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살로메 ; 루 살로메
鄭宇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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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
2012.05.06 17:46
또 다른 살로메 ; 루 살로메
나폴레옹은 괴테를 보자 "보라, 여기 한 사람의 남자가 있다"고 찬탄하였습
니다. 이런 나폴레옹이 여자중의 제일여자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보았다면
그는 또 "보라, 여기 한 사람의 여자가 있다"고 스슴없이 말했을 것입니다.
요까낭의 목을 쟁반위에 요구한 유대공주 살로메와는 격이 다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Rou Andreas Salome, 1861.2.12~1937.2.5)는
독일계의 帝政 러시아의 로마노프가에 봉사한 구스타프 폰 살로메장군의
딸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취리히대학을 나왔습니다.
로마에서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와 알게 되어 구애(求愛)를 받았으나, 1887년
에 독일의 동양학자 프리드리히.K.안드레아스 교수와 결혼하였습니다.
R.M.릴케, F. 니체, 파울 레 등과 친하였고, S.프로이트와도 학문상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14살이나 연하인 릴케의 가장 좋은 이해자이며, 비호자의
한 사람이었고, 자신이 많은 소설과 수필, 심리학의 논문 등을 썼고
그녀와 사귄 예술가들에게 창조력의 영감의 원천이 된 여인은 더 이상 존재하
지 않습니다.
주요저서에는 《릴케 Rainer Maria Rilke》(1928) 《프로이트에 대한 감사
Mein Dank an Freud》(1931) 등이 있으며, 죽은 뒤에 자서전 《인생회고》
가 출간되었습니다. F 니체는 루 살로메와 사귀다 헤어진 고뇌속에서 불후의
명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탈고하였는데 이 책속에는 "여자를
보는데는 회초리를 잊지 말라"는 말로 살로메를 힐난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녀의 영원한 찬미자, 장미의 시인 R. M. 릴케는
살루메와 헤어진 후에도 그녀를 영원한 연인으로 찬미하는 시를 썼습니다.
ㅡ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ㅡ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그대는 내 마음 사로잡아
우리는 그대의 눈속에서 하나가 되고
그대의 목걸이로 하나가 된다
그대의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포도주 보다 아름답도다
ㅡ 살 로 메 ㅡ
내 눈 감은 뒤에도 당신을 볼 수 있어요
내 귀 막더라도 당신의 말 들을 수 있어요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 없어도 당신에게 호소할 수 있어요
내 팔 꺾더라도 손으로 잡을 수 있어요
손으로 잡듯이 가슴으로 당신을 잡을 수 있어요
심장이 멎더라도 머리는 뛰겠지요
내 머리에 당신이 불을 던지면 피로써 당신을 껴안겠어요
한마디로 말하여 루 살로메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웠고 자신만이 자기운명의 주인이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을 사랑한 확신과 열정에 가득찬 사람이었습니다.
살로메는 사치와는 거리가 먼 수수한 옷차림에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고 엄청
나게 지적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니체는 살로메를 알고난 뒤에 자기와
대등히 대화를 나눌수 있는 유일한 지성녀라고 하였습니다. 나이들어 몸매가
망가지고 미모가 변하고 주름이 진 모습에도 여전히 유럽의 기라성같은 천재
와 지성남들을 매혹시킨 매력이 넘치는 지적 팜므 파탈이었습니다. 외형적이
고 시각적인 매력이 넘볼수 없는 지적, 내적 매력이 넘치는 여인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의 살로메는 어부 세베데의 아내였고
12제자중의 첫번째 순교자 사도 야고보와 그의 이름으로 기록된 요한복음과
요한1~3서와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요한의 어머니이었음을 새로 알았습니다.
예수의 초기 갈릴리 전도사역 시절부터 예수의 진리 말씀에 따르고
특히 집안이 부유하여서 자신의 소유물로서 오랫동안 예수의 수발을 들었으며
골고다의 십자가에 달리는 책형장의 현장까지도 동행하였고
무덤에서의 부활의 현장에도 동참한 복받은 여제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괴테를 보자 "보라, 여기 한 사람의 남자가 있다"고 찬탄하였습
니다. 이런 나폴레옹이 여자중의 제일여자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를 보았다면
그는 또 "보라, 여기 한 사람의 여자가 있다"고 스슴없이 말했을 것입니다.
요까낭의 목을 쟁반위에 요구한 유대공주 살로메와는 격이 다른
루 안드레아스 살로메(Rou Andreas Salome, 1861.2.12~1937.2.5)는
독일계의 帝政 러시아의 로마노프가에 봉사한 구스타프 폰 살로메장군의
딸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취리히대학을 나왔습니다.
로마에서 독일의 철학자인 니체와 알게 되어 구애(求愛)를 받았으나, 1887년
에 독일의 동양학자 프리드리히.K.안드레아스 교수와 결혼하였습니다.
R.M.릴케, F. 니체, 파울 레 등과 친하였고, S.프로이트와도 학문상의 교제가
있었습니다. 특히 14살이나 연하인 릴케의 가장 좋은 이해자이며, 비호자의
한 사람이었고, 자신이 많은 소설과 수필, 심리학의 논문 등을 썼고
그녀와 사귄 예술가들에게 창조력의 영감의 원천이 된 여인은 더 이상 존재하
지 않습니다.
주요저서에는 《릴케 Rainer Maria Rilke》(1928) 《프로이트에 대한 감사
Mein Dank an Freud》(1931) 등이 있으며, 죽은 뒤에 자서전 《인생회고》
가 출간되었습니다. F 니체는 루 살로메와 사귀다 헤어진 고뇌속에서 불후의
명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탈고하였는데 이 책속에는 "여자를
보는데는 회초리를 잊지 말라"는 말로 살로메를 힐난하는 대목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그녀의 영원한 찬미자, 장미의 시인 R. M. 릴케는
살루메와 헤어진 후에도 그녀를 영원한 연인으로 찬미하는 시를 썼습니다.
ㅡ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ㅡ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그대는 내 마음 사로잡아
우리는 그대의 눈속에서 하나가 되고
그대의 목걸이로 하나가 된다
그대의 사랑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의 누이여, 나의 신부여
포도주 보다 아름답도다
ㅡ 살 로 메 ㅡ
내 눈 감은 뒤에도 당신을 볼 수 있어요
내 귀 막더라도 당신의 말 들을 수 있어요
발이 없어도 당신에게 갈 수 있고
입 없어도 당신에게 호소할 수 있어요
내 팔 꺾더라도 손으로 잡을 수 있어요
손으로 잡듯이 가슴으로 당신을 잡을 수 있어요
심장이 멎더라도 머리는 뛰겠지요
내 머리에 당신이 불을 던지면 피로써 당신을 껴안겠어요
한마디로 말하여 루 살로메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웠고 자신만이 자기운명의 주인이었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생을 사랑한 확신과 열정에 가득찬 사람이었습니다.
살로메는 사치와는 거리가 먼 수수한 옷차림에 독립적인 성향이 강하고 엄청
나게 지적인 여성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니체는 살로메를 알고난 뒤에 자기와
대등히 대화를 나눌수 있는 유일한 지성녀라고 하였습니다. 나이들어 몸매가
망가지고 미모가 변하고 주름이 진 모습에도 여전히 유럽의 기라성같은 천재
와 지성남들을 매혹시킨 매력이 넘치는 지적 팜므 파탈이었습니다. 외형적이
고 시각적인 매력이 넘볼수 없는 지적, 내적 매력이 넘치는 여인이었습니다.
또 한 사람의 살로메는 어부 세베데의 아내였고
12제자중의 첫번째 순교자 사도 야고보와 그의 이름으로 기록된 요한복음과
요한1~3서와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요한의 어머니이었음을 새로 알았습니다.
예수의 초기 갈릴리 전도사역 시절부터 예수의 진리 말씀에 따르고
특히 집안이 부유하여서 자신의 소유물로서 오랫동안 예수의 수발을 들었으며
골고다의 십자가에 달리는 책형장의 현장까지도 동행하였고
무덤에서의 부활의 현장에도 동참한 복받은 여제자의 한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