말해둔다. 그러나 이 죽음에 대한 話頭(화두)는 분명 부활을 염두에 둔 질문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삭막해져 가는 이 시대에 우리 가곡의 필요성을 전제로 한 질문으로 받아 들여 한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작곡가나 성악가를 전문적으로 양성할 기관이 全無(전무)하던 1920년대 우리 歌曲은 소수의 해외 유학파들에 의해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후 몇몇 대학에 음악科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현재는 서울은 물론 지방의 여러 대학에도 음악학부 또는 음악科가 개설되어 성악·기악은 물론 매년 다수의 作曲 전공자를 배출해 내고 있다. 어느 대학의 작곡 전공자 모집 인터넷 사이트에는 「음악적 감성이 우수하고 창작의 의지가 있는 자로 이 시대에 공감할 수 있는 曲을 작곡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를 뽑는다는 글귀도 보인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성악가만도 무려 2000여 명을 넘으며 가곡을 작곡 하는 인원수도 만만치 않다. 그뿐이 아니다. 가곡을 전문으로 연구하고 작곡하는 한국가곡학회, 한국가곡작곡가협회, 가곡작사가협회, 서울중등음악 가곡연구회 등 여러 모임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歌曲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는 데에도 가곡이 불려지지 않고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에 필자는 그동안 우리 가곡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1990년대 들어 우리 가곡 이 급격히 퇴조하게 된 원인과 정신적 양식이 되는 가곡의 부흥을 위한 몇 가지 제안, 그리고 가곡이 불려져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간략히 기술하고자 한다.
가곡은 詩노래
가곡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詩를 노래로 만든 것이 가곡이므로 「詩노래」라고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가곡은 동요나 대중 가요와는 구별되는 것이며 사전적 풀이로는 「성악을 위한 노래」, 「예술 적인 의도로 창작된 노래」, 「詩와 가락과 반주로 이루어진 노래」 등으로 설명된다.
우리나라에서 가곡의 기틀을 잡은 분은 바로 홍난파(1897∼1941) 선생이다 . 1920년에 만들어진 「봉숭아」는 우리 가곡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周知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20년대는 우리 역사상 암흑기였다. 이때 발표된 「 봉숭아」는 그대로가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었다.
「울밑에 선 봉숭아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더 말하지 않아도 노랫말에서 느껴지는 정서와 비유가 가슴에 와 닿는다.
『예술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이 참으로 어울리는 詩노래였다. 「봉 숭아」 외에도 홍난파 선생은 민중들의 정서와 恨을 오롯이 그려낸 「옛 동 산에 올라」 「성불사의 밤」 「장안사」 「사랑」 「고향의 봄」 등 주옥 같은 곡들을 작곡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음악 정서를 키우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홍난파 선생의 뒤를 이어 名曲(명곡)을 남긴 작곡가와 작품을 대략 꼽아보 면, 현제명(1902∼1960)의 「고향생각」 「산들바람」, 박태준(1900∼1986 )의 「思友(사우)」, 이흥렬(1909∼1980)의 「바우고개」 「코스모스를 노 래함」, 김대현(1917∼1985)의 「자장가」, 김성태(1910∼)의 「이별의 노 래」 「동심초」, 김동진(1913∼)의 「가고파」 「봄이 오면」, 금수현(19 18∼1992)의 「그네」, 채동선(1901∼1953)의 「고향」, 조두남(1912∼198 4)의 「선구자」 「그리움」, 윤용하(1922∼1965)의 「보리밭」, 나운영(1 922∼1993)의 「달밤」, 김규환(1925∼)의 「님이 오시는지」 등이 있는데 이는 모두가 널리 애창되던 가곡들이다. 그밖에 월북 작곡가 중에도 김순 남의 「자장가」 「산유화」, 안기영의 「마의 태자」 「이별」, 이건우의 「봄」은 名曲으로 인정받는 곡들이다.
이렇듯 詩와 曲이 만나 탄생된 가곡들은 민중들의 恨을 달래고 정서를 대변 하며 암울한 일제시대를 거쳐 가난의 질곡(桎梏)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 던 1960∼70년대까지 널리 불리며 사랑을 받았다. 가곡이 무조건 어렵고 고 상한 것이라는 인식이 그 시절에는 없었다. 방송을 통해 간단없이 가곡이 흘러나오고 학력과 음역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곡을 즐겨 듣고 부르며 詩心 에 잠기고 감동에 젖었던 것이다. 만일 그토록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 가곡이 없었다고 가정해 보라. 그야말로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 아니었겠는가 . 너나없이 가난하고 힘겨웠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난날을 아름답게 추억하 는 것은 정겨운 가곡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런 대로 우리 가곡의 열기가 전국을 누볐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가곡 듣기만큼」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정다운 가곡이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말았다.
가곡 쇠퇴의 원인
1990년대 들어 가곡이 우리 곁에서 멀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요인이 있겠으나 그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만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분별한 일회성 소비문화의 유입과 상업주의에 영합한 대중매체들에 의한 가곡 외면 현상이다. 시청률 경쟁을 일삼는 방송매체들은 主시청 그 룹인 10대 층만을 겨냥 혼란스런 랩이나 팝송, 오락 프로그램 위주로 방송 을 내보냄으로써 가곡은 점차 설자리를 잃고 만 것이다. 이에 따라 대중들 의 思考(사고)의 깊이가 그만큼 얕아졌으리란 점은 불문가지이다. 여러 방송사 가운데 현재 가곡을 내보내는 곳은 KBS FM의 「정다운 가곡」 과 KBS 1TV 「열린음악회」의 한 부분, 그리고 연례 행사로 치르는 MBC 「 가곡의 밤」정도가 전부이다.
둘째, 음악인 스스로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누구보다 우리 가곡을 사랑하며 이를 가르치고 배워야 할 대학에서 우리 가 곡 연주를 회피하고 경시하는 풍조는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한다. 또 성악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입학하는 대학은 물론 특수 중·고등학교 입시에서도 우리 가곡 연주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뜻도 모르고 발음도 생소한 이태리 가곡을 주로 부르게 하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내의 각종 성악 콩쿨에서도 예외없이 독일이나 이태리 가곡을 정해놓고 부르게 한다. 그러다 보니 성악 전공자마저 우리 가곡에 대한 이해 정도가 떨어지고 발성법 또한 우리말 발음과는 거리가 있어 가곡이 생활 속에서 멀어지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셋째, 초·중등학교 교육에도 큰 문제가 있다. 순수는 순수로 통한다는 말 이 있듯이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동요 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가곡 쇠퇴와 연관성이 있다.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는 우리 가곡이 여러 곡 실려 있어 청소년들이 우리 가곡을 배울 기회가 있지만, 많은 학교에서 학 생들의 취향에 맞추어 대중성 있는 노래로 교과서를 재구성해 가르치는 일이 다반사이다.
한편 고등학교 과정에 가면 5種의 교과서가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학입시 에 보조를 맞춘 듯 외국 가곡 일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찍이 공자는 인 간의 인격 형성 과정을 일컬어 시에서 일어나(興於詩) 예로 뜻을 세우며(立於禮) 음악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다(成於樂) 하였거니와 오늘날 우리의 학교 음악교육은 철학성의 결여는 논외로 하고서라도 지도자의 전문성과 지 도의 일관성 면에서 커다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넷째, 가곡의 밑거름이요 원천이 되는 문학의 대중성 상실도 오늘날 가곡의 퇴조와 무관치 않다. 최남선와 이광수로 대표되는 2人 문단시대를 지나 낭 만주의와 순수문학 운동이 일어났던 1920∼30년대 시인들의 詩들과 1940년 대에 활동한 청록파나 생명파 詩, 그리고 이은상 등 몇몇 시인들의 詩가 우 리 가곡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수준 높은 정통 순수詩의 전 통이 그 맥을 잇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학인 단체인 한국문인협회에 정식 가입된 시인만 해도 수천 명에 달하지만 지나 친 주관성과 난해성 등으로 몇백 명에 불과하던 지난 문단시대의 榮華(영화 )를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 새로운 가곡 탄생을 불러오지 못하는 또다른 원인이 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가곡 부흥을 위한 몇 가지 제안 / 물과 소금 같은 존재
한때 국민적 사랑을 받던 우리의 가곡, 제목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돌 만큼 아름답고 더러는 아픈 추억이 서려 있는 노래. 소중한 우리의 가곡을 다시 살릴 방도는 없을까?
먼저, 무엇보다 언론매체들의 각성이 요구된다. 그중에서도 방송 매체들의 우리 가곡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방송사들은 더 이상 無益(무익)한 시청률 경쟁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교양 있는 무언의 多衆(다중)을 위해, 나아가 국민들의 知的 수준에 걸맞은 문화수준의 향상 을 위해 교양 프로그램을 더 많이 만들어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先導(선도 )해 나가야 한다. 만일 방송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부 에서 적극 나설 필요도 있다. 대중 문화를 고급화시키고 순수예술을 옹호, 전파하는 책무가 바로 문화관광부를 비롯한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초·중등학교를 비롯하여 전문 음악인을 양성하는 대학 등 교육기관 이 우리 가곡 중흥에 앞장서야 한다. 음악대학은 물론이고 성악을 전공하려 는 학생을 선발하는 예술계 중등 학교에서 학생을 뽑을 때 반드시 우리 가 곡을 지정곡으로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早期 교육의 중요성을 내세운다 해도 발성법이 중요한 성악 초심자 시절에 서툰 외국어 발음을 강요하는 풍 토는 문화 사대주의에 다름 아니다. 또 현재도 어느 정도는 지켜지는 줄 알 지만 성악가들이 음반을 제작하거나 연주회를 할 때 일정 부분 우리 가곡을 삽입케 하는 쿼터제 도입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가곡 창작과 연주에 관련되는 작곡가나 시인, 성악가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먼저 가곡을 작곡하는 작곡가들은 그 동안의 기법에 안주하지 말고 장단·화성·음계를 포함, 우리 어법에 맞는 우리만의 새로운 가곡 창작에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나치게 예술성만을 고집하여 고 도의 발성을 요구하는 곡들만 고집하다 보면 친근감이 떨어지고 대중 속에 뿌리내리기가 더욱 어렵다.
시인들 또한 作詩(작시)를 전제로 詩를 창작하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작곡자 로서의 바람은 우리나라 순수 서정시의 토양이 기름져짐으로써 가슴을 울리 는 아름다운 詩들이 量産(양산)되었으면 한다. 근자에 흔히 보이는 넋두리 調(조)의 사설시나 음률 파괴의 난해시, 언어의 조탁이 덜 된 詩들은 좋은 가곡이 탄생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곡을 연주하는 성악가들 역시 詩의 내용과 감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 하고 전달하는 발성을 기본으로 삼아 연주에 임해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가곡은 「詩노래」인 까닭에 무엇보다 전달이 중요하다. 따라서 성악가들은 무대에서 高난이도의 발성을 자랑하기에 앞서 정확한 발음으로 감정 전달에 힘을 쏟아야 한다.
물과 소금 같은 존재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사막을 건너가는 나그네 길이라고. 가도가도 끝없이 내리쬐는 뙤약볕과 거친 모래바람과 간단없이 밀려오는 갈증. 나그네의 위 안은 오직 하나, 기어이 가서 닿아야 할 멀고 먼 오아시스뿐이다.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땅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 시린 천연수, 그것만이 나그네의 갈 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물만으로는 탈수 증세를 이겨내지 못한 다. 물과 함께 보충하는 한 줌의 소금이 또한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예부터 참으로 귀한 것을 꼽을 때 물과 소금을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지금 세상에 판을 치는 인공의 탄산음료는 우선 입에 달고 자극적이어서 자주 찾게 되지만 몸속 깊은 곳의 갈증을 근원적으로 풀어주지 못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지금은 분명 가곡의 위기 시대요 암흑기이다. 그러나 나는 머 지않아 우리 가곡이 다시금 그 가치를 인정받아 화려하게 부활할 것을 믿는다. ●
이 자료는 작곡가 이수인선생이 월간조선 2000년 10월에 게재한 것입니다.
李秀仁 (작곡가)
1939년 경남 마산 출생. 서라벌예대 작곡가 졸업. 대한민국동요대상 수상. 가장 문학적인 작곡가상 수상. 5·5문화상 수상. MBC 가곡 공로상 수상. 반달동요대상 수상. 「고향의 노래」 「내맘의 강물」 등 작곡. 현재, 파랑새창작동요회 회장, KBS 어린이합창단장.
[주요내용]
-순수예술의 암흑기
-가곡은 詩노래
-가곡 쇠퇴의 원인
-가곡 부흥을 위한 몇 가지 제안 / 물과 소금 같은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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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예술의 암흑기
우리 歌曲(가곡)은 죽었는가? 가곡을 작곡하는 한 사람으로서 이 물음에 답하는 심정은 한없이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점을 먼저 말해둔다. 그러나 이 죽음에 대한 話頭(화두)는 분명 부활을 염두에 둔 질문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삭막해져 가는 이 시대에 우리 가곡의 필요성을 전제로 한 질문으로 받아 들여 한편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작곡가나 성악가를 전문적으로 양성할 기관이 全無(전무)하던 1920년대 우리 歌曲은 소수의 해외 유학파들에 의해 그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후 몇몇 대학에 음악科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현재는 서울은 물론 지방의 여러 대학에도 음악학부 또는 음악科가 개설되어 성악·기악은 물론 매년 다수의 作曲 전공자를 배출해 내고 있다. 어느 대학의 작곡 전공자 모집 인터넷 사이트에는 「음악적 감성이 우수하고 창작의 의지가 있는 자로 이 시대에 공감할 수 있는 曲을 작곡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자」를 뽑는다는 글귀도 보인다.
현재 국내에서 활동중인 성악가만도 무려 2000여 명을 넘으며 가곡을 작곡 하는 인원수도 만만치 않다. 그뿐이 아니다. 가곡을 전문으로 연구하고 작곡하는 한국가곡학회, 한국가곡작곡가협회, 가곡작사가협회, 서울중등음악 가곡연구회 등 여러 모임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렇게 歌曲의 저변이 확대되고 있는 데에도 가곡이 불려지지 않고 대중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에 필자는 그동안 우리 가곡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1990년대 들어 우리 가곡 이 급격히 퇴조하게 된 원인과 정신적 양식이 되는 가곡의 부흥을 위한 몇 가지 제안, 그리고 가곡이 불려져야 할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간략히 기술하고자 한다.
가곡은 詩노래
가곡을 한마디로 정의내리기는 어렵지만 詩를 노래로 만든 것이 가곡이므로 「詩노래」라고 이해하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가곡은 동요나 대중 가요와는 구별되는 것이며 사전적 풀이로는 「성악을 위한 노래」, 「예술 적인 의도로 창작된 노래」, 「詩와 가락과 반주로 이루어진 노래」 등으로 설명된다.
우리나라에서 가곡의 기틀을 잡은 분은 바로 홍난파(1897∼1941) 선생이다 . 1920년에 만들어진 「봉숭아」는 우리 가곡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周知 (주지)하는 바와 같이 1920년대는 우리 역사상 암흑기였다. 이때 발표된 「 봉숭아」는 그대로가 우리 민족의 자화상이었다.
「울밑에 선 봉숭아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더 말하지 않아도 노랫말에서 느껴지는 정서와 비유가 가슴에 와 닿는다.
『예술은 그 시대를 반영한다』는 말이 참으로 어울리는 詩노래였다. 「봉 숭아」 외에도 홍난파 선생은 민중들의 정서와 恨을 오롯이 그려낸 「옛 동 산에 올라」 「성불사의 밤」 「장안사」 「사랑」 「고향의 봄」 등 주옥 같은 곡들을 작곡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우리의 음악 정서를 키우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홍난파 선생의 뒤를 이어 名曲(명곡)을 남긴 작곡가와 작품을 대략 꼽아보 면, 현제명(1902∼1960)의 「고향생각」 「산들바람」, 박태준(1900∼1986 )의 「思友(사우)」, 이흥렬(1909∼1980)의 「바우고개」 「코스모스를 노 래함」, 김대현(1917∼1985)의 「자장가」, 김성태(1910∼)의 「이별의 노 래」 「동심초」, 김동진(1913∼)의 「가고파」 「봄이 오면」, 금수현(19 18∼1992)의 「그네」, 채동선(1901∼1953)의 「고향」, 조두남(1912∼198 4)의 「선구자」 「그리움」, 윤용하(1922∼1965)의 「보리밭」, 나운영(1 922∼1993)의 「달밤」, 김규환(1925∼)의 「님이 오시는지」 등이 있는데 이는 모두가 널리 애창되던 가곡들이다. 그밖에 월북 작곡가 중에도 김순 남의 「자장가」 「산유화」, 안기영의 「마의 태자」 「이별」, 이건우의 「봄」은 名曲으로 인정받는 곡들이다.
이렇듯 詩와 曲이 만나 탄생된 가곡들은 민중들의 恨을 달래고 정서를 대변 하며 암울한 일제시대를 거쳐 가난의 질곡(桎梏)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 던 1960∼70년대까지 널리 불리며 사랑을 받았다. 가곡이 무조건 어렵고 고 상한 것이라는 인식이 그 시절에는 없었다. 방송을 통해 간단없이 가곡이 흘러나오고 학력과 음역에 상관없이 누구나 가곡을 즐겨 듣고 부르며 詩心 에 잠기고 감동에 젖었던 것이다. 만일 그토록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에 가곡이 없었다고 가정해 보라. 그야말로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 아니었겠는가 . 너나없이 가난하고 힘겨웠지만 그래도 우리가 지난날을 아름답게 추억하 는 것은 정겨운 가곡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런 대로 우리 가곡의 열기가 전국을 누볐다. 그러던 것이 언제부터인가 「가곡 듣기만큼」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로 정다운 가곡이 우리 곁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말았다.
가곡 쇠퇴의 원인
1990년대 들어 가곡이 우리 곁에서 멀어진 이유는 여러 가지 사회·문화적 요인이 있겠으나 그중에서 중요한 몇 가지만 지적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분별한 일회성 소비문화의 유입과 상업주의에 영합한 대중매체들에 의한 가곡 외면 현상이다. 시청률 경쟁을 일삼는 방송매체들은 主시청 그 룹인 10대 층만을 겨냥 혼란스런 랩이나 팝송, 오락 프로그램 위주로 방송 을 내보냄으로써 가곡은 점차 설자리를 잃고 만 것이다. 이에 따라 대중들 의 思考(사고)의 깊이가 그만큼 얕아졌으리란 점은 불문가지이다. 여러 방송사 가운데 현재 가곡을 내보내는 곳은 KBS FM의 「정다운 가곡」 과 KBS 1TV 「열린음악회」의 한 부분, 그리고 연례 행사로 치르는 MBC 「 가곡의 밤」정도가 전부이다.
둘째, 음악인 스스로의 책임도 간과할 수 없다. 누구보다 우리 가곡을 사랑하며 이를 가르치고 배워야 할 대학에서 우리 가 곡 연주를 회피하고 경시하는 풍조는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한다. 또 성악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이 입학하는 대학은 물론 특수 중·고등학교 입시에서도 우리 가곡 연주는 철저히 외면당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에게 뜻도 모르고 발음도 생소한 이태리 가곡을 주로 부르게 하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국내의 각종 성악 콩쿨에서도 예외없이 독일이나 이태리 가곡을 정해놓고 부르게 한다. 그러다 보니 성악 전공자마저 우리 가곡에 대한 이해 정도가 떨어지고 발성법 또한 우리말 발음과는 거리가 있어 가곡이 생활 속에서 멀어지는 요인이 되고 말았다.
셋째, 초·중등학교 교육에도 큰 문제가 있다. 순수는 순수로 통한다는 말 이 있듯이 오늘날 초등학교에서 동요 지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도 가곡 쇠퇴와 연관성이 있다. 중학교 음악 교과서에는 우리 가곡이 여러 곡 실려 있어 청소년들이 우리 가곡을 배울 기회가 있지만, 많은 학교에서 학 생들의 취향에 맞추어 대중성 있는 노래로 교과서를 재구성해 가르치는 일이 다반사이다.
한편 고등학교 과정에 가면 5種의 교과서가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대학입시 에 보조를 맞춘 듯 외국 가곡 일색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찍이 공자는 인 간의 인격 형성 과정을 일컬어 시에서 일어나(興於詩) 예로 뜻을 세우며(立於禮) 음악에 이르러 비로소 완성된다(成於樂) 하였거니와 오늘날 우리의 학교 음악교육은 철학성의 결여는 논외로 하고서라도 지도자의 전문성과 지 도의 일관성 면에서 커다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넷째, 가곡의 밑거름이요 원천이 되는 문학의 대중성 상실도 오늘날 가곡의 퇴조와 무관치 않다. 최남선와 이광수로 대표되는 2人 문단시대를 지나 낭 만주의와 순수문학 운동이 일어났던 1920∼30년대 시인들의 詩들과 1940년 대에 활동한 청록파나 생명파 詩, 그리고 이은상 등 몇몇 시인들의 詩가 우 리 가곡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수준 높은 정통 순수詩의 전 통이 그 맥을 잇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학인 단체인 한국문인협회에 정식 가입된 시인만 해도 수천 명에 달하지만 지나 친 주관성과 난해성 등으로 몇백 명에 불과하던 지난 문단시대의 榮華(영화 )를 누리지 못하는 현실이 새로운 가곡 탄생을 불러오지 못하는 또다른 원인이 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가곡 부흥을 위한 몇 가지 제안 / 물과 소금 같은 존재
한때 국민적 사랑을 받던 우리의 가곡, 제목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돌 만큼 아름답고 더러는 아픈 추억이 서려 있는 노래. 소중한 우리의 가곡을 다시 살릴 방도는 없을까?
먼저, 무엇보다 언론매체들의 각성이 요구된다. 그중에서도 방송 매체들의 우리 가곡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방송사들은 더 이상 無益(무익)한 시청률 경쟁에만 몰두할 것이 아니라 교양 있는 무언의 多衆(다중)을 위해, 나아가 국민들의 知的 수준에 걸맞은 문화수준의 향상 을 위해 교양 프로그램을 더 많이 만들어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先導(선도 )해 나가야 한다. 만일 방송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정부 에서 적극 나설 필요도 있다. 대중 문화를 고급화시키고 순수예술을 옹호, 전파하는 책무가 바로 문화관광부를 비롯한 정부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초·중등학교를 비롯하여 전문 음악인을 양성하는 대학 등 교육기관 이 우리 가곡 중흥에 앞장서야 한다. 음악대학은 물론이고 성악을 전공하려 는 학생을 선발하는 예술계 중등 학교에서 학생을 뽑을 때 반드시 우리 가 곡을 지정곡으로 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早期 교육의 중요성을 내세운다 해도 발성법이 중요한 성악 초심자 시절에 서툰 외국어 발음을 강요하는 풍 토는 문화 사대주의에 다름 아니다. 또 현재도 어느 정도는 지켜지는 줄 알 지만 성악가들이 음반을 제작하거나 연주회를 할 때 일정 부분 우리 가곡을 삽입케 하는 쿼터제 도입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가곡 창작과 연주에 관련되는 작곡가나 시인, 성악가들의 분발이 요구된다. 먼저 가곡을 작곡하는 작곡가들은 그 동안의 기법에 안주하지 말고 장단·화성·음계를 포함, 우리 어법에 맞는 우리만의 새로운 가곡 창작에 더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나치게 예술성만을 고집하여 고 도의 발성을 요구하는 곡들만 고집하다 보면 친근감이 떨어지고 대중 속에 뿌리내리기가 더욱 어렵다.
시인들 또한 作詩(작시)를 전제로 詩를 창작하는 경우는 드물겠지만 작곡자 로서의 바람은 우리나라 순수 서정시의 토양이 기름져짐으로써 가슴을 울리 는 아름다운 詩들이 量産(양산)되었으면 한다. 근자에 흔히 보이는 넋두리 調(조)의 사설시나 음률 파괴의 난해시, 언어의 조탁이 덜 된 詩들은 좋은 가곡이 탄생하는 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가곡을 연주하는 성악가들 역시 詩의 내용과 감정을 보다 효과적으로 표현 하고 전달하는 발성을 기본으로 삼아 연주에 임해야 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가곡은 「詩노래」인 까닭에 무엇보다 전달이 중요하다. 따라서 성악가들은 무대에서 高난이도의 발성을 자랑하기에 앞서 정확한 발음으로 감정 전달에 힘을 쏟아야 한다.
물과 소금 같은 존재
누군가 말했다. 인생은 사막을 건너가는 나그네 길이라고. 가도가도 끝없이 내리쬐는 뙤약볕과 거친 모래바람과 간단없이 밀려오는 갈증. 나그네의 위 안은 오직 하나, 기어이 가서 닿아야 할 멀고 먼 오아시스뿐이다. 사막 한 가운데 있는 땅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 시린 천연수, 그것만이 나그네의 갈 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 그러나 물만으로는 탈수 증세를 이겨내지 못한 다. 물과 함께 보충하는 한 줌의 소금이 또한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예부터 참으로 귀한 것을 꼽을 때 물과 소금을 떠올리는지도 모른다. 지금 세상에 판을 치는 인공의 탄산음료는 우선 입에 달고 자극적이어서 자주 찾게 되지만 몸속 깊은 곳의 갈증을 근원적으로 풀어주지 못한다. 거듭 말하거니와 지금은 분명 가곡의 위기 시대요 암흑기이다. 그러나 나는 머 지않아 우리 가곡이 다시금 그 가치를 인정받아 화려하게 부활할 것을 믿는다. ●
이 자료는 작곡가 이수인선생이 월간조선 2000년 10월에 게재한 것입니다.
李秀仁 (작곡가)
1939년 경남 마산 출생. 서라벌예대 작곡가 졸업. 대한민국동요대상 수상. 가장 문학적인 작곡가상 수상. 5·5문화상 수상. MBC 가곡 공로상 수상. 반달동요대상 수상. 「고향의 노래」 「내맘의 강물」 등 작곡. 현재, 파랑새창작동요회 회장, KBS 어린이합창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