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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홍혜경과 친구들 갈라 콘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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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무대에서 주역으로 활약해온 소프라노 홍혜경이 고국 무대에 오른다. 오래도록 호흡을 맞춰온 메조 소프라노 제니퍼 라모어, ‘무서운 신예’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테너 조세프 칼레야, 유럽에서 활동중인 한국의 바리톤 김동섭이 동행한다. 홍혜경과 친구들의 갈라 콘서트. 세계 무대에서 활약중인 쟁쟁한 멤버들이 오페라 아리아의 성찬을 펼친다.

홍혜경은 지금 비올레타 역에 빠져 있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 “내 목이 완전히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스스로 밝혔던 배역이다. 워싱턴DC 오페라 극장. 플라시도 도밍고의 지휘. 23일까지는 꼬박 비올레타의 환영에 휩싸여 있어야 한다. 끝나는 대로 곧바로 한국행. 잠시도 쉴 틈이 없다. 하지만 홍혜경은 “바빠서 행복하다”고 말했다. 세계의 내로라 하는 성악가들이 수없이 몰려드는 메트로폴리탄 무대. 그곳에서 20년을 꿋꿋이 버텨온 그녀는 “세계적 소프라노라는 호칭은 과분하다”며 “노래는 그저 나의 직업일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한국시간으로 오전 10시에 연결된 국제전화. 몰아치는 스케줄 속에서 어렵게 짬을 낸 그녀는 1시간 가까이 속마음을 털어놨다.

“제니퍼 라모어는 나와 호흡이 척척 잘 맞지요. 메조 소프라노이지만, 하이(high) 쪽이 아주 강하죠. 대개 고음으로 갈수록 소리가 가늘어지는데, 이 친구는 안 그래요. 나도 비슷하죠. 우린 둘 다 리릭(lyric)이지만 강한 고음을 낼 수 있어요. 듀엣은 소리의 톤과 음색이 잘 맞아야 하는데, 그 점에서 라모어와 나는 아주 흡족해 하는 파트너죠.”

두 사람은 1998년에 듀엣곡집 ‘벨레자 보칼레(Belleza Vocale)’와 벨리니의 ‘캐플릿가와 몬테규가’를 텔덱(Teldec) 레이블에서 내놨고, 2000년에는 헨델의 ‘줄리어스 시저’에서 함께 공연했다. 또 같은 해 5월에 한국 LG아트센터에서 듀엣 무대를 갖기도 했다. 메조 소프라노인 라모어는 ‘로미오’와 ’시저’ 같은 남자 역할로 홍혜경과 연기했다. 일명 ‘바지역(役)’(Trouser Role). 하이 테너보다 높고 소프라노보다 낮은 음역의 성악가들에게 종종 떨어지는 배역이다.

제니퍼 라모어에 대해 한참 얘기하던 홍혜경은 테너 조세프 칼레야에 대해선 입을 다물었다. “나도 이번에 처음 만난다. 혜성과 같이 등장한, 앞이 창창한 신예라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 그 이상은 잘 모른다”는 짤막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칼레야를 ‘포스트 스리 테너’에 빗대며 치켜세우는 최근의 평가에 대해선 “과장”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지중해 몰타 공화국 출신의 칼레야는 올해로 26세. 최근 ‘데카’(Decca) 레이블에서 리카르도 샤이의 지휘로 첫번째 솔로 앨범 ‘테너 아리아집’을 내놓았다. 무게와 힘이 느껴지기보다는 밝고 산뜻한 뉘앙스를 풍긴다.


메트로폴리탄에서 부동(不動)의 20년을 사수한 홍혜경은 10년 전부터 유럽 무대에도 활발히 오르고 있다. 하지만 유럽 데뷔는 오히려 메트로폴리탄보다 먼저였다. 프랑스 니스와 이탈리아 산레모 등지에서 이미 신고식을 치렀지만, 82년의 결혼과 곧 이어진 출산으로 유럽 활동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세요. 83년에 첫 아이를 낳고 곧바로 또 임신했어요. 큰애와 작은애가 16개월 터울이거든요. 갓난아기 둘을 내버려두고 유럽 무대에 서는 건 엄마로서 할 짓이 아니었죠. 지금도 결코 후회하지 않아요.” 홍혜경은 두 아이가 제법 컸을 무렵, 늦둥이까지 봤다. 그 막내가 지금 10살.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그녀는 “딸만 둘 낳았는데, 하나님이 아주 근사한 아들까지 선물했다”며 깔깔 웃었다.

최근 EMI 레이블에서 한국 가곡집을 내놓은 홍혜경은 “난 미국에서 공부하고 생활했지만, 한국인이라는 것을 잊은 적이 없다”며 “한국 가곡집을 세계적 유통망을 갖고 있는 메이저 음반사에서 꼭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우리 가곡은 서정적이어서 리릭 소프라노인 내 목소리에 아주 잘 맞는다”고 덧붙였다. 어떤 이는 이 음반에 대해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홍혜경 정도 되는 소프라노의 레퍼토리로 너무 시시한 것 아니냐”는 가당찮은 불평이다. 그렇다면 98년에 내놓은 ‘홍혜경의 아리아집’을 선택하면 될 일이다.

홍혜경의 가곡 예찬론이 한창 펼쳐지고 있을 때, 전화기 너머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아이가 지금 막 피아노 연습을 시작했다”며 “인터뷰에 방해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홍혜경과 친구들의 조인트로 마련되는 이번 콘서트는 한마디로 아리아의 성찬. 그만큼 레퍼토리가 풍성하다. 20곡 가까운 아리아를 솔로와 2중창, 혹은 4중창으로 노래한다. 홍혜경은 그 중에서도 특히 ‘라 트라비아타’의 3막에 나오는 솔로 ‘지난 날이여 안녕’과 칼레야와 듀엣으로 부르는 ‘파리를 떠나’를 중요한 선곡으로 꼽았다. “단순히 아리아 한 곡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오페라의 한 장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같은 의미에서, ‘리골레토’의 ‘언젠가 너를 만난 것 같다’를 4중창으로 열창하는 장면도 “빼놓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29일과 7월1일 오후 7시30분,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02)720-6633
 
경향신문(2004.6. 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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