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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작곡가 정율성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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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2005-08-08 1611자

13억 중국인들이 국가 다음으로 많이 부르는 노래가 있다. ‘인민 해방 군가’, 그리고 ‘중국인의 아리랑’으로 불리는 ‘옌안송’(延安頌)이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아 경기 대회 개막식은 ‘인민해방군가’ 연주로 시작했다. ‘옌안송’은 중국 혁명의 성지 옌안을 찬양한 서정적이면서도 힘찬 송가다. 이 곡들은 한국 출신 작곡가 정율성(鄭律成ㆍ1914~1976)의 작품이다. 망각의 강을 건너, 그가 살아 온다.

정율성. 낯선 이름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음악가이자 혁명가로 존경받는다.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에서 태어난 그는 항일 투쟁에 가담한 형을 따라 19세 때 중국으로 간다.

의열단의 항일 투쟁에 참여하면서 난징과 상하이를 오가며 음악 공부를 하다가 1937년 중일전쟁이 터지자 중국 공산당의 해방구 옌안으로 옮긴다. 거기서 루쉰예술학원을 졸업하고 중국 공산당에 가입한다.

‘옌안송’은 24세에, ‘인민 해방 군가’는 25세에 작곡한 것으로, 옌안 시절의 대표작이다. 해방이 되자 북한으로 파견돼 해주에 음악 전문 학교를 설립하고 평양의 조선 음악 대학 작곡부장을 맡기도 한 그는 한국전이 터지자 중국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문화혁명 기간에는 간첩으로 몰려 창작의 권리를 뺏겼다.

1976년 장칭 등 4인방의 몰락으로 문화혁명의 10년 광풍이 걷히자 다시 창작욕을 불태웠으나 그 해 말 쓰러져 세상을 떴다. 2001년 가을 베이징에서는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태양을 향하여’가 개봉됐다.

음악가로서 정율성은 중국 혁명 음악의 선구자이자 합창 음악의 개척자로 인정 받고 있다. 그는 가곡, 합창, 가극, 동요, 영화 등에서 360여 곡의 노래를 남겼다.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은 생전에 조국과 단절된 세월이 40년이 넘는 데다 전쟁과 남북 분단에 따른 이념적 장벽 탓도 있다.

그가 북한에서 보낸 5년도 우리에게 멀어진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2000년 6ㆍ15 남북정상회담 때 평양 공항에 내린 김대중 대통령을 맞은 것은 1942년 그가 작곡한 ‘조선 의용군 행진곡’이었다.

그의 고향 광주에서 오는 11월 11~12일 이틀간 ‘제 1회 광주 정율성 국제음악제’가 열린다. 광주 남구가 중국문화부 대외문화협력국과 공동 주최하는 행사로,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양국 연주자와 학자들이 참여하는 두 차례 음악회와 학술 세미나로 진행된다.

11일 음악회에서는 가곡, 합창과 관현악, 동요 등 그의 대표작 20여 곡이 연주되며, 중국교향악단합창단과 서울심포니, 광주시향, 광주소년소녀합창단, 국립합창단 등이 참여한다.

12일 음악회에서는 축제조직위원회가 위촉한 강준일의 서곡 ‘아! 정율성’(가제)과 김대성의 ‘정율성 주제에 의한 피아노 협주곡’도 초연된다. 학술 세미나에는 중국에서 베이징중앙음악학원 양무춘 교수, 옌벤대 김성준 김덕균 교수 등이 참여한다.

우리나라에서 그의 음악이 공식 소개된 첫 자리는 1996년 10월 국립국악원이 마련한 ‘정율성 작곡의 밤’이었다. 이어 지난해 6월 광주에서 그를 조명하는 국제 학술 대회가 열렸고, 올 가을 국제음악제가 출발한다.

이 축제의 총감독인 음악학자 노동은 교수(중앙대)는 “한국과 북한, 중국을 잇는 음악제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념의 그늘에 묻혀있던 정율성이 해방 60년 만에 비로소 고향에 돌아오게 된 것이다. 
 
 
 오미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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