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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천상병 유고시집 '귀천'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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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세상 소풍 끝내는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이 세상은 항상 따뜻하고 항상 살맛나게 아름다운 곳인가. 저 1960년대의 엄혹한 살얼음길을 넘어지지 않고 건너온 사람은 누구이던가. 하루 세끼를 다 못채우고 돌아가 누울 잠자리가 없어도 나라 살림을 맡은 이들에게 눈을 흘기거나 쓴소리 한 번 내지를 수 없던 시대에 어찌보면 어린 아이 같고 어찌 보면 당나라의 선승 한산(寒山)이나 습득(拾得)처럼 세속을 훌훌 벗어던진 것 같은 시인 천상병(千祥炳)이 떠돌고 있었다.

명동거리나 술집에서 만나면 먼저 손부터 내민다.고작해야 요즘 값어치로 오천원, 만원이지만 그 품새는 조금도 비굴하거나 미안한 기미가 없고 오히려 오래 못 받은 빚을 받는 것 만큼이나 당당하다. 술값 좀 쥐어 줬다고 듣기 좋은 말로 립 서비스 하는 일도 없다.

시가 시원치 않다고 느끼는 시인에게는 "시도 못 쓰면서 시인 행세를 하니까 세금을 내야 한다"면서 독설을 하기도 했고, 한번은 천상병의 월평에 오르고 싶은 시인이 술대접을 하니까 인색하게도 "야아 나는 네 시가 좋아질려고 한다"고 했다가 술과 안주가 더 나오자 "야아 나는 네 시가 좋다"고 비로소 인정을 했다는 일화도 있다.
뺏긴 것인지 스스로 알아서 준 것인지, 술값인지 밥값인지는 모르지만 천상병과의 거래는 정기적으로 이루어졌던 셈이고 수금하는 쪽이나 납부하는 쪽이나 낯 찌푸리는 일 없이 아주 화기롭게 진행되었다. 수금 날짜가 되어도 그가 나타나지 않으면 오히려 불안한 것은 지불하는 쪽이다. 그런 평화, 그런 아무일 없는 문학동네에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 떨어졌다.

67년 7월 14일자 도하 일간지들은 중앙정보부가 발표한 '동백림간첩단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거기 연루된 간첩(?)들의 명단에 천상병이 끼여 있었던 것이다. 발표에 의하면 북한은 동백림을 거점으로 서백림의 남한 쪽의 각계인사들을 간첩으로 포섭해서 활동했다는 것이다.

화가 이응로, 작곡가 윤이상 등이 연루되었고 그 가운데 강빈구(姜濱口)라는 경제학자가 있었는데, 63년 10월 상순 어느날 명동 유네스코 뒷골목의 술집에서 천상병이 그에게 포섭되어 난수표를 받고 67년 6월 25일까지 1백원에서 6천여원까지 5만여원을 협박하여 갈취착복하면서 강빈구를 간첩으로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강빈구는 은행가의 아들로 돈 씀씀이가 좋아서 서울대상대 재학시절부터 천상병이 하숙비도 얻어 쓰는 사이였다. 그 친구를 우연히 명동 거리에서 만난 천상병은 예의 손을 내밀었을 터이고 강빈구는 옛날 친구를 만나 즐겁게 술을 사고 5백원도 쥐어주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모를 리 없는 중앙정보부가 시인 한 사람을 얽어넣기 위해 천상병을 못 살게 굴었던 것이다.

중앙정보부에서 고문으로 조서를 꾸미면서,"술 달라!","담배달라!"고 어리광을 피우는 천상병이 코미디언 김희갑을 닮았다 해서 '천희갑'이라 불렸다고 한다. 중앙정보부에서 석달, 교도소에서 석달, 모진 매와 전기고문을 당하고 선고유예로 풀려난 천상병은 몸도 정신도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71년 7월 어느날부터 수금원 천상병이 보이지 않았다. 한 달, 두 달, 석달..., 고향 부산에 연락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천상병이 기어코 길거리에 쓰러져 행려병사로 사라진 것이다, 하는 추측이 기정사실화되고 있었다. 시체검증도 없이 사망진단을 내린 문우들은 유고시집을 내기로 뜻을 모아 그해 12월 유고시집 '새'가 4×6배판 호화장정본으로 조광출판사에서 출간된다.
뒤늦게서야 서울시립정신병원에 살아있음이 발견되지만 '고통받은 이세상'이 아니고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고 시 '귀천'에서 노래한 이 천진한 천상시인 천상병의 처녀 시집은 눈 뜨고 살아 있으면서 '유고시집'으로 포장되어 나왔다.
이근배<시인.한국시인협회장>
 
[중앙일보] 2003-01-21
1 Comments
미스바 2003.04.13 04:42  
  내가 천상병시인의 시를 알게 된 것은 김동길 교수의 에세이집< 사람으로 태어 나서>를 읽고서였다. 그 책에 천시인의 <소릉조>가 소개 되었었는데 나는 단번에 그의 시에 감동 했었다. 천시인의 그 순수함에 매료되어 그의 시 <소릉조>와 <귀천>에 곡을 붙이기도 했다. 지금도 매스컴에 천상병이름자만 나와도 내 눈이 빛을 발할 만큼 그를 기리고 있다. 제주에서 사은김광선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