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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시와 음악, 그리고 고향[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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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 중 가장 많이 고향이 생각날 때다. 고향을 주제로 한 수많은 문학작품 가운데 그 압권은 정지용의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고향은 아니러뇨, 산꿩이 알을 품고, 뻐꾸기 제철에 울건만, 마음은 제 고향 지니지 않고, 머언 항구로 떠도는 구름, 오늘도 뫼끝에 홀로 오르니, 흰 점꽃이 인정스레 웃고, 어린 시절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쓰디쓰다, 고향에 고향에 돌아와도, 그리던 하늘만이 높푸르구나.”(전문)하던 `고향`이 아닐까.

▼북에 김소월이 있다면 남에 정지용이 있었다. 소월은 평북 구성 출신이고, 정지용은 충북 옥천 출신임을 두고 한 얘기다. 두 사람이 태어난 때도 1902년으로 똑 같다. 모두 한국 근대시단을 지배한 천재시인이나 일생이 불우하기도 마찬가지다.
소월은 동아일보 지국 경영에 실패해 실의의 나날을 보내다 33세 되던 1934년 자살했으며, 정지용은 6·25때 납북돼 가던 중 사망했을 거라고 한다.

▼납북시인이란 누명으로 정지용의 시는 지난 88년에서야 해금되기 시작했다. 특히 `고향`보다 5년전인 1927년에 발표된 `향수`는 최근 가곡으로도 널리 유행해 정지용을 더욱 잘 알리는 계기가 됐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즐대는(지절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배기 황소가 해설피(느리고 어설프게)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향수`가 고향에 대한 절실한 그리움을 토로했다면 `고향`은 이와 함께 막상 찾아온 고향에 대한 상실감도 토로한다. 사실 고향이란 이를 생각하는 사람에겐 삶의 근원이자 바로 그 굴레이다. 고향이 우리 마음 속에 있지만 그 마음은 동시에 고향 속에 있어 서로를 구속하기 때문이다. 삶이 힘겨울수록 향수는 더욱 사무치기 마련이다. 그런 굴레가 싫어 이를 벗어던지기라도 하면 얼마 안 가서 날개 떨어진 새로 돌아오고 마는 게 우리네 삶이다.
향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차라리 이를 사랑함으로써 아예 내 것으로 만드는 게 보다 낫지 않을까.

경남신문 2002. 9. 10 일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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