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시비속에 개관한 조두남기념관
한민족의 서정성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피난민이지만 마산에 정착한 참마산인으로, 한국현대음악의 대표자로, 지역예술 활성화의 선각자로 추억되는 조두남. 이 모든 수식보다 만주벌판 독립군의 높푸른 기상을 노래한 「선구자」의 작곡가란 훈장이 무엇보다 빛난다.
하지만 작시자 윤해영의 친일행적이 드러나면서 일각에서의 의심을 받았고, 운명하기 2년전쯤에는 박태준곡 「님과 함께」(원명 순례자)와의 표절시비가 일어 편치않기도 했다. 그러다 월간 「말」(2002년 11월호)지에서 친일주장이 제기되면서 큰 파문을 일으켰다.
5개월동안의 혼돈끝에 마산시는 「여러 기관에 문의한 결과 친일행적이 밝혀지지 않은 만큼 더이상 개관을 미룰 수 없다」고 결정한 반면 시민단체는 시의 확인과정에 의의를 제기해 친일행적을 둘러싼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겨두고 있다.
◆ 기념관 사업=기념관 건립은 1999년 「마산항개항 100년사업」 일환의 지역예술인 발굴·기념사업으로 추진해왔다. 2000년 3월 계획을 수립해 2001년 6월 구항근린공원조성계획 변경 설계용역, 11월 전시부분 설계용역, 12월29일 착공, 2002년 11월28일 전시관을 준공했다.
사업비 11억7천296만원을 들여 신포동 1가 68-1 구항근린공원내 대지면적 1만1천725㎡(3천550평)에 기념관 60평(1층)과 야외공연장, 지압보도, 다목적 운동장, 선구자 가사비, 중국 용정의 일송정과 용두레우물을 모사한 조성물을 시설했다. 전시실에는 조 선생이 생전에 사용하던 피아노와 악기, 펜, 안경, 옷, 음악서적, 악보, 음악제 프로그램, 육성이 담긴 카세트테이프, 소장했던 서화·도자기, 앨범, 훈장, 상패 등 1천253점을 전시한다.
이 기념관은 2003년 5월 29일 개관했지만 개관 열흘전까지만 해도운영에 관하여 외부기관에 위탁운영할 것인지, 기념관·박물관을 통합운영할 별도의 관리부서를 신설할 지도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 친일행적 제기=열린사회 희망연대(상임대표 김영만)가 지난해 12월4일 당시 공사중이던 조두남기념관 앞에서 「친일행적 진상조사 촉구를 위한 성명」을 발표하면서 공식 제기됐다. 희망연대는 「말」지에 게재된 연변작가 류연산씨의 조 선생 친일행적 고발글을 공개하며 「조두남 친일 조사특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촉구했다.
류씨의 글에 따르면 생전에 조 선생과 친분이 있었던 연변 음악계 원로 김종화(82)옹을 1995년 5월에 만나 『조두남도 「징병제 만세」 「황국의 어머니」라는 친일노래를 작곡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또 애수곡에 불과한 「용정의 노래」를 나중 「선구자」로 뜯어 고쳤다는 얘기도 했다.
희망연대는 이와 같은 글을 소개하며 『증인이 실존하고 내용이 구체적이어서 개관하기전 사실확인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만약 사실이라면 혈세로 건립되는 기념관은 그 이름과 용도를 변경해야 한다』고 의의를 제기, 큰 파문을 일으키면서 개관이 지연됐다.
◆ 개관 결정 및 전망=마산시는 민족문제연구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예술단체총연합회,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 광복회, 국사편찬위원회, 역사문제연구소, 한국음악협회 등에 조 선생의 친일여부를 문의했다.
그 결과 민족정기를 세우는 의원모임이 발표한 친일반민족 행위자 692명 명단(2002년 3월1일)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친일문학인 명단 42명(2002년 8월14일)에 포함돼 있지 않는 등 친일행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개관을 결정했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 조사하겠으며 만일 친일행적이 확인된다면 사실 그대로 후세대의 교육자료로 전시하겠다는 입장이어서 시민단체와의 마찰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이 희망연대는 아직 개관에 따른 구체적인 대응수위를 정하진 않았지만 시민여론을 무시한데 대해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삼고 책임을 묻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어 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 조두남 선생은
석호(夕湖) 조두남 선생은 1912년 평양에서 태어나 7살때부터 미국인 조셉 캐논스 신부에게서 작곡을 배웠다. 23년 11살때 「옛이야기」를 작사작곡했으며 평양 숭실학교에서 수학한 후 부친이 별세하자 30년 18살 나이에 만주로 망명했다.
33년 21살때 작사자 윤해영씨를 만나 「선구자」를 작곡하고 1940년 28살때 동갑내기 김민혜 여사를 만나 안정된 결혼생활을 하다 45년 해방되자 귀국, 처가가 있는 서울에서 거주했다.
51년 1·4후퇴때 부산으로 피난왔다 6월 요양오면서 마산과 인연, 평생 이곳에서 피아노교습으로 제자를 키우며 작품활동을 했다. 62년 한국예총 마산지부 초대지부장을 맡은 후 7년간 회장을 역임하면서 지역예술 활성화와 음악발전에 큰 획을 그었다.
대표작으로 「선구자」를 비롯 「그리움」, 「산」, 「산촌」, 「제비」, 「접동새」, 「농촌」, 오페라타 「에밀레종」, 피아노곡 「환상무곡」 등이고, 그의 가곡은 모두 음역이 넓지 않고 까다로운 음정이 드물며 자연발생적인 멜로디로 되어 있기 때문에 민요작가라는 평을 듣고 있다.
눌원문화상, MBC가곡 공로상, 은관문화훈장, 영국 소머 세트대학교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추서 받았으며 79년부터 병환에 시달리다 84년 운명했다.
# 부인 김민혜 여사
『기념관을 개관하게돼 정말 기쁘며 사업을 추진해온 마산시와 시민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9순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맑고 환한 웃음으로 대답하는 김민혜(91·창원시 대방동) 여사.
『조 선생이 가신지 19년만에 후세에 길이 남을 기념관이 개관되니 보람이 큽니다.』
조 선생의 자질을 믿고 존경하며 예술인의 아내로서 뒷바라지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는 결심을 가졌기 때문에 힘들었던 기억은 전혀 없다는 김여사는 후배·제자 음악인들에게는 생전 조 선생의 비서요 간호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슬하에 자녀를 두지 않고 친인척 자녀나 제자들 보육·교육에 힘써온 어머니는 모든 것을 하느님이 주신 소명으로 믿고 순종의 삶을 곱게 살아왔다』며 모시고 사는 양딸이 전했다.
기념관 개관이 늦어진 이유를 아시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내 건강을 염려해 자식들이 얘기를 잘 안해줘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친일행적 시비가 문제됐다는 것은 알고 있다』며 『결혼전 일이야 알진 못하고 결혼 이후엔 그런 일 없었어요』라고 단호하게 답했다.
『확실한 문헌도 없으면서 한사람의 얘기를, 그것도 전해 들었다는 주장만으로 친일문제를 삼는 것은 시민단체가 너무 무책임한게 아닌가요?』 둘째사위 김상오(42)씨가 장모의 답변에 설명을 덧붙였다.
『40년대 장인이 친일을 했다면 그 당시 일을 알만한 인물들이 국내외에 생존해 있을거 아니예요. 그런데도 30년간 유명 작곡가로 활동하는 동안 아무도 문제제기한 사람은 없잖아요』
또 『기념관 건립을 위해 시·시의회·공사 관계자 등이 수차례 연변 용정을 다녀왔기 때문에 기념관 건립사업이 현지에도 알려졌을텐데, 그렇다면 최소한 한 두명 정도는 찾아와 의의를 제기하거나 증언해주지 않았겠어요』라고 반문했다. 정오복기자
# 친일여부 규명촉구 김영만 희망연대 대표
『수일내 마산시장을 만나 다시 한번더 개관유보를 요청하겠습니다.』 열린사회 희망연대 김영만(58) 상임대표는 『절대 개관하면 안된다고 주장한 적은 없습니다. 조두남 선생의 친일행적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제기됐고 증인이 실존해 있는 만큼 사실여부를 직접 확인한 후 개관여부를 결정해도 늦지않다는 얘깁니다.』
그런데도 시와 시의회는 사실확인을 위한 최소한의 성의나 책임마저 거부한 것이라며 현지확인도 하지 않는 일방적 밀어부치기식 행정이라고 비난했다.
『중국 연변이 과거처럼 통제가 심한 공산주의국가라서 못갑니까, 아니면 아주 먼 곳이라 기간과 여비가 많이 소요돼 못갑니까? 고의적으로 시민여론을 무시한데 대해 어떤 식으로든 문제 삼겠습니다.』
개관 이후 대응방안에 대해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앞으로 구체적으로 연구할 것이며 반드시 관련자들의 책임을 묻겠다고 강조했다.
『조두남 선생의 친일여부를 밝히는 문제는 한 인물의 기념관을 짓느냐 마느냐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이는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의 정기를 지키는 일이며 상식과 원칙이 무너진 우리 사회의 각종 사회적 질병 원인을 밝히고 치유하는 단초가 될 수 있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 관련기사 (2003. 6. 4)****
경남 마산시가 조두남 기념관을 개관한지 4일만에 친일행적 논란으로 휴관을 결정하고 시립예술단 노조가 단원 복직 등을 주장하며 수개월째 시청 광장에서 농성을 벌이는 등 각종 현안사업들이 해법을 찾지 못하고 실타래 처럼 꼬여만 가고 있다.
4일 마산시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개관된 가곡 '선구자' 작곡가 조두남(84년 작고)선생 기념관이 친일행적 의혹조사를 위해 임시휴관에 들어가기로 결정하고 친일행적을 검증하기 위한 민·관 합동조사단이 조만간 구성돼 조 선생이 활동했던 중국 현지조사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시민들은 사회단체에서 개관전부터 친일논란 등 의혹을 제기해왔던 만큼 개관 4일만에 휴관을 결정한 것에 대해 시가 행정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지적과 함께 현지조사에서 친일논란 등에 대한 의혹을 완전히 해소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또 마산시립예술단 노조가 지난 1월부터 해촉된 단원 복직 등을 주장하면서 시청앞에서 수개월째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마산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해 고소·고발로 비화되는 등 파문이 계속 확산되고 있다.
이와 함께 봉암로 교통난 해소를 위한 해안도로개설과 마산자유무역지역 확대를 위해 마산자유무역지역 관리원이 추진하고 있는 한진중공업 부지 매매협상이 토지가격문제 등으로 어렵게 되자 대신에 활용도가 떨어지는 경남모직 부지를 먼저 매입키로 방침을 정한 상태다.
이 때문에 시가 교통난 해소를 위해 추진하는 해안도로 완전개통이 상당기간 불투명해짐에 따라 운전자들의 불편이 장기간 지속될 전망이다.
또 시가 추진하고 있는 마산만 일대 56만평 공유수면 매립계획과 관련,마·창환경운동연합 등 4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마산만매립반대 범시민대책위원회가 '매립으로 인한 환경오염 등에 대한 용역결과를 공개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논란을 빚고 있다.
이외에도 최근 마산에는 한국씨티즌 노조 농성,쓰레기 소각장설치 주민반대,한일합섬 부지 난개발,도심 대형유통시설 건립논란 등 현안문제가 10여건이나 산적해 있으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시민들은 '시의 행정계획과 집행능력이 수준 이하'라면서 '강력한 추진력을 보여야 할 부분에는 약하고 일관성 없는 정책이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남신문 [2003. 5. 19] 부산일보 [2003.6.4] /편집 '내 마음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