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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창작은 진보, 연주는 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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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중 (작곡가, 음악평론가)
 
대구는 보수적인 도시라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견해가 다를 수 있다. 대구의 예술이 보수적인가?
여기에도 견해는 각양각색일 것이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 지역의 예술활동 경향을 보수적, 또는 진보적이다라고 단언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보수, 또는 진보적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또한 예술활동은 창의성에 바탕을 둔 활동이기에 그 자체가 혁신 또는 진보적인 것이며 또한 진보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일정한 기준에 따른 비교분석적 방법을 통해서 논해 보거나 들어나는 독특한 경향을 통해서 그 성향을 추정해 보는 것도 의미는 있다. 과연 대구예술이 보수적 성향인가.
음악예술의 성향은 작품의 성격이나 사용된 기법을 중심으로 추정할 수 있다. 최근  수년간에 걸쳐 작곡된 대구지방의 창작품을 중심으로 창작기법적 측면에서 몇가지로 분류해 보자.

첫째는 서양의 고전 낭만시대의 공통관습적 기법인 조성적 체계에 바탕을 둔 작품을 들 수 있다. 조성적 기법은 가곡이나 성악곡에서 주로 응용하고 있다. 대구예술 가곡회, 우리가곡연구회 등에서 이런 작품의 창작활동이 두드러진다. 간혹 비조성체계를 응용한 부분이나 한국적 표현양식을 도입하기도 하지만 주된 흐름은 조성적 음악이다. 여기에 포함된 작곡자들이 이러한 유의 음악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중 대부분은 발표회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기법을 혼용하거나 새로운 기법을 사용하기도 하는 등 일정한 유의 기법만을 고집하지 않는다.
 
둘째는 20세기 초반에 나타난 무조성음악과 12음음악에 바탕을 둔 작품형이다. 현대음악 초기의 기법인 12음음악이나 무조성, 또는 비조성적 기법에 의한 작품은 대학이나 대학원 재학생 등 젊은 층의 작품에서 많이 나타난다. 현대음악의 입문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이러한 기법은 실험적 성격으로 무대에 올려지는 경우가 많으며 한 두 번의 실험적 과정을 거친 후 새로운 기법으로 이전하는 것이 작곡자들의 일반적 경향이다.

셋째는 새로운 음향창출을 위한 다양한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이다. 수많은 실험적 단계를 거치면서 변호, 발전되어 오고 있으나 아직은 보편성을 지니지 못한 이러한 기법은 대다수의 지역 작곡가들이 창작의 기본적 방법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세계적 경향이기도 하다. 넓은 의미의 음향창출을 위한 수법은 세부적으로 보면 매우 다른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악기의 새로운 연주법 개발에서부터 한국적인 음향의 창출, 묘사법 등 무한한 개인적인 창작기법이 가능하다. 따라서 앞으로의 음악은 음향창출에 대한 사고에 기초한 다양한 창작기법이 작품의 주된 사상이 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지역의 작곡가들이 망라된 '영남작곡가협회'의 회원들은 국제현대음악제를 비롯한 정례적인 발표회에서 이런 기법에 기초한 작품들을 많이 발표하고 있다.

넷째는 전자-컴퓨터에 의한 작품이다. 컴퓨터의 급격한 발달에 다른 새로운 음향창출은 음악예술의 또 다른 장르로 부각되어 온 지는 오래 되었다. 아직도 개발의 의지가 많은 컴퓨터 음악은 컴퓨터의 발달이 일정한 괘도에 머무를 때까지는 실험적 현상이 계속될 것이다. 무한한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분야이다. '세온소리' 회원들이 정기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있으며, 몇몇 작곡가는 무용음악에 응용하고 있기도 하다.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 조성음악은 분명히 보수적 성향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한 초기의무조성 체계에 의한 작품은 시대성으로 보아서는 보수적인 성향으로 구분될 수 있지만 작가의 의도는 진보적인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반면 새로운 음향을 시도한 작품이나 전자-컴퓨터 음악은 아직 보편화 되지는 못했으나 당연히 진보적인 경향으로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창작분야에서의 예술적 성향은 다양함 속에서 진보적인 성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음악예술의 성립이 창작과 연주의 두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가능하다고 볼 때 연주는 음악예술 성립의 필연적인 과정이다.

연주분야에서의 보수적, 또는 진보적 성향의 판단은 두 가지 측면에서 고려될 수 있다. 하나는 연주형태이며 다른 하나는 연주곡목이다.
성악의 경우 일정한 곡목을 누구나 비슷한 프로그램 양식에 인쇄한 후 청중들에게 배포하고 프로그램에 따라 예의를 갖춘 연주복을 입고 무대 위에서 차례로 연주해 가는 고정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연주형태는 서양음악의 유입이래 어떠한 변화도 보이지 않는 연주형식이며 따라서 분명히 보수적이다. 이러한 연주형태를 파괴하거나 하려고 시도하지도 않는다. 예를 들면 마이크를 이용한다든지, 복장을 달리해 본다든지, 프로그램을 색다르게 만들어 본다든지 하는 등은 정도에 어긋나는, 비예술적으로 취급해 버리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대중음악적 양식의 곡들조차 전통적 양식으로 연주함으로써 일종의 권위적 위상속에 안주하려 한다. 장르의 벽을 허물자고 말들은 하면서도 아무도 새로운 시도는 않고 있다.
연주 곡목에서도 보수적 경향을 볼 수 있다. 가곡의 경우 많은 창작가곡이 있음에도 새로운 작품을 연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기존의 이태리나 독일 가곡 몇곡, 오페라 아리아 몇곡 등이 독창회의 일반적 레퍼토리다.
이것은 불문율과 같이 고정되어 있다. 변화가 좋은 현상인지 아닌지는 필자도 모른다. 다만 새로운 경향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최근 '모던 앙상블'이란 실내 악단이 지역의 창작음악과 현대음악을 레퍼토리로 연주회를 개최한 경우가 있지만 특이한 경우로 취급되며 기악에서의 연주형태나 연주곡목에서 진보적이라 할 새로운 변화의 바람은 일지 않고 있다.
관현악분야에서는 대구 타악예술인협회가 마립바 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비롯하여 다양한 연주 형태로 연주회를 개최함으로써 새로운 장르에 대한 개척적인 시도를 보여준 적이 있으나, 대부분의 관현악단은 전통적 연주형태와 레퍼토리를 답습함으로써 보수적 경향을 유지하고 있다.
예술활동은 개인의 창의성을 바탕으로 다양성 위에서의 풍성함이 가장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볼 때 대구의 창작분야는 다양함이 한데 어우러진 매우 바람직한 성향속에서 가장 진보적 성향을 보인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음악예술은 타예술과 달리 창작과 연주라는 두 단계의 과정을 통하여 성립된다. 따라서 창작과 연주는 필연적 동반관계에 있다. 창작이 비록 진보적인 경향을 지녔다고 해도 연주자의 협력없이는 빛을 보지 못하고 만다.
대구음악예술은 창작자는 진보적 성향이 강한 반면 연주자들은 보수적 사고의 틀 속에 머무르므로써 예술성립의  두 과정이 보조를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겠다.


* 강석중 : 계명대학교 작곡과 졸업
  작품 : 목관4중주곡, 가곡  '달밤' 외

이글은 필자가 2000년 2월 '대구예술웹진'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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