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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뼈아픈 자각의 97년 창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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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머리말

1997년 연말을 강타한 IMF 한파는 사회 전반에 걸쳐 그 간의 우리 생활 방식에 대한 재고를 요구했다. 믿었던 우리의 빛난 성과 중 적지 않은 부분들이 허상이었음을 우리는 시인해야 했고, 본연의 위치를 찾기 위한 뼈아픈 반성이 필요함을 누구나 생각했다. 과연 한 사회에서 음악계의 성과란 무엇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 경우 성과는 결코 사회에서 얻어진 무엇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문화에 있어서 생산이란 점을 떠나 생각할 수 없다.
문화의 생산과 소비가 어우러지는 가운데, 거대한 외국 문화와 국내 자생문화, 상업문화와 순수문화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우리의 음악 성과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방적으로 왜곡된 소비와, 이와 별개의 생산이 공존하는 현 상황에서 외래와 자생 문화, 상업과 순수 음악이 균형 이루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에서 얻어진 성과란 행위 그 자체의 결과일 뿐, 그것의 사회적 유용성, 부가가치를 논하는 것은 무리인지도 모른다.
사실 대외 시장개방이라는 UR 협상 논의가 분분할 때 우리 음악계는 전혀 무관했다. 왜냐하면 음악만큼 시장 개방이 완성된 분야는 없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외국 음악가나 단체의 내한 공연이 빈번해도, 방송에 외국 작품이, 또 외래 음반이 범람해도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더더욱 외국 유명 연주가의 내한이 많아질 수록 음악계가 국제, 세계화하는 것으로 인식할 정도였다. 개화기이래 무방비로 개방되어 온 우리 음악 시장의 생리로 볼 때 이는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결국 우리는 그 본질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보다는 소비재로서의 음악을 생각하게 되었고, 오랜 검증과 잘 제작된 외래 음악은 음악을 소비재로만 생각하는 사회에서 범람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언론 및 음반 매체까지 독점한 대기업들의 공연 분야 참여는 문화 중심을 자본 논리로 움직이게 했다. 순수예술인들의 작업을 초라하게 만들면서 그들은 많은 제작비의 이벤트성 대형 공연들을 유행시켜 종국에는 음악분야의 경제 종속도를 가증시켰다. (그 간 음악계가 얼마나 경제에 종속되었던지는 IMF 한파 이후 불꺼진 날이 많은 예술의 전당을 보면 알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우리 사회의 한 시대, 시공간을 증명하는 생산(독창성, 창조성에 바탕을 둔)이랄 수 있는 작곡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은 불가사의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이는 작곡계가 진정한 자기 좌표에 위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관할 수 있던 것은 아닐까? 비평의 대상조차 삼지 않는 무관심 속에 작곡계와 학교라는 좁은 울타리에 안주하여 외부와 무관하게, 불수의근처럼 철따라 발표회를 여는, 소극적 방식에 따른 것이 아닐까? 작곡계는 21세기를 바라보면서 급변하는 문화 흐름과 청중의 요구, 그리고 그들의 문제, 생각에 깊이 관심 가져야 할 것이다.
또한 97년을 정리하면서 작곡계에 대두되는 문제 중 하나는 무분별한 국제현대음악제 양산에서 알 수 있는 결집력 부재이다. 사회의, 사회에 대한 무관심을 응징(?)하기라도 하듯 국제 교류에 적극 관심 갖기 시작한 작곡계는 최근 몇 년 사이 국제현대음악제를 양산했다. 서울을 비롯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많은 국제현대음악제는 지방 작곡계를 활성화하는 면도 있지만 결국 관심의 분산, 예산의 중복 투자, 공연장과 청중 확보 및 행사 인력 등에 있어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켰다.
또 적지 않은 대회 스탭이 강단에 서는 교육가라는 점에서 수업 부실을 낳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보다 우선하는 것은 이러한 행태가 결국 각 지방마다의 작곡계를 고립시킬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작곡계 전체를 지리멸렬하게 만들, 결집력 약화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9, 10월에만 6개의 국제현대음악제가 열렸다면 어딘가 이상한 일이 아닐까? 그것도 작곡계로서는 큰 국제 행사였던 세계음악제가 열리는 해에도 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은 우선 전국적인 창작인들의 이해와 설득이 부족했던 세계음악제 주최측이 반성해야 할 것이며 더 나아가 작곡계 지도층 모두가 반성해야 할 일이다.
그러한 가운데 지난 해보다 많은 연주인들이 창작음악을 레퍼토리로 삼았던 점은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한 예당출판사가 114 작품을 망라하여 만든 한국관현악전집은 미약하나마 창작을 중요시하는 흐름이 생기고 있음도 보여 주었다. 이미 출판된 실내악곡 전집과 더불어 우리 음악계의 중요한 유산인 이 전집은 세계로 수출되는 우리의 몇 안되는 음악문화 상품이기도 하다. 또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연구소는 한국작곡가사전 2, 3을 출판했다.
1939년 이전 출생의 작곡가들을 다룬 전편에 이어 1940년 이후 출생 작곡가들을 북한은 물론 중국 동포 작곡가들까지 망라함으로써 우리 시대의 중요한 데이터 베이스를 만들었다. 그러면 세계음악제를 비롯한 우리의 많은 현대음악제부터 정리해 본다.

II. 현대음악제

지방자치제 이후 지방 작곡계에서 현대음악제를 주도적으로 개최하려는 시도는 매해 늘고 있어서, 올해에도 마산과 창원을 중심으로 한 '97 합포만 현대음악제가 새로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확인된 것만 총 9개의 국제 현대음악제가 97년 한 해에 열렸으며 이들 중 외국 인사 초청이 있었던 여섯이 9월과 10월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숫적 풍성함은 한편으로 왜 이렇게 많아야 하는지에 대해 자문하게 만든다. 혹시 우리 사회에서의 소외감의 대안, 혹은 외국 문화에 대한 콤플렉스는 아닐까? ISCM 한국위원회가 주최한 세계음악제(ISCM World Music Days) 서울대회(9. 26-10. 3)는 작곡계의 입장으로 볼 때 75년의 긴 역사를 통해 현대음악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 음악제란 점에서 으뜸으로 의미있는 행사였다. 1956년에 가입, 1972년 재가입이라는 우여곡절을 겪은 우리로서는 작곡계의 역량을 총 결집하여 이를 세계에 보일 수 있는 호기였다. 연주된 세계 38개국으로부터의 총 89 작품 중 우리의 입선작은 최명훈의 윤을 위한 현악사중주곡, 문성준의 테이프 음악 두드리, 김재욱의 해꽃처럼 눈부시고 물꽃처럼 영롱한, 조성온의 곤이었으며, 윤이상의 바이올린 현주곡 제3번, 박용실의 우락 V, 이정혜의 북, 김기범의 하늘과 궁창의 노래, 이신우의 보태평, 나인용의 가시리, 홍수연의 뜰, 홍신자의 예로우 버드, 정남희의 껍데기는 가라, 이만방의 영가, 강석희의 오페라 초월이 추천 및 초청작으로 연주되었다. KBS 교향악단, 꼴로르 현악사중주단, 한국전자음악협회, 한국페스티발앙상블, 대구시립예술단, 서울예고교향악단 등 우리의 음악단체와 엘리슨 앙상블(호주), 토쿄 신포니에타(일본), 앙상블 아방가르드(독일), 콘티눔(미국), ASKO 앙상블(네델란드), 바젤음악원 전자음악스튜디오(스위스), 토쿄 실내오페라 극장(일본) 등 외국 연주단체, 그리고 개인 연주자들에 의한 총 23회의 공식 연주회 프로그램은 8일이라는 대회 일정으로 볼 때 분주하며 많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청중 동원은 성공적이어서 현대음악에 대한 일반인들의 높은 관심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음악회 프로그램은 오페라, 합창곡, 관현악곡, 실내악, 전자음악, 설치 등 다양한 장르가 망라되었으며 어린이를 위한 교육 프로그램, 전통 종묘제례악 등 우리 음악문화를 광범위하게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포함되었다.
또한 여러나라 작곡가들이 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펼침을 확인하는 계기도 되었다. 개막 공연에서의 스웨덴 작곡가 카린 렝크비스트의 솔상겐은 대중음악어법과 현대음악어법을 과감히 융합시킴으로써 인성을 주제로 한 이번 세계음악제의 개막곡으로 매우 적절했다. 중간부의 지루함에도 불구하고 대중 어법이 표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킨 그 시도는 우리 작곡가들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강동석의 협연으로 이루어진 윤이상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도 기억될만한 의미있는 연주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ISCM의 심사를 통해 선정된 작품들이 기대보다 덜 연주되었고 집행부 초청작품들이 많아 아쉬움을 남겼다. 이는 이 음악제에 대한 기대를 반감시킨 요소이기도 했다. 또한 음악제 준비 과정에 있어서 음악계는 물론 전 작곡계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것은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제의 결과가 성공적일 수 있던 것은 바로 우리 음악계의 저력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세계음악제에 이어진 제25회 범음악제(10. 4-6)는 두 차례의 ISCM 한국지부 회원 발표회를 포함시킴으로써 세계음악제의 연속과 같은 인상을 남겼다. 이 음악회에서는 백승우의 4 Stuecke, 이인식의 트리오, 온정헌의 현악사중주 제1번, 김현민의 3 연습곡, 전상직의 3 Mosaiken, 진규영의 SEON, 장정익의 대취타, 나인용의 모노로그, 김광희의 3 연습곡 등이, 나까무라 피아노 독주회와 앙상블 매뉴팩춰 서울-토쿄 콘서트에서는 이강율의 서큐레이션, 백병동의 3개의 바가텔, 정태봉의 Kosmos 등이 발표되었다. 또한 크로아티아의 작곡가 밀코 크레만의 음악세계를 다룬 프로그램도 있었다. 젊은 작곡가들의 작품 발표회에서는 겐 이치로 이토, 이장렬, 홍순욱, 이일주, 이경희, 이근형, 하영미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세계음악제에 연이어 열림으로써 득보다는 실이 많았던 음악제였다. 또한 발표작 대부분이 너무 특정 문화에 한정되었다는 평도 들었다. 자체 기획, 20세기음악축제를 통해 작곡가들로 하여금 신작 창작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스스로 창작 레퍼토리를 넓히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 있는 한국페스티발앙상블은 '주제를 같이 하는 피아노 릴레이'라는 주제하에 97년도 20세기음악축제(1. 27-2. 1)를 열었다. 그리하여 매일 민요, 미술, 춤, 문학, 재즈, 자연을 주제로 하여 작곡한 창작곡들을 발표했다. 민요를 주제로 이영자의 엄마야 누나야 주제에 의한 8개의 변주곡, 박용실의 우락을 비롯, 미술을 주제로 이혜성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초록의 액센트, 이강율이 달리의 그림에 영감을 얻은 끝없는 수수께끼가, 춤을 주제로 구본우의 춤추는 리듬, 전순희의 춤 연작 시리즈 1, 2가, 재즈를 주제로 한혜리의 시와 그림 앞에서 춤을, 이재연의 어린이를 위한 5 개의 바가텔, 아이케에게가, 자연을 주제로 홍수연의 마루, 이경화의 3개의 소품 등이 빌라-로보스, 조지 클럼, 히나스테라, 쇼스타코비치, 드비시, 라벨의 작품과 같이 발표되었다. 한국페스티발앙상블의 이 같은 기획은 연주자와 작곡가 사이에 상호 보완적 관계를 유지시키면서 다양한 레퍼토리를 얻는다는 점, 또 여성 작곡가들에게도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는 점에서 의미있다.
브레멘 국립예술대학의 박영희 교수를 비롯, 제프 니콜스, 추엔충, 마리오 다비도프스키 등 외국 음악인들과 더불어 46명의 국내 작곡가들의 작품이 발표된 대규모의 음악제였던 제7회 영남국제현대음악제(9. 6-11)는 대구 및 부산, 경주 등 영남의 여러 도시에서 열렸다. 동서양 미술과 무조음악의 접근 모색을 주제로 현대음악 학술 심포지움과 더불어 무용, 미술 분야의 참여, 제14회 영남작곡콩쿨 등이 공식 행사로서 치루어진 종합 음악제였다.
마산, 창원을 중심으로 작곡가와 작곡에 대한 정보 교류를 위해 합포만음악제에서 개칭된 '97 합포만 현대음악제(9. 9-10)는 전욱용의 환상곡, 김용교의 음상, 죠 커틀러의 샤먼, 보르코프스키의 토카타, 김우태의 굿거리 장단에 의한 흥겨움 등이 발표되었다.
한국악회와 대전시민회관이 공동 주최한 '97 대전현대음악제(9. 29-10. 7)는 9일이라는 긴 기간 중 4일만 프로그램이 있었다. 첫 날, '세계 현대음악의 흐름과 유럽 현대음악의 특징'을 주제로 오스트리아 작곡가 군터 발덱이 주제발표를 맡은 세미나를 시작으로 30일에는 공모를 통한 '청년 작곡가의 밤'이 열렸다. 최영신의 SHINE, 민동원의 독백, 이은정의 풀루트 소나타, 이토 켄이찌로의 Intentionale Figuren 등 모두 9 작품이 연주되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에 열린 셋째날에는 신석희의 피아노를 위한 음악 제2번, 조혜숙의 바람의 색, 홍사은의 가을 노래 그리고 겨울 雅歌, 김회영의 아누스 데이, 김대성의 아리랑 푸리, 안혜령의 꼬메디아, 정태봉의 소리[길 V]가 연주되었다.
넷째날은 해설이 있는 음악회로 프로코피에프의 피아노 소나타 제1번, 스트라빈스키의 병사의 이야기, 군터 발덱의 엘레지, 칸토 델레 시레네가 연주되었다. 대전현대음악제는 시당국의 지원하에 대전시민회관의 기획 프로그램화함으로써 바람직한 지방 음악제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부산일보 주최의 제5회 부산현대음악제(10. 23-24)는 신인들을 등용하는 콩쿨이 중심인 음악제이다. 대상작을 내지 못했던 지난 4회와 달리 이번 음악제는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김봉호의 관현악곡 서광이 대상으로 선정되었다. 그리하여 각 부문별 우승작들이 '실내악과 합창, 가곡의 밤'과 '관현악의 밤'으로 나누어 발표되었다. 첫 날에는 이장렬, 최명훈, 김신웅, 이미경 등 공모작품 4곡과 백병동의 현악사중주 제2번, 안톤 베베른 등 추천작품 2곡이 발표됐다.
부산시립교향악단(지휘 곽승)연주로 열린 '관현악의 밤'에서는 김봉호, 서순정의 입상작과 더불어 이상근의 교향곡 제6번 등이 연주되었다. 부산현대음악제는 다른 현대음악제와는 달리 오케스트라, 합창 등 대편성의 작품들을 다룬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있다고 생각한다. 생소한 초연곡들을 기꺼이 맡은 부산시립합창단과 교향악단, 그리고 수석 지휘자들의 높은 참여도로 볼 때 음악제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합창 공모작 중 일부 발췌 연주된 경우처럼 현대음악 전문연주단체의 확보 등이 아쉬움으로 지적됐다.
1991년 시작된, 젊은 음악인의 모임 주관의 '97 대구현대음악제(7. 1-4)는 초청 작곡가 펜데레츠키을 집중 연구, 조명했다. 마지막 날 '펜데레츠키 음악의 밤'에는 작곡가가 지휘하는 대구시립합창단의 연주로 테데움이 연주되어 호평을 받았다. 펜데레츠키 특집 외에도 프라이부르크 현대음악연구소를 중심으로 한 독일의 현대음악에 관한 워크샵(강사: 마틴 베르간데)과 한국근대음악연구, 재즈음악연구 등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었다.
이 음악제를 통해 성사된 대구시립합창단과 임헌정이 이끄는 부천필하모니의 98년 펜데레츠키 축제 초청은 우리나라 현대음악 연주사에 있어서 쾌거라 할 수 있다. 그 중 펜데레츠키의 지휘를 통해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대구시립합창단의 초청은 우리 합창음악 수준도 세계적임을 인식시킨 사건이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 음악제도 잘만 기획한다면 그 효용성을 증폭시킬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단순히 발표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 기회를 통해 효과를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한국음악협회가 주최한 제29회 서울음악제(11. 18-21)는 오랜만에 '관현악의 밤'이 추가되면서 4일 동안 열렸다.
'관현악의 밤'에서는 백의현의 빛, 박영근의 떠남, 상실 그리고 돌아옴, 신유진의 A-AK 등이 연주되었으며 '실내악의 밤 1'에서는 임신덕의 현악사중주를 위한 기대 II, 김준홍의 5명의 주자를 위한 한, 박정선의 네 편의 노래, 조석희의 현악사중주, 최승준의 독백, 정태봉의 예언자가 연주되었다. 공모작 7편과 위촉작 7편이 발표된 '가곡의 밤'과 공모작만으로 꾸며진 '실내악의 밤 2'에서 몇 신인들의 작품이 눈에 띄었지만 전체적으로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평을 받았다. 많은 현대음악제가 있는 가운데 한국음악협회에 의한, 총 결산적 의미를 지니는 서울음악제로 볼 때 변화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하겠다.
새로움에 대한 추구가 없는 창작음악제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기존 음악제와 별 구분 안되는 동음반복식의 음악제라면 서울음악제는 무의미하다고 본다. 매번 가곡과 실내악 중심의 한정된 장르에 묶이지 말고, 과감한 혁신과 새로운 아이디어, 그리고 미래지향적 사조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단계라고 생각한다.
 
III. 국내 단체 및 개인 활동

창작음악은 주로 단체 발표회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개인 발표회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작곡가들은 작품 수와 비용문제로 단체 발표회를 선호한다. 이는 기존 창작 단체의 기능이 사조나 경향에 의한, 적극적 의미의 동인 성격이 아니라 단순히 발표 기회를 획득한다는 소극적인 것임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이제는 신인들 중심의 동인활동을 활성화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이상 이미 기존 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기성인들에 의해 새로운 단체들이 생겨나는 일은 지양되어야 한다. 기성인들은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그들 단체에서 충분히 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작곡 21, 주창회가 올해 활동단체로 추가되었다. 이 중 작곡 21은 가곡을 중심으로 한 단체이며 주창회는 여성들만의 모임으로 음악회마다 일정 주제를 중시하려는 단체이다.
창악회는 필라델피아 신음악 네트워크와의 한미작품교류의 밤(4. 21-22)을 열었다. 김광희의 바리톤을 위한 새, 박은혜의 회상, 조인선의 먼 곳으로부터의 소리, 김현민의 현악사중주 제1번, 김중석의 저녁무렵, 이진우의 현악사중주 제2번이 미국의 J. Primosch의 판타지, R. Wernick의 첼로 소나타, C. Triputi의 Tripartita 등과 같이 연주되었다. 가을 정기발표회(9. 8)에서는 오이돈의 포니 인형, 김인철의 음악, 박경종의 세 편의 노래, 주명희의 묵상, 김은혜의 푸가, 정현숙의 음악 1, 박재은의 오브리가토, 윤해중의 운향 등이 연주되었다. (미국에서의 발표회는 해외발표항 참조) 또한 제4회 하기 작곡 캠프(7. 1-4)를 '편곡의 이론과 실제'란 주제로 개최했으며 작품집 CD 제23집도 출반했다. 아세아작곡가연맹 한국위원회의 발표회(5. 28-30)에서는 팅 리엔 우의 마이치 첸을 비롯, 김선하의 피아노 독주를 위한 곡, 이순필의 현악사중주 결합, 이영자의 자화상, 구본우의 춤추는 리듬, 김은혜의 가곡 정물, 성두영의 수필, 이성재의 주제적 12음과 4곡, 김정길의 미크로 메크로 등이 연주되었다. 또한 허상훼의 '혁신적 영감의 자료로서 전통을 이용하는 방법에 관하여'와 Andrew Imbrie의 '리듬, 박자, 강약'을 주제로 한 강연도 있었다. 소리목의 제16회 발표회(4. 25)는 이강율의 달리의 끝없는 수수께끼, 김동수의 현악사중주 3번 아리랑, 김준홍의 ADDA, 길일섭의 두 개의 악장, 김기범의 줄놀이, 김현기의 관악 8중주가, 제17회(11. 27)에서는 조석희의 세 개의 소품, 장덕산의 상 7번, 임영미의 Orbit, 최승준의 세 편의 가곡, 윤성현의 드로잉 II, 김선경의 피아노 소품 III, 허영한의 분노의 그 날이여, 김기범의 빛과 별의 노래가 발표되었다. 21세기악회는 두 차례의 발표회를 통해 신인들과 기성의 작품을 나누어 들려 주었다. 제38회 발표회(4. 28)는 공모를 통해 선정한 젊은 신인들의 작품을 포함한 음악회로 홍지숙의 목관 5중주, 김혜진의 4중주, 김은심의 목관 5중주, 안형주의 심청가가 회원 임선애와 이홍석의 목관 5중주, 폴록의 그림에서처럼과 함께 연주되었다. 제39회 발표회(11. 18)에서는 박인호의 불안에 관하여 II, 정부기의 정선 아리랑 주제에 의한 농요, 이영자의 수채화, 나인용의 독백, 공석준의 현악5중주, 이영조의 소리 No. 6이 발표되었다. 창작음악연구회는 음악춘추사를 통해 출판한 한국현대피아노곡집의 수록작을 중심으로 한 연주회, '스코어를 보며 감상할 수 있는 한국의 현대 피아노 작품' 발표회(5. 2)를 통해 정영희의 음색, 김용진의 3개의 송시, 김중석의 6개의 놀이, 나인용의 전설, 윤해중의 4개의 소품, 백병동의 선에 관한 각서, 허방자의 2개의 도식, 황철익의 3개의 투영을 발표했다. 한국여성작곡가회 제29회 작품발표회(5. 20)에서 이원정의 즉흥곡 II, 박동임의 파동, 김은숙의 공(空), 이경화의 五友歌, 조선희의 Rain IV, 이찬해의 점에서 선에서가, 또 동일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의 제8회 세미나를 통해 김은혜 박사의 강연, '다리우스 미요의 발레음악 분석을 통한 음악의 기능'이 발표되었다. 제30회 발표회(11. 2)에서는 김영채의 새야 새야 주제에 의한 변주곡, 박영란의 안개에 둘러싸여..., 이은주의 주제와 6개의 변주곡 등이 발표되었다. 미래악회의 제6회 작곡가의 초상(5. 26)의 주제는 이만방과 그의 음악이었다. 이에 대한 문연경의 주제 발표와 더불어 이만방의 허튼 가락, 心, 음악이 연주되었다. 하반기에 있었던 제22회 연주회(11. 10)에서는 홍수연의 오스모즈, 박인호의 4 바가텔, 박용실의 나비처럼 가벼운 현자에게 1과 3, 진규영의 비구상, 이혜성의 아직과 이미 사이가 발표되었다. 한국국민악회의 제13회 작곡발표회(5. 30)에서는 홍권옥의 즉흥곡, 조영배의 타보라, 김형주의 구도, 류행웅의 환상곡, 임우상의 3개의 단편 등이 발표되었다. 작악회의 제19회 발표회(5. 31)에서는 진정숙의 잊혀진 추억 속으로, 조의경의 녹색의 화집, 백경아의 어울림, 길정배의 한마당, 박혜경의 변화, 김경은의 금관 3중주, 진정숙의 잊혀진 추억 속으로, 류행웅의 대화, 정회갑의 散策과 獨이, 하반기 발표회(12. 5)에서는 황철익의 풍색의 나날, 반디불 등이 연주되었다. 아세아기독교작곡가연맹의 발표회(6. 3)는 '사랑과 영혼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함진숙, 박혜경, 진정우, 전낙표, 황 선, 황철익, 이순교, 이영조, 김영호, 허방자, 이문승, 나인용 등의 성가와 기악곡들을, 하반기 창작음악연구회(10. 27)에서는 권상희, 정영희, 백경환, 황철익, 허방자, 고영필, 김경은, 이영철, 김경중, 김영호, 김중석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아기작은 미국 LA에서 남가주 한인교회음악협회와 공동으로 합동작곡발표회(7. 13)도 가졌다. 오이돈, 김덕규, 채경화, 김영채, 고태은의 여성작곡가 5인이 발족한 주창회(주제가 있는 창악 음악회)의 제1회 창작 발표회(6. 26)가 '자연, 환경, 그리고 인생'이란 주제로 열려 시대성의 반영과 환경 문제 등 적극적인 사회 참여의 면모를 작품으로 보여 주었다. 제3세대는 두물워크샵에서 첫번째 제3세대 작곡세미나(7. 8-10)를 열었다. '대중사회에서의 예술음악의 위치'를 주제로 강내희, 이소영, 허영한의 주제 발표와 토론을 통해 21세기 대중사회에서 예술음악의 위치와 역할을 점검했다. 그리고 황성호, 구본우, 마도원에 의한 '나의 작품을 말한다.'와 작품 연주가 있었다. 제25회 발표회(12. 1)에서 허영한의 6도 간격으로-페르트에게, 김인환의 가곡 돈타령, 이건용의 무언가 네 편, 황성호의 합창 모음곡 蛇頭峰 神話, 강준일의 합창을 위한 비나리 II가 발표되었다. 한국작곡가회에서 주관한 실내악의 밤(9. 20)에서는 송재철의 소품, 이종록의 실내악곡, 김국진의 피아노 트리오, 이홍천의 연주 등이 발표되었다.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향신회도 두 차례의 발표회를 가졌다. 제24회 발표회(5. 20)에서는 최석태의 하나의 노래, 박종철의 전자음악 산수도, 강경화의 비올라 폴카, 이옥경의 두 편의 가곡, 고용옥의 피아노 3중주, 김성덕의 피아노를 위한 3장이 발표되었고, 제25회(11. 28)에서는 정승원의 영혼을 위한 기도문, 최석태의 노래 II, 이옥영의 서정시, 황장수의 3악장, 전재헌의 두 편의 가곡, 이승임의 즉흥곡 자유에로, 하순봉의 디아포라 II가 연주되었다. 작곡신세대의 제10회 발표회(10. 27)에서는 김진우의 까치바람의 죽음 3, 한정임의 9710, 김인철의 하나의 단편, 조성희의 3개의 소품, 이규숙의 天, 심진섭의 컴퓨터를 위한 톤 그래프 2가 연주되었다. 또한 신작 가곡을 위해 결성된 작곡 21의 첫 발표회, '내 마음의 노래'(11. 12)에서는 김동환의 별이 내리는 밤, 박이재의 설악산에 올라, 김진우의 가을은 가버렸는가?, 정덕기의 겨울을 난 목련꽃 눈, 한정임의 님에게, 박진욱의 겨울 산성 등 11인의 작곡가의 21곡이 발표되었다. 매해 12월 강준일, 이건용, 황성호, 김광순 등이 가곡들을 중심으로 여는 겨울나무 정기발표회(12. 4)에서 강준일의 마을의 노래, 도라지꽃 등과 김광순의 온 고을의 천중절, 진달래꽃, 이건용의 그 날, 김상헌의 느낌, 황성호의 쌍죽분을 보내며, 백두산환상곡 등이 발표되었다. 안익태작곡상의 대상작은 이신우의 관현악곡 시편 20이었으며, 이현주의 12개 창문들을 통한 빛이 가작으로 입선했다.

개인 및 해외 발표
 
올해는 홍난파 선생의 탄생 100년, 윤이상 선생 탄생 80년이 되는 해였다. 이를 기리는 음악회들이 있었으며 이 외에도 악단 원로들의 탄생과 정년을 기념한 발표회, 그리고 이종구, 이만방 등 작곡가의 초상과 신인을 포함한 여러 작곡가들의 개인 발표회가 있었다.
우종억의 작곡발표회(3. 25)가 계명대학 정년퇴임을 기념하여 열렸으며 이건용의 창작 노래들이 이강숙 초청 시리즈 3, '시심을 찾아서'(4. 14)을 통해 발표되어 근원적이며 보편적인 성격의 노래를 추구한 음악회라는 평을 들었다. 주한독일문화원이 주최하는 새마당 시리즈의 작곡가 집중 프로그램으로는 '시나위 가사의 가곡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의 이종구 작곡발표회(6. 17)로 열렸다. 가극, 서사음악, 마당극, 무용,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의 작업을 보여준 이종구는 단절된 우리 음악을 오늘날의 언어와 정서로 구현하기 위해 현대음악 감각을 가미한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혜성가, 찬기파랑가, 예경제불가 등의 작품이 소개되었다. 부산 작곡계에서는 최석태, 안일웅이 개인 발표회를 열었다. 최석태 작곡발표회(5. 20)에서는 하나의 노래, 눈 등이, '소리없는 소리'라는 제목으로 열린 안일웅 작곡발표회(5. 29)는 첼로와 빛, 퍼포먼스에 의한 공연이 펼쳐졌다. 대전에서는 김호준 작곡발표회(6. 20)도 있었다. 이원정 작품발표회(8. 31)에서는 즉흥 II, 피아노 트리오, 모음곡 감상적 은유 등이, 이진우 작곡발표회(10. 15)에서는 자화상, 피아노 트리오 등이, 노정희 작곡발표회(10. 21)에서는 세 개의 단편, 시편 150, 보리 피리, 아이의 마음이, 조 념 작곡의 밤(12. 8)에서는 가곡 보리피리와 녹두꽃을 비롯 교향곡 통일 등이 발표되었다. 이 외에도 희수를 기념한 김순애 가곡 발표회(4. 24)가 있었으며, 홍난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음악회(3. 20)도 있었다. 이렇듯 선배 작곡가들을 기리는 음악회의 하나로 윤이상 탄생 80주년 기념 연주회(9. 17)가 베를린 콘체르트 하우스에서 열렸다. 국제 윤이상협회가 주최한 이날 연주회는 작곡가의 음악세계를 더욱 널리 알리기 위해 창단된 윤이상 앙상블의 데뷔 무대이기도 했다. 작곡가의 영상과 더불어 그를 추모한 일본 작곡가들의 작품이 연주되었는데, 이 행사가 주독 일본문화원 후원으로 열린 것은 우리 작곡계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한 이흥렬의 17주기를 기린 음악회(11. 17)도 있었다. 이철주의 섬 집 아기 주제에 의한 변주곡, 이영수의 천내동 가을, 이영조의 바우고개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 이흥렬의 가곡들과 같이 발표되었다.

해외 발표로는 필리핀에서 열린 제18차 아시아작곡가연맹대회(1. 20-27)에서 관현악을 위한 서경선의 시곡과 유병은의 한을 비롯 오숙자, 이경화, 조인선, 조선희, 박정선, 엄경숙 등의 작품이 발표되었다. 북가주음악예술원 초청 작곡가로 선정된 서경선의 포엠이 '97 봄, 우리 음악회'(2. 22, Herbst theater)를 통해 연주되었다. 또한 강석희의 관현악곡, 가을의 제전이 타이충(3. 25)과 타이페이(3. 26)에서, 황철익의 콘서트 오페라 바람색의 나날(5. 23)이 동경 마애바시 시민회관에서, 10월 9일에는 콘서트 오페라 이슬을 일본 동경 시비크홀에서 연주되었다. 또한 황철익, 허방자에 의한 예술가곡, 성가작품 발표회가 토쿄 이시바시메모리알홀에서 열렸다. 북경에서 열린 제9회 기시코 국제교류음악회에 이영자의 피아노를 위한 열과 정이 연주되었고 뉴욕의 서울 심포니 오케스트라, 제39회 정기연주회(10. 4, Merkin Concert Hall)에서 백병동의 여울목이 연주되었다. 창악회는 상반기 서울에서 있었던 한미작품교류 음악회의 일환으로서 미국 연주회(10. 13-1. 1, Ethical Society Hall)를 필라델피아에서 가졌다. 길일섭의 Reflection, 김준홍의 Knoten, 백승우의 4개의 소품, 최승준의 3개의 노래, 이경화의 Lake Side, 박정선의 Nexus, 이종구의 이중주가 연주되었다. 또한 탬플대와 펜실바니아주립대에서 한국음악에 대한 특강도 있었다.
작곡 음반도 여러 편이 출반되었다. 정안민이 무용음악들을 모은 홀리 스네이크을, 박은혜와 황성호도 개인 작곡집을 내었다. 또한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작곡과 교수 작품집을 비롯 이건용의 AILM을 위한 미사(대구시립합창단), 그리고 창악회, 향신회 및 작곡 21의 신작 가곡 모음집 '내 마음의 노래' 등도 출반되었다.
 
IV. 연주 레퍼토리로서의 창작음악

최근 몇 년 사이 창작음악들은 작곡 발표회에서만이 아니라 일반 연주회에서도 흔히 들려지는 것이 되었다. 그만큼 창작음악의 수준과 공연 음악으로서의 위치가 높아진 때문일 것이다. 97년에는 창작음악들만으로 꾸민 독주회 및 발표회도 흔했다. 그러나 연주 중심의 음악제에서 차지한 창작음악의 비중은 결코 높지 않았다. 97년 음악제를 대표하는 서울국제음악제(8. 25-9. 11)는 타 음악제와 비교해 많은 음악회, 즉 4회의 전야제 공연과 13회의 본연주회를 통해 우리 연주가들의 실내악 수준이 세계적임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좋은 연주가들을 통해 창작음악을 빛낼 수 있는 호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하지 못했다. 한국을 빛낸 7인의 음악가 초청공연 등 다양한 주제 기획으로 관심을 불러 모았던 이 음악제(특히 실내악 분야)에 걸맞는 창작 음악에 대한 배려가 아쉬웠다. 실내악 분야와는 달리 관현악의 경우 유로-아시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박정선의 넥서스 VII- 나의 사랑하는 나라을, 수원시립교향악단이 김정길의 관현악 모음곡을,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현주의 12개의 창문들을 통한 빛을 연주하여 모처럼 창작 관현악곡들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유일한 관현악 축제란 점에서 창작 관현악곡의 장이 되어야 할 예술의 전당 주최, 교향악 축제(4. 1-18)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 연주곡으로 최소한 현대곡을 한 곡은 포함해야 하는 조건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김동주의 오케스트라를 위한 이원화(서울 심포니), 안요엘의 디베르티멘토(수원시향)의 창작곡 두 작품만이 선보였다. 지난 해 마산과 창원시향의 우종억과 임우상 작품 연주와 비교할 때 더 이상의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이 점은 98' 관현악 축제에서 참가 교향악단 모두에게 창작곡 연주를 의무화함으로써 해소되었다. 이 외에 관현악단의 정기 연주회에서 창작음악이 연주된 경우는 윤이상의 하프와 관현악을 위한 서주와 추상, 강준일의 사물놀이와 관현악을 위한 마당이 연주된 서울 내셔널 심포니 정기 연주회(2. 27), 이동훈의 교향시 거북선이 연주된 부산시향의 제332회 정기연주회가 있다. 합창의 경우에는 안산시립합창단 정기연주회(4. 11)에서 김정길의 혼성 합창 날개없는 짝이 되어와 귀천이 발표되었다.
서울국제음악제에서의 창작음악 소외에는 달리 창작음악에 관심을 가진 일반 연주인 및 단체들은 97년에 특히 증가했다. 이러한 창작음악 연주의 증가는 창작곡의 수준 향상과 더불어 새로운 레퍼토리 개발과 해외 연주시의 효과를 의식한 결과라 하겠다. 부암 피아노 소사이어티는 창단 연주회(5. 11), '한국 작곡가들의 피아노 음악 한 마당'에서 최현석의 참(站), 조석희의 6개의 변주곡, 백영은의 결, 백병동의 어린이를 위한 조곡, 이영조의 3B를 위한 변주곡, 김은혜의 몽상, 길일섭의 댄스 모음곡 등을 집중 발표했다. 최영자 피아노 독주회(10. 21)에서는 김정길의 모음곡 고풍, 이영조의 바우고개 변주곡, 이영자의 소나티네, 나인용의 전설, 박은희의 아리랑 변주곡이 연주되었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피아니스트 김미경은 이영조의 작품만으로 독주회(11. 10)를 열기도 했다. 이영조의 작품은 친근감있는 주제를 듣는 이에게 익숙한 처리법으로 다루어 일반인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현대음악의 즐거움을 주었다. 또한 부산의 조현선 역시 피아노 독주회(11. 28)를 창작음악만으로 꾸몄다. 이상근의 프로젝션 제1번을 비롯 안일웅의 굿마당, 신영순의 샤론의 수선화 주제에 의한 변주곡, 최인식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위한 영혼의 언어, 하순봉의 불일치, 조은옥의 단편이 연주되었다. 창작음악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는 기획도 있어서 운지회는 한국피아노음악에 대한 렉춰 콘서트(11. 12)에서 김용진의 세 개의 송시, 강석희의 소나타- 바흐, 김정길의 피아노 조곡 고풍에 대한 강연과 연주를 시도했다.
또한 홍난파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성악가들이 주관한 한국가곡세미나음악회(정복주, 박정하 조인트 리사이틀, 11. 23)도 있었다. 또 연주가가 위촉한 경우나 한 시인의 시에 여러 작곡가들이 노래를 만들어 발표한 경우도 있었다. 또한 성악단체들이 창작 가곡들을 포함한 곡들을 위촉, 발표하기도 했다. 대구에서 열린 이승순 시인과의 만남(3. 25)에서는 백병동, 이종구, 진규영, 김유리, 임여옥, 안경수, 이장호 등이 지은 노래들이 연주되었으며, 삶과 꿈 싱어즈는 제8회 정기연주회(4. 25)를 작곡가들에게 위촉한 신작들로 꾸몄다. 그리하여 나인용의 청산별곡, 박동욱의 평화를 비롯 이영자, 이건용, 이영조, 공석준, 황병기의 작품을 소개했다. 서울 싱어즈 소사이어티 역시 현대 한국창작성악연주회(12. 27)에서 주성희의 송욱 시에 의한 세 개의 노래, 김광희의 새, 헤메는 발들을 위한 노래 등을 발표했다. 성악가 배종우도 한국 가곡만으로 음악회를 꾸몄다. 배종우가 부르는 한국가곡(5. 18)에서 황성호의 쌍죽분을 보내며, 이강율의 이 세상의 어버이와 아들 딸에게 등을 불렀다. 일반 기악곡의 경우에는 오광호의 클라리넷 독주회(3. 11)에서 이건용의 저녁노래 I이, 박경옥의 첼로 독주회(6. 4)에서도 이건용의 저녁노래 II가 연주되었다. 또한 이건용의 상주모심기 노래에 의한 변주곡이 피아노 한마당 공연(6월)에서 연주되었다. 또한 트리오 한의 정기연주회(9. 29)에 김성기의 잊혀진 노래 IV, 블라디미르 쿠드랴 풀루트 독주회(5. 8)에 김상곤의 산조, 펠릭스 렌글리 풀루트 독주회(9. 8)에 윤이상의 솔로몬, 박정연 피아노 독주회(10. 29)에 옥길성의 소나타, 이예찬 바이올린 독주회에 이혜성의 마파, 성두경의 바이올린 독주회(12. 2)에 박민종의 모음곡 1번/7개의 한국 민요, 이연미 바이올린 독주회(12. 17)에 윤이상의 리나가 정원에서가 포함되었다. 동아국제음악콩쿠르의 초견 과제곡으로 백병동의 바이올린 독주를 위한 파사칼리아가 위촉, 작곡되었다. 연초에 있었던 무주동계유니버시아드대회의 개, 폐막식 공연을 위한 무용음악으로 이건용의 눈-산, 황성호의 관현악을 위한 유니버시아드, 이종구의 기원이 김정길의 팡파레와 더불어 위촉 작곡되었으며 올해 초연된 창작 오페라로 세계음악제 중 발표된 강석희의 초월을 비롯, 국립오페라단이 초연한 최병철의 아라리 공주(11. 7-10)와 김자경 오페라단이 맡은 김동진의 신작 춘향전(11. 8-11)이 있었다. 강석희의 오페라 초월은 삶과 꿈 정기 연주회(12. 5)에서 발췌되어 연주되기도 했다.

V. 창작음악과 뉴 미디어 테크놀로지

97년도 컴퓨터음악계는 다른 어느 해보다 국제 교류 및 작품발표에 있어 풍성한 해였다. 컴퓨터음악 렉처 콘서트(3. 25-26)가 오사카 예술대학의 가즈오 우에하라를 중심으로 있었다. 일본 작곡가들의 센서를 이용한 리얼타임 및 인터렉티브 제어 등 다양한 기술의 음악들이 선보였다. 한국전자음악협회 회원인 박종철의 산수도가 그리스 데살로니키에서 열린 '97 ICMC(세계컴퓨터음악대회)에 입선, 발표되었으며 또한 이 대회의 기념 CD에도 수록되었다. 이로써 이 대회에 2년 연속 입상작을 냄과 동시에 세계음악제에 문성준의 작품 입상 등 우리의 컴퓨터음악 수준이 일정 궤도에 올랐음을 입증하는 했다. 또한 황성호의 TV Scherzo가 브라질대학 주최의 제4회 국제컴퓨터음악심포지움(IV. SBCM)에 입선되었고, 핀랜드에서 98년도 4월부터 실시될 RealAudio 사이트인 Sound Box(http://www.kiasma.fng.fi/soundbox/)에도 선정, 수록됨으로써 96년에 이어 많은 음악제에서 연주된 작품이 되었다. 4월에는 영국의 컴퓨터음악 단체인 SAN(Sonic Arts Network)의 사이먼 에머슨 교수가 내한, 한국전자음악협회와 SAN, 두 단체 간의 교류를 논의했다.
한국전자음악협회가 주최한 제4회 서울컴퓨터음악제(CMFS'97, 11. 26-29)에서는 인터넷을 통해 공모된 160여 작품 중 선정된 28편과 국내 회원작 9편이 소개되었다. 특히 공모로 선정된 작품들에는 영국, 미국, 일본, 이태리, 독일, 덴마크, 오스트리아, 프랑스, 핀랜드, 브라질, 아르헨티나, 타이완 등의 주요 작곡가들의 것이 포함되어 주목 받았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알랜 스트레인지(세계컴퓨터음악협회 회장), 펫 스토러리(영국 SAN 회장), 오토 라스케, 리카르도 달 화라 등이 있었다. 인터넷을 통해 세계 음악가들의 주목을 끌면서 세계 주요 스튜디오에서 제작된 작품들이 발표된 서울컴퓨터음악제는 지속적인 인터넷의 홈 사이트 운영을 통해 저 예산으로도 높은 효과를 얻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앞으로 매해 일정 주제를 통해 이에 연관된 컴퓨터음악들을 국제 공모함으로써 지속적이며 짜임새있는 컴퓨터음악의 장이 될 것이다. 또한 음악제 중 독일의 크리스티안 바나직과 일본 오사카 예술대학의 가즈오 우에하라 교수가 참석하여 양국간의 교류를 진지하게 토의했다. 그리하여 일본 고베에서 열리는 '98 국제컴퓨터음악제(ICMF'98) 중에 한국전자음악협회의 날을 두기로 했으며 또한 98년에 한일 대학생들의 컴퓨터음악을 발표할 인터-컬리지 컴퓨터음악제를 오사카 예술대학에서 열기로 합의했다. 한국전자음악협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컴퓨터음악 콩쿨인 제1회 한국컴퓨터음악대회도 개최했다.
컴퓨터음악과 그래픽, 실시간 제어, 및 상호작용 등 뉴 미디어를 이용, 일반인들에게 흥미있는 현대음악들을 선보이는 NextWaveConcert의 초청 공연이 두물워크샵(5. 24), 인하대학교(5. 29), 서울대학교(11. 4)에서 열려, 이인식의 둘을 위한 독주, 황성호의 다큐멘터리 필름 음악 라멘토, 즉흥적 장 6, TV Scherzo, 로버트 A. 스미스의 에센셜 토르크, 심철웅의 그래픽 문자-기호-생명 (Text-Sign-Life) 등이 발표되었다. 부산전자음악연구회는 경성대 공연예술연구소와 더불어 전자음악발표회(11. 26)를 개최했다. 최인식의 전자음악과 무용, 소프라노를 위한 대비와 조화, 하기종의 음색 여행, 조은옥의 거울 II, 하경희의 봉황, 신영순의 복이 있나니 등이 발표된 음악회와 더불어 한국창작음악발전을 위한 멀티미디어 활용 방안을 주제로 한 심포지움에서는 신영순, 하경희, 하기종 등의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VI. 끝 말

97년의 경제 불안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전망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 분명한 사실은 지금이 소비지향적인 우리의 왜곡된 음악문화의 거품을 걷어낼 호기라는 것이다. 앞으로 기업들의 문화사업은 마땅히 줄 것이며 그들의 문화 영향력은 약화될 것이다. 이에 빌붙은 일부 이벤트사와 이벤트성 음악 공연들은 쇠퇴할 것이며, 저 예산의 공연이나 실험이 나타날, 아니 나타나야 할 것이다. 이때 진정으로 요구되는 것은 공공기관 및 기업들의 지혜로운 지원정책이다. 사회 지원의 단절로 문화계가 위축되는 일이 없도록, 가치있는 비상업적 공연과 창작을 진흥하는 진정한 정책이 과감히 펼쳐져야 한다. 또한 지금까지 문예진흥원에서 관행적으로 지원하던 일들에 대해 효율성을 높이는 방안도 문화계와 같이 논의해야 할 것이다. 이에는 수혜 단체 및 행사 조정이 뒤따라야 할지도 모른다. 현 지원정책이 수 많은 수혜 단체들 및 무분별한 음악제들을 양산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우리 작곡계가 음악계의 들뜬 거품들을 걷어 내는, 중추적인 생산 기능을 다할 날을 기대한다.


황성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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