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35년 독창회 갖는 소프라노 이규도씨
<나의 작업>데뷔35년 독창회 갖는 소프라노 이규도씨
35년동안 300여회의 오페라공연에서 여주인공이었다. '한국오페라 55년사상 가장 화려한 발자취를 남긴 프리마돈나' '작은 체구에도 청중을 휘어잡는 음악적 카리스마' 등 상찬의 미사여구가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고(故) 김자경은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하자마자 나의 첫 그물에 걸린 학생이 규도였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듣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리가 있구나' 하고 놀랐다"고 회상했었다.
소프라노 이규도씨(63.이화여대 음대학장.사진)가 데뷔 35년기념 초청독창회를 4월10일 오후 7시30분 서울 한전아츠풀센터에서 갖는다. 학장실에서 만난 이씨는 오페라무대에서 아름다운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청중을 사로잡던 풍경과 달리 아담한 자태였다. 자분자분 독창회 준비상황을 전하는 그의 모습은 평온했다.
"알려지지 않은 노래만 모았어요. 1부는 베르디 아리아, 2부는 가슴에 쌓아두었던 아리아로 청중들을 만납니다. 후학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베르디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자칫 느슨해질 수 있어 샤펜티에, 칠레아, 지오다노의 아리아도 넣었습니다". 청중을 의식한 음악회에선 잘 알려진 노래를 불러야 하지만, 자신이 꾸미는 독창회를 통해 부르지 못하고 접어두었던 8곡의 오페라 아리아를 소개하게 돼 뿌듯하다고 했다.
사실 35년동안 한결같이 행복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 건 아니었다. "저에게도 시련은 있었어요. 1983년 '리골레토' 주역으로 국립극장 무대에 섰는데 왜 그리 소리내기가 힘들던지…. 청중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발성에 문제가 있었어요. 2년동안 딜레마를 견디며 발성공부를 했습니다. 방황을 끝내고 나니 나이 쉰을 넘어도 고음내기가 편하더군요". 노년 성악가들의 대부분은 뱃심이 부족하고 소리색깔이 없어지는데 이규도씨에겐 해당되지 않는 증세다. 발성공부를 다시 하며 자신에게 채찍질하던 침체기를 거쳤기에 당당하게 데뷔 35년 무대를 마련하지 않는가.
이화여대 음대 졸업후 70년 도미한 이학장은 록펠러재단 장학금으로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과 마리아 칼라스 마스터클래스를 마치고 72년 뉴욕에서 '라보엠'의 미미역으로 첫 무대를 가졌다. 미 전역에서 수천대 일의 경쟁을 뚫고 마리아 칼라스 마스터클래스에 뽑힌 28명중 한 사람인 이규도씨는 한 학기동안 '라보엠'의 미미로 칼라스의 사랑을 받았다. "너는 키가 작으니 긴 치마를 입어야 하고 절대로 살찌면 안된다" "작곡가가 원하는 대로 박자를 지켜야 한다"는 등 칼라스의 조언도 힘이 됐다.
74년 디트로이트오페라단의 '나비부인'의 주인공 초초상으로 출연후 그동안 70여 차례나 초초상을 맡아 국내 최다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에선 28세(1968년)에 김자경오페라단의 '마농 레스코' 주인공으로 데뷔후 15년동안 국내 오페라무대를 독식하다시피했다. 1년에 6개의 오페라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그의 인기는 남달랐다. 76년 이대교수로 부임한 후에는 몰려드는 수강생을 거절할 수 없어 매학기 정원의 두 배 되는 학생들을 가르쳐왔는데, 학장 부임 후에도 인원은 줄지 않았다.
"8곡의 아리아를 부르려면 여간 에너지가 소비되는 게 아닙니다. 일반 가곡을 부르는 것보다 2배 힘들지요. 그러기에 성악가는 몸을 잘 다스려야 해요".
환갑이 지났음에도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젊은 여주인공으로 무대에 설 수 있음도 '노래에 살기' 때문이다. '영원히 무대위의 프리마돈나로 남겠다'는 욕심이 아름답다.
[경향신문] 2003-03-25 : 유인화 기자
35년동안 300여회의 오페라공연에서 여주인공이었다. '한국오페라 55년사상 가장 화려한 발자취를 남긴 프리마돈나' '작은 체구에도 청중을 휘어잡는 음악적 카리스마' 등 상찬의 미사여구가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고(故) 김자경은 "이화여대 교수로 부임하자마자 나의 첫 그물에 걸린 학생이 규도였다. 나는 그의 노래를 듣고 '우리나라에도 이런 소리가 있구나' 하고 놀랐다"고 회상했었다.
소프라노 이규도씨(63.이화여대 음대학장.사진)가 데뷔 35년기념 초청독창회를 4월10일 오후 7시30분 서울 한전아츠풀센터에서 갖는다. 학장실에서 만난 이씨는 오페라무대에서 아름다운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청중을 사로잡던 풍경과 달리 아담한 자태였다. 자분자분 독창회 준비상황을 전하는 그의 모습은 평온했다.
"알려지지 않은 노래만 모았어요. 1부는 베르디 아리아, 2부는 가슴에 쌓아두었던 아리아로 청중들을 만납니다. 후학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베르디 작품을 소개하고 싶었는데, 자칫 느슨해질 수 있어 샤펜티에, 칠레아, 지오다노의 아리아도 넣었습니다". 청중을 의식한 음악회에선 잘 알려진 노래를 불러야 하지만, 자신이 꾸미는 독창회를 통해 부르지 못하고 접어두었던 8곡의 오페라 아리아를 소개하게 돼 뿌듯하다고 했다.
사실 35년동안 한결같이 행복한 마음으로 노래를 부른 건 아니었다. "저에게도 시련은 있었어요. 1983년 '리골레토' 주역으로 국립극장 무대에 섰는데 왜 그리 소리내기가 힘들던지…. 청중들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발성에 문제가 있었어요. 2년동안 딜레마를 견디며 발성공부를 했습니다. 방황을 끝내고 나니 나이 쉰을 넘어도 고음내기가 편하더군요". 노년 성악가들의 대부분은 뱃심이 부족하고 소리색깔이 없어지는데 이규도씨에겐 해당되지 않는 증세다. 발성공부를 다시 하며 자신에게 채찍질하던 침체기를 거쳤기에 당당하게 데뷔 35년 무대를 마련하지 않는가.
이화여대 음대 졸업후 70년 도미한 이학장은 록펠러재단 장학금으로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과 마리아 칼라스 마스터클래스를 마치고 72년 뉴욕에서 '라보엠'의 미미역으로 첫 무대를 가졌다. 미 전역에서 수천대 일의 경쟁을 뚫고 마리아 칼라스 마스터클래스에 뽑힌 28명중 한 사람인 이규도씨는 한 학기동안 '라보엠'의 미미로 칼라스의 사랑을 받았다. "너는 키가 작으니 긴 치마를 입어야 하고 절대로 살찌면 안된다" "작곡가가 원하는 대로 박자를 지켜야 한다"는 등 칼라스의 조언도 힘이 됐다.
74년 디트로이트오페라단의 '나비부인'의 주인공 초초상으로 출연후 그동안 70여 차례나 초초상을 맡아 국내 최다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에선 28세(1968년)에 김자경오페라단의 '마농 레스코' 주인공으로 데뷔후 15년동안 국내 오페라무대를 독식하다시피했다. 1년에 6개의 오페라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 그만큼 그의 인기는 남달랐다. 76년 이대교수로 부임한 후에는 몰려드는 수강생을 거절할 수 없어 매학기 정원의 두 배 되는 학생들을 가르쳐왔는데, 학장 부임 후에도 인원은 줄지 않았다.
"8곡의 아리아를 부르려면 여간 에너지가 소비되는 게 아닙니다. 일반 가곡을 부르는 것보다 2배 힘들지요. 그러기에 성악가는 몸을 잘 다스려야 해요".
환갑이 지났음에도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노래하고, 젊은 여주인공으로 무대에 설 수 있음도 '노래에 살기' 때문이다. '영원히 무대위의 프리마돈나로 남겠다'는 욕심이 아름답다.
[경향신문] 2003-03-25 : 유인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