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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한국에는 조수미가 , 일본에는 전월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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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학관에서 나온 데이타파일 인물연감엔 일본에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이력이 실려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국인으로서는 단지 두사람의 이름이 보인다.
김대중과 전월선. 대통령이야 당연하다고 쳐도 도대체 전월선이 누구길래?
그러나 그런 의문은 그녀의 이력을 약간만 풀면 금방 아! 하고 느낌이 온다.

전월선은 도쿄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한국인,그래서 조선학교를 다녔다. 그녀의 드라마는 이때부터 시작된다. 교교시절 이미 천재적인 성악가수로서의 가능성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음대진학의 길이 막힌 것이다. 조총련계 고등학교를 일본 명문대들이 인정하지 않아 문전박대를 받으면서 생긴일이었다.

이때부터 일본 사회를 뜨겁게 만든 민족적 사건이 일어난다.
많은 경우 같은 조총련 계열인 조선 대학으로 진학하는 동료들과 달리 그녀는 투쟁의 길을 택했다.
촉망받는 오페라 가수로서의 꿈을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음대에 진학을 못하는 이유가 조선인이라는 것 때문이라면 그것은 더더구나 용납할 수 없었다. 누구때문에 끌려온 일본이던가.
그녀의 투쟁은 일 개인의 꿈을 이룬다는 차원을 넘어 재일교포 2세들까지 또 다시 역사의 희생양이 될 수 없다는 차원에서 일본사회를 뒤 흔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상황을 결코 피하지 않고 용감하게 부딪치며 어려운 난관을 거쳐 당당히 이겨냈다.

이 소녀는 세인의 주목을 받으며 성장, 발군의 실력과 치열한 노력으로 일본인 음악 전문가 모두가 인정하는 TOP오페라 가수가 된 것이다.
여기까지만 해도그녀의 스토리는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그러나 그후부터가 더 드라마틱하다. 북한 공연시 김일성 주석이 그녀의 목소리에 반해 그녀의 팬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그녀는 한국에서는 일본문화가 전면금지되어있던 1998년 시점에서 이미 사상 처음으로 서울에서 일본어로 무대공연한 제1호의 가수가 되었다. 일본어공연을 금지하고 있던 한국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무대였다.

그것은 한국-일본의 문화교류를 그녀로부터 시작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였던 것이다. 한국-북한-일본 3국 모두에서 역사성과 드라마를 갖춘 그녀에게 일본은 남한의 대통령과 같은 비중의 영향력을 그녀에게 인정하고 있다. 헌데 자칫 잘못 생각하면 그녀가 단지 사회적인 이유로 스타가 된것 같지만 천만에다.
단 한번만이라도 그녀의 노래를 들어보면 황홀해지고 화사해지고 가슴이 시려온다. 오페라 가수가 갖는 풍부한 가창력을 바탕으로 그녀의 모든 노래엔 혼이 담겨있다.
다른 가수가 부르는 똑같은 노래를 전월선이 부르면 청중을 매료시키는 뭔가가 있다는것이다. 음악의 해석이 틀리다는 말인데 그건 그녀만이 갖고있는 인생에도 기인한다. 일본 사회에서 일본가수보다 뛰어나려면 몇 배 더 노력하지 않으면 안되는 치열함이 그녀의 선천적 재능을 더 더욱 빛내고 있다.

그녀의 최고작품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이 코리아 가곡, 특히 북한 가곡의 해석
과 표현력에선 가히 세계제1인자이다.
이제 이런 그녀가 한반도의 새로운 시대를 맞아 가슴으로 코리아 가곡을 대중에게 전하고 있다.
북쪽노래 '임진강'을 비롯해 그녀에 의해서 발굴되어 명곡이 되었던 '고려산천 내사랑'등은 감동으로 몰아친다. 여기에 더해 한국가요의 대표적인 작품 '아침이슬'은 그녀만의 독창적인 스타일로 또 다르게 표현되어지고 있다.
한국엔 조수미가 있지만 일본엔 여기에 비등한 전월선이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 영화감독 이규형, 키무라 다카히테(프로듀서)/ 전월선 독집 '고려산천 내사랑&임진강'의 추천의 글중에서 정리함.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으나 나의 조국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나에게 조국이란 남쪽,북쪽이 하나인 한반도 전체이다. - 전월선


일본 도쿄태생인 전월선(月仙)이라는 이름은 호숫가에 피는 수선(水仙)화에 만월(滿月)의 달빛이 비쳐 있었다는 어머니의 태몽으로부터 지어졌다.
일본 토호대학 예술과와 동 연구과를 졸업하고 도쿄에서의 연속리사이틀로 음악계에 데뷔. 1985년 "소리" , "스페인의 때"의 주역으로 오페라에 데뷔하여 "도화사", "피가로의 결혼","나비부인","카르멘","춘희"등 계속해서 오페라의 주역을 연기해 수선화가 핀 듯한 스타라고 화제가 되었다. 일본내는 물론, 세계각국의 오페라와 콘서트에 출연하고 한국의 KBS와 MBC 등의 음악프로에도 출연한 바 있다.

1985년 - 평양에서 열린 세계음악제에 초대되어 세계80개국의 음악가와 공연함으로써 폐쇄된 북쪽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다.

1986년 - 두차례에 걸친 미국 LA연주회에서 연주한 '고려산천 내사랑'이 일본에서 화제를 모으고 1987년도에는 일본 문화청 예술제 음악부문에 외국 국적으로는 처음으로 참가하기도 하였다.

1998년 - 서울과 도쿄 우호도시제휴 10주년을 기념하여 전월선은 도쿄도시의 친선대사로서 서울 도쿄의 양도시에서 한국의 노래와 일보느이 노래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1999년 - 일본 빅터 레코드에서 그녀의 일본노래와 남북의 노래를 모은 한일가곡집 앨범을 출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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