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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東振 선생님께 세배를 드렸습니다

鄭宇東 0 2084
金東振 선생님께 세배를 드렸습니다
 
삼년만  있으면 1세기 100년을 사시는 올해 아흔 일곱이신
가고파翁 김동진 선생님을 금호동 자택으로 찾아 뵙고 우리는 세배를 드렸습니다. 
지난 해 가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한복페스티벌에서
내마음의노래 우리가곡운동본부가 주관하여 피날레를 멋지게 장식하고 청중들이
기립하여 환호성을 지르게 감동을 안겨준 "우리가곡 우리 옷을 입다"에 거동이
불편하신데도 흔쾌히 출연하여 주신데 대한 감사의 인사를 겸한 새해 세배였습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책상에 수북히 쌓인 육필수기 진적악보를 보고 탄성을 지른 사람
도 분명 있었지만 며칠전에 작곡을 탈고하고 미국으로 가고 있다는 악보의 그 부본이
근래 지금 선생님의 창작활동을 잘 웅변하여 주고 있었습니다.

귀를 좀 잡수셨기에 선생님은 보청기를 착용하고
사모님 李寶林여사께서 톤을 가다듬어 우리 일행을 소개해 주셨고
준비해 간 노트북으로 "우리가곡 우리 옷을 입다"의 오디오와 비디오를 들으시지는
못해도 보시는 표정이 그날처럼 활기차고 밝으시고 맑으셨습니다.
흔히 예술가에게는 전설이나 신화가 더하여 지기에 이야기가 더 윤택하여 지고 우리
보통인에게는 선망의 적이 되기도 합니다.
김동진 선생님께도 이런 신화가 따라다니는 것은 예외가 아닙니다.
선생님이 평양 숭실전문에서 스승 양주동박사의 강의시간에 배운 노산 이은상시인의
10수의 가고파 연작시조 네수에 곡을 붙여 일찌기 명성을 떨쳤는데
종교를 아편으로 보는 공산치하에서 목사인 부친이 목숨을 잃었고 또 예술혼에 불타
던 선생님은 6 25 한국동란에 신앙과 자유를 찾아 남하피난중 아군의 검문에 신분증
이 없어 병사에게 "가고파를 아느냐"고 묻고 그 가고파를 작곡한 내가 김동진이라
답하여 위험한 고비를 넘겼다 합니다.
가고파전설의 명곡은 저렇게 태어나서 예술가에게 이렇게 생명으로 보답하니
예술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세월이 더 지나면 예술은 길고 인생이 짧은 것을 우리는 또 한번더 절감할 것입니다.

백수에 가까운 고령이셔도 귀가 안 좀 들릴뿐 눈은 안경을 안껴도 잔 글씨마저 
잘 읽으시고 요즘도 예술의 길에 정진하시며 작곡활동을 계속하실만큼 정신력이
말짱하시답니다. 2009년 올해로 100수를 사시는 김성태선생님을 이어
가고파翁  김동진선생님께서도 한 세기를 넘겨 장수하시리라 믿고 또 그러시기를
간절히 축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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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하나 덧붙이면
우리가 세배중에 선생님께 배운 작곡가 정풍송님이 또 세배를 왔습니다.
허공 표정등 명곡을, 작곡에 작사까지도 하는 분인데 예사로 보이지 않고 존경스러
웠습니다. 손위이신데 까딱하면 하대 실수할뻔 할 정도로 젊어 보였습니다.
스승이나 어르신을 찾아 세배드리는 이런 미풍양속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살기좋은 세상이 된다고 믿습니다.
건방진 소리지만 음악계에 몸담고 있는 분들이 아니 나서면
우리 동호인끼리라도 나서서
원로음악인을 찾아 뵙고 인사드리는 쉬운 것부터 시작하여
착실하게 준비하여 음악회등의 조촐한 자리라도 만들어 모실수 있었으면 꼭 좋겠습니다.

또 하나 더 각설하면
노래하시는 정선비님한테서 또 한가지 들어 아는 것을 자랑합니다.
김동진 선생님은 노래가 좋으면 되지 구분하지 않으셨기에
주옥같은 수많은 가고파 같은 명가곡을 작곡하셨지만 음악학계의 공격을 받으면
서도 영화음악으로 "저 구름 흘러가는 곳"들을 지어 지금은 명실공히 가곡의 반열에
올려 놓았고  나애심님이 부른 "백치아다다"와
금시초문으로 남일해님이 부른 "축배의 노래"가 있다고 알려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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