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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초상조각과 데드마스크

鄭宇東 0 2377
베토벤의 초상조각과 데드마스크
 
부르델(Emile Antoine Bourdelle,1861.~1929)은 프랑스의 조각가입니다.
나는 그가 우리의 음악의 영웅 베토벤의 초상 조각작품을 수십점도 넘게
조각하였다는 사실에 무엇보다도 관심이 갔었습니다.
그는 가구장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미술학교에 진학하였으나 틀에 박힌 교과
과정에 실증이 나서 퇴학하고 독학으로 미술공부를 하다가 <생각하는 사람>
으로 유명한 오귀스트 로댕과 인연이 닿아 그의 조수겸 제자로 일하였습니다.
그의 작품으로는 <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 <빈사의 켄타우로스>, <알자스
의 성모자> 등 수많은 기념비와 초상조각을 남겼습니다.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로댕의 작품 <생각하는 사람>의 석고상(石膏像)은
1880년에 완성되어, 최초에는 <시인>이란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지옥의 문>
의 문 윗 부분에서 아래의 군상(群像)을 내려다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그것을 1888년에 독립된 작품으로서 크게 하여 발표, 1904년 살롱에 출품하고
부터 유명해졌습니다. 단테의 <신곡(神曲)>을 주제로 한 <지옥의 문>의 가운
데 시인을 등장시키려고 하는 로댕의 시도가 벗은 채로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인간상의 고뇌를 바라보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남자의 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전신 근육의 긴장에 의하여 격렬한 마음의 움직임을 응결시켜, 영원히 계속 생
각하는 인간의 모습을 강력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살롱 출품 후 파리의 판테
온에 놓아두었으나(1906∼1922), 그 후 로댕미술관의 정원으로 옮겨졌습니다.
모두 7개쯤 되는 모작품(模作品)의 하나는 로댕의 묘를 장식하였습니다.

그러나 부르델은 스승인 로댕과는 추구하고자 하는 조각이 크게 달랐습니다.
부르델은 그리스 로마 이집트의 옛날 작품이나 위인을 즐겨 조각하였고,
거칠면서도 강한 운동감이 느껴지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서 부르델의 조각품은 남성적인 힘이 분명하게 풍기는 특징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인 <활을 쏘는 헤라클레스>는 긴장된 근육과 강한 힘을 동
시에 내뿜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부르델 자신도 베토벤 음악을 좋아하여 청년때 첫 베토벤상
을 만든 이후 만년에 이르기까지 80개 이상의 베토벤상을 조각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베토벤 두상(頭像)에 대한 부르델의 집착은 1887년부터 시작
해 세상을 떠나던 해인 1929년까지 이어집니다. 평생에 걸쳐 만들어 낸
베토벤 두상 조각만도 최소 80여 점에 이릅니다.

부르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창작의 고통이 어린 베토벤의 얼굴입니다.
또 베토벤의 얼굴에서 그가 추구하던 남성적인 힘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넥타이를 맨 베토벤' (1890)이나 '머리 긴 베토벤'(1891)에서는 넓은 이마
와 헝클어진 머리, 앙다문 입술 등 창작의 고통과 함께 열등감과 자신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표현돼 있습니다. '비극적 마스크의 베토벤'은 이 두
작품보다 훨씬 더 거칠게 인물의 내면이 형상화된 듯 합니다. 꽉 다문 입술
은 거의 코 높이만큼 앞으로 나와 있고, 턱을 목 쪽으로 끌어 당기며 무언
가를 골똘히 생각하거나 아니면 마음의 폭풍이 지나가길 기다리는 모습입
니다. 이러한 고뇌를 거친 끝에야 비로소 깊은 영혼의 안식과 위안을 주는
예술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베토벤의 초상은 부르델 자신, 나아가
모든 예술가의 초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인들의 조각상과 관련하여 우리는 흔한 데드마스크를 먼저 접하였습니다.
죽은 사람의 모습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서 뜨는 안면(顔面)상으로 죽은 후
얼굴에 유토(油土)나 점토를 발라 모형을 만든 다음, 다시 그것으로 석고 따
위를 사용하여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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