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자료실 > 가곡이야기 > 기사와문헌
가곡이야기

평론 - 해방이전과 이후의 한국가곡

운영자 0 2719
"역사라는 이름에 드리워진 한국 창작가곡- 해설과 함께하는 `우리가곡의 밤'을 보고"     

초복을 낀 이틀간 1920년대부터 1980년대에 이르는 한국의 창작가곡을 되짚어 보는 음악회가 있었다. 우리가곡연구회의 주최로 7월 16일과 17일 양일간 가나아트센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해설과 함께하는 우리가곡의 밤-해방이전과 이후의 한국가곡'이 그것이다. 이 음악회에서는 흔히 한국 예술가곡의 `효시'로 알려진 홍난파의 <봉선화>로부터 분단이후 정치상황 때문에 90년대를 전후해 월북작가 해금에 의해 비로소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안기영, 김순남, 이건우의 작품, 그리고 좀더 현대적인 색채를 띠고 있는 60년대 이후에 발표된 곡들이 선보였다. 또한 한국의 현대사를 관통하는 창작가곡의 맥을 음악과 함께 이해하기 위해 음악학자 민경찬의 해설이 곁들여졌다.
첫날 공연 레퍼토리는 한국에서 창작가곡이 형성된 1920-30년대 가곡이었다. 1920년대에 발표돼 세간에 인기를 누렸던 안기영의 <그리운 강남>으로 시작해, 월북 시인의 노랫말이라는 이유로 시가 바뀌거나 불리워지지 않았던 정지용 시인의 가사에 의한 채동선 작곡 <고향>, 김성태 <말> <바다3> 등이 무대에 올랐다.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이 주로 창가와 찬송가로 시작되었다는 것은 1920년대 한국의 가곡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거기에 1920년대 이후 불어닥친 뒤늦은 서구 낭만주의의 한국식 표현도 곳곳에 눈에 띈다. 박태준의 <동무생각(思友)>와 현제명의 <고향생각>은 찬송가를 자기 식으로 개작해 한국말 가사를 붙여 놓은 것 같으며, 안기영의 곡들은 초창기 창가의 단순성과 민요적 색채가 결합돼 있다. 지금도 많이 불리워지는 이흥렬, 김동진의 곡들인 <바우고개>, <꽃구름속에>, <가고파>는 서구의 낭만주의와는 다르게 생의 비장함은 가셔지고, 매체가 피아노와 성악가의 발성이 아니라면 흔히 가요에서 드러나는 가벼움이나 감상이 엿보인다. 둘째날 해방 이후의 한국 창작가곡을 살펴보는 자리에서는 가사의 내용보다는 음악적 변천이 지난 50 여년간 어떤 변천을 겪었는가를 짐작하게 해주었다. 김순남, 이건우, 윤이상의 1940년대 작품들은 지금 들어도 여전히 그들 작품에 내재돼 있는 전통과 현대에 대한 선진적 감각이 돋보였다. 최영섭과 김순애의 <그리운 금강산> <그대있음에>, 나운영과 백병동의 <접동새> <강강술래>가 병존했던 1960년대의 가곡들은 전세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않는 구세대와 음악의 현대화라는 명제앞에  자신만의 어법을 찾으려는 새로운 세대의 영상이 중첩돼 있다.
해설을 맡은 민경찬은 "한국가곡은 단순히 가곡으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민족의 노래 그리고 세미클래식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고 한국의 창작가곡을 평가했다. 열린음악회 형태의 무대에서 아직도 빼놓을 수 없는 레퍼토리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 창작가곡. 우리가곡연구회의 `우리가곡의 밤'은 지금 접하고 있는 이러한 문화적 현상이 한국에서 어떤 음악흐름을 갖고 있는가를 보고 느끼게 해주는 자리였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 그러나 홍난파의 <봉선화>에서 "울밑에선 봉선화야 내모양이..."를 노래할 때 `야'와 `이'같은 접미어와 조사가 긴 음이나 상행음으로 처리되거나, <동무생각>에서 `봄의 교향악이'가 `교향아기'로 들리는 것과 같은 말과 음의 부자연스러운 결합, 뿐만 아니라 그나마 이것도 성악가들의 서구식 창법인 벨칸토에 실리면 뭔 소리인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현상 등은 여전히 남는 숙제이다. (월간 에세이, 1999.9)

김정희(음악평론가)

이글은  1999년 7월 16일부터 7월 17일까지 가나아트센터 야외공연장에서 열린 `해설과 함께하는 우리가곡의 밤-해방이전과 이후의 한국가곡'에 대한 음악평론입니다
0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