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브르의 곤충기
鄭宇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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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9.07 08:49
파브르의 곤충기
장 앙리 파브르 (Jean Henri Casimir Fabre, 1823~1915)는
프랑스의 곤충학자 · 박물학자로 남부 프랑스의 생 레옹에서 태어나 아비뇽
의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국민학교 교사가 되었으며, 그 후 몽펠리에 대학에
서 물리학 · 수학의 학사자격을 취득하고 코르시카 섬의 중학교 물리 교사와
아비뇽의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31세 때 J. M. 레옹 뒤푸르(1760~
1865)의 사냥벌에 관한 논문을 읽고 감동하여 본격적으로 곤충을 연구하기
시작, 1879년부터 1910년에 걸쳐 불후의 명저<곤충기>전 10권을 잇달아
출판했습니다.
어릴 때 자연을 사랑하고 벌레나 조개 관찰을 했는데 Dufour의 곤충지에 감
격하여 곤충연구에 일생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코르시카섬, 아비뇽에서 연
구를 거듭한 후 만년에 이르러 세리그난의 황무지에 사는 다양한 곤충이나
거미 등의 생활을 관찰하여 <곤충기>를 간행하였습니다. 사냥벌이 먹이가
되는 벌레의 신경절을 찔러 산 채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교묘한 방법,
기생곤충의 생활, 과변태, 쇠똥구리의 생태 등은 특히 유명합니다. 곤충의
생활기술을 관찰하여 그 본능의 정확성과 고정성에 경탄하였으나 이러한
본능이 점차로 발달하였다는 견해를 거부했기 때문에 진화론을 받아들이
지는 않았습니다. 물리학및 화학의 보급서도 저술하였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거미가 그물집을 치고 먹이를 포획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똑똑히 알 수 있
었고 나아가서 인간이 사는 것도, 생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그와 같이
쉽지 않음을 절감하였습니다. 어쩌면 중생이 사는 것이 다 신불의 특혜요,
신불이 내린 행운이라고 생각하게끔 되었습니다.
자연계에 살아 있는 동물 중 인간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도구를 이용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먹이를 잡는 존재인, 실을 자아 집을 짓는 거미에 대한 여
러가지를 관찰한 기록은 거미 특유의 지혜와 재주, 사냥법과 식사법, 그리
고 모성애 등에 대해 알게 해줍니다. 거미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 잡으
면서 신비한 거미의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거미가 그물집을 조성할때는
상당히 높은 위치에 미리 있다가 바람결에 실려서 다행히 어느 의탁지점에
운좋게 닿아야 다음 단계로 그물집을 조성하게 되는데 거미는 이 단계에서
풍향이나 위치에 따라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후에 운이 좋아야 집짓기를 어
렵게 시작하게 됩니다. 공사를 마친 그물 집은 얼마나 정교하고 튼튼한지!
사방 팔방으로 뻗어나간 방사선의 큰 길에 거의 나란히 이어지는 골목길은
기하학자의 솜씨처럼 정확합니다. 마지막 마무리는 남는 실타레를 도로 먹
어서 다음 방적의 원료로 삼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움에 포기하지 않고
오래 참는 미덕을 보여야 하는 것은 거미나 인간이 살아 나가는 방식은 하
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동양에서도 개미나 동물 식물등 생물의 생태를 연구한 흔적은 많습니다.
春秋(춘추)시대 五霸(오패)의 한 사람인 管仲(관중)은 斉(자)나라 桓公 (환
공)을 도운 명재상이었는데 한번은 고죽국을 치러 전쟁에 나갔다가 길을 잃
었습니다. 지혜로운 관중이 늙은 말의 지혜를 빌려보자면서 늙은 말을 풀어
놓아 그 말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 큰길을 찾았습니다. 또 산중에서 행군하다
가 목이 말라 어려웠을때 그의 후임자 습붕(隰朋)이 개미집을 찾아 여덟자
를 파고 물을 얻어 해갈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인간도 미물에게 배
워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
장 앙리 파브르 (Jean Henri Casimir Fabre, 1823~1915)는
프랑스의 곤충학자 · 박물학자로 남부 프랑스의 생 레옹에서 태어나 아비뇽
의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국민학교 교사가 되었으며, 그 후 몽펠리에 대학에
서 물리학 · 수학의 학사자격을 취득하고 코르시카 섬의 중학교 물리 교사와
아비뇽의 고등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31세 때 J. M. 레옹 뒤푸르(1760~
1865)의 사냥벌에 관한 논문을 읽고 감동하여 본격적으로 곤충을 연구하기
시작, 1879년부터 1910년에 걸쳐 불후의 명저<곤충기>전 10권을 잇달아
출판했습니다.
어릴 때 자연을 사랑하고 벌레나 조개 관찰을 했는데 Dufour의 곤충지에 감
격하여 곤충연구에 일생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코르시카섬, 아비뇽에서 연
구를 거듭한 후 만년에 이르러 세리그난의 황무지에 사는 다양한 곤충이나
거미 등의 생활을 관찰하여 <곤충기>를 간행하였습니다. 사냥벌이 먹이가
되는 벌레의 신경절을 찔러 산 채로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교묘한 방법,
기생곤충의 생활, 과변태, 쇠똥구리의 생태 등은 특히 유명합니다. 곤충의
생활기술을 관찰하여 그 본능의 정확성과 고정성에 경탄하였으나 이러한
본능이 점차로 발달하였다는 견해를 거부했기 때문에 진화론을 받아들이
지는 않았습니다. 물리학및 화학의 보급서도 저술하였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는 것은
거미가 그물집을 치고 먹이를 포획하는 과정의 어려움을 똑똑히 알 수 있
었고 나아가서 인간이 사는 것도, 생물이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 그와 같이
쉽지 않음을 절감하였습니다. 어쩌면 중생이 사는 것이 다 신불의 특혜요,
신불이 내린 행운이라고 생각하게끔 되었습니다.
자연계에 살아 있는 동물 중 인간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도구를 이용하여
자신을 보호하고 먹이를 잡는 존재인, 실을 자아 집을 짓는 거미에 대한 여
러가지를 관찰한 기록은 거미 특유의 지혜와 재주, 사냥법과 식사법, 그리
고 모성애 등에 대해 알게 해줍니다. 거미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 잡으
면서 신비한 거미의 세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거미가 그물집을 조성할때는
상당히 높은 위치에 미리 있다가 바람결에 실려서 다행히 어느 의탁지점에
운좋게 닿아야 다음 단계로 그물집을 조성하게 되는데 거미는 이 단계에서
풍향이나 위치에 따라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후에 운이 좋아야 집짓기를 어
렵게 시작하게 됩니다. 공사를 마친 그물 집은 얼마나 정교하고 튼튼한지!
사방 팔방으로 뻗어나간 방사선의 큰 길에 거의 나란히 이어지는 골목길은
기하학자의 솜씨처럼 정확합니다. 마지막 마무리는 남는 실타레를 도로 먹
어서 다음 방적의 원료로 삼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려움에 포기하지 않고
오래 참는 미덕을 보여야 하는 것은 거미나 인간이 살아 나가는 방식은 하
나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동양에서도 개미나 동물 식물등 생물의 생태를 연구한 흔적은 많습니다.
春秋(춘추)시대 五霸(오패)의 한 사람인 管仲(관중)은 斉(자)나라 桓公 (환
공)을 도운 명재상이었는데 한번은 고죽국을 치러 전쟁에 나갔다가 길을 잃
었습니다. 지혜로운 관중이 늙은 말의 지혜를 빌려보자면서 늙은 말을 풀어
놓아 그 말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 큰길을 찾았습니다. 또 산중에서 행군하다
가 목이 말라 어려웠을때 그의 후임자 습붕(隰朋)이 개미집을 찾아 여덟자
를 파고 물을 얻어 해갈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혜로운 인간도 미물에게 배
워서라도 문제를 해결하는 지혜를 배워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