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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바리톤 황병덕 음악인생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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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평창동에 있는 바리톤 황병덕씨(80) 자택 연습실에는 황씨가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흑백사진이 한장 걸려있다.
1971년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황병덕 귀국독주회 사진이다.
베를린 국립음대 유학을 마치고 51살의 나이로 귀국무대에 선 황씨는 일생동안 그렇게 떨어본 순간이 없었다고 회상했다. 서울대 교수.연세대 교수.한국오페라단 단장 등 화려한 경력을 뒤로 하고 나이 50에 결심한 독일유학. 그만큼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던 게 사실이었다고 했다.

자신의 소리찾기 작업을 위해 50세 만학도를 자처했던 황씨가 「음악인생 60년 기념 독창회」를 갖는다. 28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이다. 성악계에서 60년 기념무대를 갖는 것은 그가 처음. 나이도 소프라노 김자경씨(81) 다음으로 연장자다.
『 나이 80에 무슨 독창회냐고 놀리는 것 같아 「음악인생 60년」에 맞췄어요. 사실 나는 술.담배를 하지 않기 때문에 소리에 자신있어요』. 이번에도 늘 그랬듯이 다른 사람 독창회보다 많은 곡을 준비했다. 레퍼토리도 소화하기 어려운 곡들로 구성했다. 세월이 가면 목소리가 탁해지는 법. 그러나 황씨의 경우는 다르다. 『 자기 소리를 찾기 위해 긴장하다 보면 목소리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철학이다.

황씨의 데뷔무대는 1939년 도쿄음대 재학시 가진 요코하마에 거주하는 재일교포 위문공연. 이후 60년 동안 황씨는 성악계의 거목으로 활동해왔다. 1948년 1월 국내 최초의 오페라인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이후 많은 오페라를 한국 초연했고 1972년 국내 처음 독일어로 「라 트라비아타」를 공연하는 등 오페라 개척자로 공헌했다.

그는 1964년 경향신문 주최로 열린 첫 독창회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 건축가이신 아버지에게 도쿄대 상대에 합격했다고 속이고 성악과를 다녔어요. 그런데 전일본 성악 콩쿠르 바리톤부문에서 1등을 하는 바람에 신문에 대서특필됐고 그 사실을 안 평양 집에서 난리가 났죠』. 그러나 황씨가 계속 각종 콩쿠르에서 일본인을 누르고 입상하자 집에서도 두 손을 들었다.
그의 자랑거리는 무엇보다 제자농사. 30년간 연세대에서 키운 수제자만 최현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최인달(미 버지니아대 교수).강무림(가톨릭대 교수).김관동(연세대 교수).신갑순(삶과 꿈싱어즈 대표).임응균(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씨 등 200여명이다. 제자들은 86년 그의 호를 따 청운(淸雲)성악회를 창단, 매년 2차례의 정기공연을 마련하고 매년 현충일에 모여 친목을 다진다.

『 이렇게 세월이 빨리 가다니…. 내 소리를 찾는 재미에 빠져 나이먹는 것도 몰랐어요』. 같이 활동하던 이인범.이상춘.김학근씨는 고인이 됐다. 이제 홀로 무대를 지킨다.

경향신문 1999. 5. 17 글 유인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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