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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작곡가 金東振 선생님을 찾아 뵈옵고

鄭宇東 0 1872
원로 작곡가 金東振 선생님을 찾아 뵈옵고
 
 
금호동 높은 지대의 미로같은 빌딩 숲길을 한참 감돌아서
약속시간에 맞추어 벽산 아파트 314동 206호의 댁으로 찾아가니
김동진 선생님께서는 운동삼아 걸으신다며 문앞에서 기다리면서 맞아주셨읍니다.
선생님은 아흔다섯의 고령으로 건강이 좀 안 좋으시고 귀도 좀 잡수셨습니다.
사모님의 확성 전달로 \"서울에서 여는 가고파 특별음악회\"에 모심을 아뢰고
대화는 사모님 李寶林 여사님과 고진숙 선생님이 주로 하시고
선생님이 보청기를 끼고 마이크로 물으면 가끔씩 확인하여 주셨습니다.
가고파 후편 첫머리의 '물 나면 모래판에서 가재 거이랑 다름질 치고'의 거이를 설명
하실때는 연륜이 누렇게 묻어난 '노산시조집'을 찾아 나오셔서 거이는 게라고 확실하
게 또 아득한 회상에 잠긴듯 즐겁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김동진선생님은 1913년 평북 안주에서 교회일을 맡아하는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나
교회음악을 통하여 자연스레 음악에 입문하여
유성보통학교, 숭실중학교, 숭실전문학교를 나와 일본고등음악학교에 유학했습니다.
선생님은 숭실중학 5학년 시절에 처녀작품으로
평소에 애송하고 있던 파인 김동환선생의 시 <봄이 오면>에 곡을 붙여
중학교내에서 뿐만아니라 전문학교에서까지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이 숭실학교에서
은사 말스베리 선교사를 만나 바이올린 주법과 기초작곡이론을 배우고 그 영향으로
앞으로 음악가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불후의 명곡 <가고파>는 전문학교때 노산 이은상 시인의 친구인 자칭 한국의 인간
국보라 자부한 무애 양주동선생으로부터 노산 선생의 10장이나 되는 연시조시를 배
운 다음 해인 1933년에 앞 4장을 작곡한후 또다시 40년을 지난후
1973년에 그 후편 여섯장이 마저 작곡되어 우리가곡의 금자탑을 쌓았으며 후속하여
주옥같은 작품을 쏟아내 놓으셨습니다.

일본에서 본격적인 음악공부를 하며 바이올린 전공중
국창 임방울의 양산도를 듣고 五族協和會에 <양산도 주제에 의한 바이올린 제1악
장>을 출품하여 아사히신문 사회면에 톱기사로 "반도에 혜성이 나타나다." 란 격찬
을 받았습니다. 일본 유학후 만주 신경교향악단에서 제1 바이올리니스트로 활약하
며 지휘자 오오쯔까 쥰(大塚 淳)으로부터 지휘법과 오케스트레이션을 배웠습니다.
일본인 오오쯔까는 선생의 작품은 반드시 작곡자의 악상해석을 존중하여 선생님에
게 지휘봉을 건네 주었는데 우리 음악계에서는 이런 선생님에게 지휘봉을 주지 않
고 작곡이나 하시지 하고 모욕까지 한 패거리음악가들에게 분노를 느낍니다.
이런 사단을 듣고 보니 3년전 우리 내 마음의 노래 사이트가 주최한 한마음가곡제
에서, 김동진 선생님께서 그 작곡배경을 밝히고 <저 구름 흘러 가는 곳>을 힘차게
지휘하시며 피날레를 장식하고 흐뭇해 하시던 그 심정을 헤아릴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해방후 평양에서 교향악단을 창설하였으나
북한 공산체제 아래에서의 예술활동에는 제약이 많던 차에 한국동란중 남쪽으로 옮
겨서 부산의 해군정훈음악대에서 활동하시면서 \" 아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짖밟아 오던 날을\" 로 시작되는 <6.25의 노래>와 <육군가>등은
월남직후 현상공모에 당선된 군가로 작곡되었고 의식의 노래로 <조국찬가>등도 작
곡하고, 이 시절에 특히 주목할 것은 우리군가에서 왜색요소를 제거정리하는 작업을
하신 일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에서는 인간적인 요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데
<내 마음>과 <수선화>가 유성보통학교의 은사 김동명선생의 시에 작곡한 것이고
<신아리랑>과 <조국찬가>는 전쟁중 어려운 피난시절에 한집에 같이 산 양명문선생
의 시에 작곡한 노래입니다.
숭실학교의 은사 말스베리 선교사는 선생님을 음악가의 길로 이끌어 주었고
만주 신경악단의 지휘자 오오쯔까 쥰과 사이또 히데오는 음악인생에 도움을 주었고
지금은 전적으로 사모님 이보림여사의 극진한 보살핌속에 사신다니
사모님! 오래 오래 복 많이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소월의 생애를 다룬 \"길은 멀어도\" 란 영화에서 <진달래>, <못잊어> 등 소월의 많
은 명시에 아름다운 곡을 붙였는데 주제가인 <저구름 흘러 가는 곳>은 누구라도
좋아하는 명곡이 되었습니다. 이런 영화 음악의 이야기중에 사모님은 김동진 선생님
께서도 대중가요를 딱 한곡 작곡한 적도 있다면서 영화 '백치 아다다' 의 주제가가
그렇다고 귀띔해 주셨습니다. (훗날 대중음악작곡가 정풍송씨의 증언에 따르면 또
선생님은 김내성의 청춘극장의 영화에서 주제가 축배의 노래를 작곡하였다고 증언
하였습니다.)

선생님의 작품은 자유형식으로 감정의 흐름을 중요시하고 리듬과 변화를 즐기는
서정적인 통절형식인데 <가고파>가 그렇고 <내 마음>도 그렇고 <수선화>도 그렇
습니다. 그래서 김동진 선생님을 모시는 이번 우리가곡부르기에서는
김동진 선생님께서 작곡하신 주옥같은 가곡작품은 물론이려니와 의식의 노래도 부르
고 군가도 부르고 대중가요까지도 파격적으로 한번 불러 볼까합니다.

선생님께서 제일 수모를 당한 것은 패거리음악가로부터 지휘 못하게 제지를 당한 일
이고 선생님께서 제일 큰 사례를 받은 것은 국민은행사가를 작곡하고 이었으며
선생님께서 제일 큰 환대를 받은 것은 이번 우리의 모임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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