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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곡이야기

[문화수첩] ‘선구자’ 작사·작곡가는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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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볜의 대표적인 조선족 작가인 류연산씨가 낸 만주 역사기행서 ‘만주 아리랑’에는 흥미있는 이야기가 소개돼있다. 항일 독립운동의 애국가처럼 알려진 가곡 ‘선구자’의 작곡가인 조두남씨(1984년 작고)와 작사가 윤해영씨가 실은 독립 투사가 아니라 친일파였다는 내용이다. ‘일송정 푸른 솔은∼’으로 이어지는 ‘선구자’의 창작 경위에 대해서는 1975년 조두남씨가 수필집 ‘선구자’에서 자세히 기술한 바 있다.
“1932년 만주 하얼빈에 살고 있을 때 윤해영이 나를 찾아왔다…시 한편을 내놓으며 곡을 붙여달라고 하고는 사라져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주고 간 시의 내용으로 보아 그는 독립군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나에게 왔다 간 뒤 어쩌면 어디에선가 전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옌볜 음악계의 원로인 김종화씨의 증언은 전혀 다르다. 조두남씨와 함께 3년동안 음악 활동을 했다는 김씨는 윤해영과 조두남이 1944년 만주의 영안에서 있은 신작 공연에서 ‘용정의 노래’를 함께 발표했다고 밝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선구자’인데 멜로디만 같을 뿐 유랑민의 설움을 담은 애절한 가사에는 ‘활을 쏘던 선구자’ 같은 지사적 내용은 없었다. 이외에도 두사람은 ‘목단강의 노래’ ‘산’ ‘흥안령 마루에 서운이 핀다’ 등을 함께 선보이는 등 꽤 오래 전부터 작곡·작사가로 손발을 맞춰온 동지이자 술친구였다. 조씨는 한때 마약에 빠져 고생하기도 했단다.

또 조두남씨가 독립 운동가였을 거라고 추측했던 윤해영은 실은 만주 최대의 친일 단체인 ‘영안 협화회’에서 활동한 친일파. 조씨 역시 일제 시대 ‘징병제 만세’ ‘황국의 어머니’ 같은 친일 노래를 만들고 ‘간첩이 경찰서를 습격하는 것을 주의하라’는 내용의 소가극 ‘간첩은 날뛴다’를 작곡하기는 친일 행적을 남겼다. 해방 후 윤씨는 중국,북한 등에 거주했고 조씨는 남한에 남아 항일 가곡의 작곡자로 명성을 누렸다.

지난 5월 마산시는 조두남 기념관을 지어 개관식을 거행하려다가 조씨의 친일 행적에 대해 검증을 요구하는 시민단체의 제지로 한바탕 곤욕을 치른 일이 있다. 당시 시민단체측이 주장했던 내용의 상당부분은 김씨의 증언과 일치하니 따져볼 부분이다. 현재 기념관은 완공된 상태에서 문을 닫고 사태가 해결되기만을 기다리며 지지부진이다. 시민대표와 전문가 등으로 꾸려진 조사단이 꾸려 조씨의 행적을 조사한 뒤 가부간에 논란에 종지부를 찍을 모양이다. ‘만주 아리랑’에 포함된 김씨의 증언을 포함해 옌벤 일대에서 벌어졌던 조씨와 윤씨의 행적에 대해 철저한 탐색이 이뤄지길 바란다.
 
이영미기자 [국민일보] 2003-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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