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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한국시의 가곡화에 대한 분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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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한국가곡의 가사내용별 분류


한국가곡에 사용된 시의 제목을 살펴보면 자연과 전원풍경을 노래한 것이 대부분이다. 소월의 시는 자연과 그리움을 주제로 한 것이 가장 많다. 이것은 한국가곡이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서정성·낭만성에도 기인하지만 어떻게 보면 결코 건강하지 않는 감상성에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서정성과 낭만성을 특징으로 하는 가곡의 내용은 1930년대 가곡에서 시작된다. 당시의 가곡은 일제 강점기 동안의 민족적 고통을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함으로써 달래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으나 한국가곡 전체에 끼친 부정적 측면 또한 없지 않다. 즉 이때부터 한국가곡에 <한>, <비감>, <애상감>(민경찬 1986)이 주요한 정서로 포함되기 시작했다.


한국가곡하면 으례이 감상적인 분위기의 곡으로 알고 있는 감상병의 뿌리도 30년대 작품에서 비롯된다. 이것은 단지 시대적인 정서일 뿐이지 우리의 민족적인 정서를 대변될 수 없다. 지나친 서정성의 강조와 자기감정의 억제할 수 없음은 그 당시 시대상 때문이지만 결국 예술가의 성숙성의 관점에서 볼 때 작가의 미숙성에 기인한다. 이러한 분위기의 곡은 애상감·비감 등의 정서에 빠져있는 상태를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소월의 시라고 해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당시의 시를 가곡화하는 것, 이면에는 고답적이고 보수적인 음악관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가령 지금 당시의 주제들을 가곡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자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지금 <고향>이나 <농촌>은 무엇인가? 오늘날 우리가 그리워하는 고향은 일종의 환상이기 쉽다.


저멀리 보이는 그리운 내고향
아지랭이 먼산에 끼고
어릴 때 불던 봄피리 소리가
시냇가에 정다웁게 들리네
- 김형주 <고향>


<농촌>풍경도 마찬가지이다. 길·강·산·가을·낙엽·새·나그네·달·봄·하늘·추억·그리움을 노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삶이 모두 이렇게 <아름다운>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이들 시가 아프고 괴로운 현실을 역설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할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이란 현실을 회피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 건강한 모습은 아니다. 한국시가 모두 이런 식으로 전개되었을 리는 없다. 중요한 것은 가곡작곡가들이 시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의존하는 그들의 인생관·음악관이며, 또한 한국가곡이 갖는 전체적인 소극성이다.

뒤의 <표1>에서 알 수 있듯이 꽃·그리움·전원·고향 등의 순으로 내용의 빈도가 나타난다. 자세한 구분을 하지 않고 크게 보면 자연을 노래한 것이 261곡.


즐기는 대중적 낭만주의와 함께 뒤늦게 한국에 소개된 낭만주의 음악가들의 정당화로 문화지체 현상을 낳았다. 오늘날 가곡이 건강하게 발전하지 못한 이유 등의 하나가 민족정서를 잘못 오인하고 있는 감상병에 연유하기도 한다. (민경찬 , 1985)


당시의 감상병, 건강하지 못한 낭만주의는 뒤에 이어지는 한국가곡사 뿐만 아니라 음악을 보는 시각마저도 왜곡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즉 음악이란 현실에 초월해 있고, 먼 나라의 이야기, 구름이나 꿈·별·달을 노래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이때 나타난 감상병은 1930년대에 국한되지 않고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작곡가들도 대부분은 그들의 작품의 가사를 1930년대의 시에서 빌어오고 있다. 물론 지금 소월의 시를 가곡화하는 것이 65퍼센트에 해당되며, 그 다음으로 이별·그리움·고독·추억·꿈 등의 개인감정을 노래한 것이 16퍼센트에 해당된다. 따라서 전체적으로 보아 인간의 참모습이 숨어 버리고 투명한 자연과 비극적 정서·현실 도피성을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민족의 역사에서 주제를 가져온 것이 4곡에 불과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현실의식 외에도 역사의식도 결여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것은 비단 가곡장르에만 국한될 문제는 아니다. 우리 나라 음악의 전반적 차원에서 반성되어야 할 대목들이다.

한국가곡이라고 해서 모두가 은둔적·현실도피적·자연적 정조를 노래하는 것은 아니다. 1960년대 이후의 <현대가곡기>에 접어들면서 모더니즘과 민족정서를 결합시키는 시도가 전개되면서부터 점차 서정시 위주의 경향에서 탈피하기 시작한다. 주제도 자연의 아름다움을 노해하는 것에서 벗어나 현대사회에서의 소외된 인간의 모습·현실적 이미지를 반영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해서 이런 식의 내용을 담고 있는 시를 가곡화하기 시작했다. 예를 모두 들 수 없지만, 백병동의 <鎭魂歌>(千祥炳시), <어둠과 시간과>(이종학 시), <불다페스트에서의 少女의 죽음>(金春洙 시), <貧弱한 올페의 回想>(崔夏林 시), 서우석의 <먼 곳에서부터> (申東曄시) 등은 새로운 시도들에 속한다. 앞으로 이러한 시도들은 지속성을 띠고 전개되어 종전의 한국가곡에서 결여되었던 성격, 즉 서사성과 사실성을 되찾는 데에 자극이 되어야 할 것이다.

주제



시의종류



주제



시의종류




그리움

전원

사랑


고향

식물


자장가



가을. 낙엽



역사


41

33

31

24

21

20

19

16

16

15

15

14

4

4

4

13


죽음

바닷가

절. 불교

추억

고독. 나그네

이별

바람

뱃노래

구름

하늘

기도


기타



12

12

11

11

11

10

8

6

6

5

5

4

21



합계


399


위의 <표2>도 <표1>와 거의 비슷한 순서로 그 주제의 빈도를 나타내고 있다. 다만 빈도가 높은 주제와 낮은 주제 사이에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이 더 명확해졌을 따름이다. 뒤에서도 언급되겠지만 한국가곡의 이러한 내용적 특성은 음악을 삶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역기능을 수행해 왔으며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찬사만을 강조하여 세계를 미화하는 부정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다.



⑥ 시의 가곡화 과정에 대한 분석



우리는 앞에서 개화기 이후 한국가곡에 포함된 시문학 작품을 여러 측면에서 분석해 보았다. 가사로 사용된 시에 대한 문학적인 검토는 이 글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고 필자의 능력도 거기에 미치지 않는다. 다만 제목에서 피상적으로 알 수 있는 주제들을 유형별로 나누고, 가곡화된 상태에서 사용된 음악적 리듬(박자)을 분류하며, 작가별·작품별 빈도수를 조사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통계가 단순히 실증적 자료의 나열이 아님은 여기에서 한국가곡이 반성해야 할 측면들, 나아가서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방향, 채워져야 할 부분들을 암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앞에서의 분석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1) 한국가곡은 자유시보다는 정형시를 가사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노래형식이라는 규범적인 틀 - 가령 2부분 형식이나 3부분 형식, 다 카포 형식 등-에 가사를 맞추어 넣기가 쉽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정형시를 가곡화함으로써 얻는 손쉬움은, 곡 전체를 하나의 박자 - 가령 4/4또는 3/4…-로 계속 진행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정형시는 일정한 음수율에 의해 구성된 언어의 구조물이기 때문에, 가사 자체의 내적인 리듬 - 낭독과정에서부터 느낄 수 있는 리듬 - 과 음악적 리듬을 비교적 쉽게 일치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이에 반해서 자유시는 액센트의 위치나 싯구의 길이가 불규칙적이어서 리듬 패턴이나 박자에 의해 지속시키기가 어렵다. 따라서 처음부터 애창곡의 범주에서 출발했던 한국가곡의 이러한 <어려움>을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유시가 가곡화되는 빈도가 낮은 것은 작곡가 입장에서 시에 대한 깊은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보아진다. 이와 더불어 비정형시를 수용할 만한 음악적 기법의 미성숙함을 여기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2) 한국가곡의 박자 구조상으로 2·4박자 계통보다 3/4·6/8·9/8박자 등의 3박자 계통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6/8박자를 굳이 3박자 계통에 포함시킨 것은, 한국가곡에서의 6/8박자는 서양음악에서의 그것과는 달리 2박자적 속성보다는 그 하부구조인 3박자적 속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타령조의 노래나 뱃노래, 민요풍의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엔 보통 이 3박자 계통의 박자들이 많이 사용된다. 이것은 전통 국악에서의 장단과 서양음악에서의 규범적 박자사이에서 찾아지는 문화적 절충주의이다. 그러므로 한국가곡에서 6/8이나 9/8를 사용하는 방법은 서양음악에서의 실제와 다르며, 그렇다고 해서 그 리듬이 국악의 장단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가곡 작곡가들은 이러한 박자와 리듬의 사용을 통하여 가사에서 느낄 수 있는 향토적 서정성을 실현화하려고 했던 것 같다.

(3) 한국가곡은 그 주제나 내용 면에서 서사적·사실적인 것보다는 서정성이 짙은 것을 위주로 하고 있다. 앞의 도표에서도 살펴보았지만 인간이나 사회·역사에서 보다 자연에서, 그것도 신비화되고 인간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왜곡된 자연에서 소재나 주제를 택한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인간감정을 노래한 것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사랑, 그리움, 이별 등의 비극적·감성적인 면만을 강조한 것이기 쉽다.

한국가곡이 역사성·사실성을 결여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곡이 원래 낭만주의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위로 받을 수 있긴 하지만 그것이 음악계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통념, 즉 음악이란 현실에 무관하며, 또 문관해야 한다는 생각에 미친 영향을 감안한다면 가볍게 보아 넘길 것은 아니다. 범위를 좁게 한정시키더라도 지금의 대부분의 가곡 작곡가들이 보여주는 고답적 태도에서 1930년대에 시작된 <가곡의 낭만주의>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음을 볼 때, 사실성의 결여는 깊이 반성되어야 할 점이다.

(4)한국가곡은 그 주제나 내용 면에서뿐만 아니라 가사의 선택대상이 되는 시인이나 시의 폭에 있어서 너무 좁은 느낌을 준다. 잘 만들어진 시에 자신이 곡을 붙여서 그 노래가 널리 애창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가곡 작곡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희망이 특정의 시인이나 시작품이 수많은 노래로 가곡화되고 있는 <기현상>을 모두 설명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작곡자가 가사를 선택하는 번거로움을, 이미 가곡화된 유명 작가의 시를 손쉽게 선택함으로써 덜어보려는 안이한 태도가 아닌가 하고 의심해 보아야 할 것이다. 새로운 시를 찾아내어 그것을 가곡화하는 과정은 작곡자에게 많은 번거로움뿐만 아니라 고통을 안겨 준다. 그 고통은 새로운 시를 발굴하여 가곡으로 남기는 일을 생각한다면, 참아낼 수 있는 값진 것이다. 필자는 아직도 많은 시인들이 자신이 작품이 가곡화되어 음악작품으로도 남게 되길 기대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기현상>은 시문학에 대한 작곡자의 이해가 아직 세대적 요구에 못 미치기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가곡이 문학과 음악이 만나서 이루어지는 일종의 종합예술임을 생각할 때 가곡화 과정에서 시문학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필수적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시의 리듬과 음악적 리듬의 불일치, 가사의 액센트와 음악적 액센트 사이의 부조화, 다시 말해서 선율·리듬과 가사와의 부적응 상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⑦ 한국가곡 발전을 위한 몇 가지 제언



끝으로 앞에서 살펴 본 한국가곡의 현재상황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하여 앞으로의 발전적 시도를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하려고 한다. 한국에 있어서 가곡의 장르는 많은 한계성과 부정적 측면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대중성 확보라는 점에서는 평가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대중음악과 현대의 예술음악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장르로서의 위치를 굳히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요약하자면 <가을맞이 가곡의 밤>이라는 제목으로 대규모 연주회장의 무대 위에 올려지는 가곡들은 <대중적인 예술음악>이라는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대중성의 확보라는 이유 때문에 공통관습 시대의 음악어법을 답습하는 서정가곡의 단계에서 그대로 머물 수는 없다. 양식적 변혁과 내용적 재검토가 수반되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변혁과정과 대중성의 확보는 서로 용납될 수 없는 패러독스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대중성 확보를 희생하면서 공통관습시대의 음악 양식에서 탈피하여 서구의 모더니즘을 가곡 장르에 받아들인 작곡가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현재 월북 작곡가로 그들의 작품이 출판되거나 연주되지 않지만 1940년대에 이미 러시아 국민악파의 영향으로 무조음악으로 리얼리즘적 입장을 취한 이건우·김순남이 있었다.

기존의 서정가곡이 폭넓은 대중성을 획득한 반면에 지나친 감상성에 치우쳐 있고 역사성·사실성을 결여했다면, 1960년대 이후 동시대적 음악어법에 의한 신작 가곡들은 시의 선택 면에서나 내용·기법 면에서 모두 높이 살만 하지만 청중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한계를 드러낸다. 현대적 음악어법으로 작곡된 가곡을 기피하는 것은 청중뿐만 아니다. 성악가들이 서정가곡을 현대가곡에 비해 선호하는 것은, 마치 교향악단이나 기악 연주자들이 고전·낭만주의 작품을 현대음악보다 선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현상이다.

그러므로 한국가곡의 앞으로의 과제는 청중으로부터 소외되지 않으면서도 동시대적 기준에 가까이 가는 작품을 만드는 일이다. 이 <동시대적 기준>은 최신의 전위적 음악기법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과 다르다. 한국가곡이 회복해야 할 것이 양식적 변혁 외에도 내용적 반성, 즉 서사성·사실성의 획득에 있음을 생각할 때 이 과제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한국가곡이 부담 없는 가사와 선율의 아름다움 때문에 인기를 얻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최근 잘 알려진 가곡이 가사는 빠지고 반주부와 선율만 관현악으로 편곡되어 마치 배경음악처럼 연주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이미 <가곡>이 아니다. 한국가곡이 지향해야 할 것은 가사를 빼면 음악이 의미가 없어지는, 시와 음악의 최선의 결합상태이다. 그 노래를 통해서 - 그것이 연주이든 감상이든 간에 - 우리의 건강한 삶과 정서를 담아내고 표현하여야 할 것이다.


이장직 /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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