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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물리학과 인류기원 연대

鄭宇東 2 1891
지구물리학과 인류기원 연대

지구물리학(Geophysics)은
지구의 내·외부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물성을 구명하고, 물질의 분포상태
를 물리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으로 지질학에서도 물리학적 연구를 많이
하므로 엄밀하게는 지구물리학과 지질학을 구별하기가 곤란하며, 부분적으로
는 중복됩니다. 지구물리학의 연구대상은 태양계 행성(行星) 사이의 전공간이
므로 천문학·우주물리학과도 다소 중복됩니다. 일반적으로 지구물리학은 대기
권외물리학, 전리층물리학, 대기권물리학 및 기상학, 해양학, 지진학 및 지구
역학, 지구내부 물성물리학, 지구전자기학, 지구중력학으로 분류됩니다.

지구물리학의 초창기 연구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기원전 384-322)의 4대 기본 원소중의 하나가 흙
(earth)이 라는 사실에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지구자체는 모든 4원소들의 불
안정한 결합에 의해서 구성이 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지구의 물리적인 성질
에 대한 연구는 여러 가지 문제로서 분석을 하였고, 특히 지구의 유래와 물리
적인 조성에 연구를 하였습니다.(우주생성론). 많은 연구자들이 육지와 바다
가 원시 해양으로부터 생겨났다고 믿었습니다. 뷔퐁(Buffon, 1707-1788)과
같은 사람들은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튕겨 나와 원시용융상태가 있었다고 믿
었습니다.

지구의 물리적인 기원에 대하여 수성론자들, 화성론자들과 화산론자들 사이
의 논쟁은 지질학의 발전에 있어서 결정적이었고 많은 지구물리학적인 문제
들이 연계되어 있었습니다. 화성론자인 허튼(Hutton, 1726-1797)은 대규모
의 퇴적물의 누적 위에 중력이 압력작용을 하여 고화가 이루어 졌다고 믿었
습니다. 반대론자들은 화성론자들이 영원히 감소하지 않는 중심열원을 가정
하고 있다고 믿었으며, 이것이 물리법칙에 어긋난다고 하였습니다. 유사하게
켈빈경(Lord Kelvin, 1824-1907)은 다윈(Charles Darwin,1809-1882)의 진화
론에 반론을 전개하였는데, 다윈은 자연선택을 위한 진화가 이루어지려면
지구가 너무 빨리 식어서는 안 된다는 근거를 제시한바가 있었습니다.(시간).

지구물리학의 또 다른 핵심문제는 지구의 정확한 크기와 모습을 측정하는 것
이었습니다. 지구는 달걀모양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되어 왔었습니다. 그
중에서 뉴턴은 오렌지처럼 극이 납작한 편평형의 회전타원면체가 지구의 형
상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1735-1736년 사이에 지질원정대를 편성해서 모페
르튀스(Maupertuis, 1698-1759)는 라프란드(Lapland)로 라 꽁다민(La Conda
mine, 1701-1774)은 페루에서, 측정해본 결과 뉴튼의 견해가 옳은 것으로 판
명되었습니다. 훔볼트(Alexander von Humboldt, 1769-1859)는 일찍이
지구물리학을 알기 쉽게 만들기 위해서 자아의식적인 노력을 하였습니다.
훔볼트는 조류, 바람, 열확산, 자기 등을 연구하여 전 지구적인 차원에서 자
료를 수집하여 맞추었고, 이들로부터 단일 과학 분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여기서는 지구물리학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지 않고
우리 정신적인 생활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영향을 주어 온 기독(종)교와
과학사적으로 상충되어 온 자연과학자둘의 지구생성 연대설 및 일부 성서학
자들의 인류기원의 연대설, 그리고 천동설과 지동설 사이에서 벌어진 투쟁
가운데서 진리와는 상치 되는 일방적인 종교재판으로 희생된 과학자들의 면
모를 살펴보려 합니다.

"種의 起源"을 저술하여 진화론을 설득력있게 주장한 사람은
찰스 다윈입니다. 이 다윈의 진화설을 나의 뇌리에 심각하게 담도록 해준
사람은 생물 선생님 아닌 엉뚱하게도 클레오파트라만이 아니라 이목구비
가 제자리에 붙은 자기도 미인이라 한 세계사 선생님이었습니다.
귀에 낯설게도 선생님이 그때 로버트 다윈이라 하여 듣기에 어리둥절하였
습니다. 한참 세월을 지나고 나중에 알고보니 그의 풀네임이 찰스 로버트
다윈이라니까 당시 선생님의 말에는 아무 잘못도 없고 이색추구 호사가에
게는 그럴 법도 한 일이었습니다.

다윈이 태어난 당시만하여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창조의 역사는 기원전 4004년 시작되었다고 믿고 있었
는데 이 창조역사의 年代譜는 창세기 제1장의 계보학과 기타 자료에 따라
서 계산해 낸 아일랜드의 대주교인 J. 어셔(James.Ussher)가 제창하였고
이에 의지하여 영국 Cambridge 대학의 히브리 신학자 존 라이트풋 ( John
Lightfood)교수는 여기에 한술 더 떠서 하느님의 창조의 役事를 연월일시
까지 적시하여 기원전 4004년 10월 18일 ~ 24일 사이의 일이요,
아담의 창조는 BC 4004년 10월 23일 오전 9시에 됐다 고 주장하였으니 그
의 믿음이 좋음을 찬탄하거나 그의 맹신을 나무랄 수 밖에는 길이 없습니다.
오늘날의 과학적 통설은 최초의 빅뱅사건으로 우주의 생성이 137억년 전
으로 추정되고, 지구의 생성을 46억년 전으로, 고생인류의 출현을 400만
년 전, 현생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약 4만년 전쯤으로 추정되는 것과는
너무나 짧은 기간인 것이 약점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어스(85~165)가 천동설을 주장한 이래
중세까지 1500여년을 움직일 수 없는 확고부동한 진리로 여겨져 오다가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처음 발표한 것이 1543년,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말로만 부정하고 유폐된 것이 1616년인데, 그 사이 70년 동안에 이딸리아
자유사상과 지성의 순교자 조르다노 브루노(1560~1600)가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서 회개할 줄 모르는 고집장이 이단자로 낙인찍혀 화형선고을
받고 진리에 충실한 자기는 아무 잘못이 없고, 오히려 선고를 내린 사람이
무서워 떨고 있다고 대갈한 일은 정말 속이 다 시원한 통박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창조론과 진화론은 접점없는 평행선을 그려가는 이론입니다.
우리가 배운 지금까지의 과학적 학설과 증거들은 성서의 계보를 따라 꼼
꼼이 계산된 창조연대보가 터무니 없이 짧은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과학이 만능이 되는 일도 막아야 하겠지만, 신앙이 과학이 되는 일은 더더
구나 없어야 합니다. 교황청이 뒤 늦게나마 천동설을 버리고 지동설로 바
꾸었듯이 금과옥조 창조설이야 고수한다 하더라도 저 연대보는 합리적으
로 고쳐졌으면 합니다.
2 Comments
정용철 2013.08.12 10:39  
기원전 4004년의 기독종교의 창세설과
137억년전이란 우주 빅뱅설이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가?
 접근 방법이나 목적은 다를 지 모르나
 두 설 모두가 오류의 설들이라는 이야기이다.
 지구의 생성이 46억년 전이라는 것은 가능한 이야기일 지는 모르나
전체 우주가 137억년 전에 생성되었다는 것은 엄청난 착오와 착각이다.
 그 것이 초은하 혹은 소우주라면 가능한 발상과 과학이겠으나,
전체 우주라는 착각은
기독종교에서의 개념적인 오류와 같이
현대과학에서의 과학적 착각이다.
 그러면,
137억년전 이전과 현대과학이 거론하는 우주의 밖은?
 다른 종교에서 또 다른 개념적 오류를 범하거나
기독종교에서 137억년 전에서 기원전 4004년까지의 과학 르네상스 기를 주어서
설명해야 하는가?
 과학자들이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과학자들이 허블의 광속을 근거로한 우주팽창론 등으로 전체우주의 생성기를 운운하는데?
 바다 속의 물고기들은 물의 진동파장을 근거로 또 다른 우주 빅뱅론세미나를  태평양 속에서
열고 있을 것이다.
 지구를 인간의 지식인 과학으로 해석하는 것은 어느 정도 오차 범위 내일지는 몰라도,
그 편협된 박식으로 우주를 측청하려는 것은 인간의 측정도구가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자리를 종교의 개념적 판단에 맞길 수는 없다.
 현재의 과학자들이 137억년 같은 속단을 자제하고
공부를 좀 더 하라는 이야기이다.
鄭宇東 2013.08.17 11:00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이론이 주장하는 바
현대과학의 미시세계에서는 확실하게 결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과학적 진리도 지난 시절의 임시변통의 가설(假說) 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 가설이 여러 차례 수정과 보완을 거쳐 확정된 결과물일 뿐입니다.
허블 우주망원경으로 관측된 147억년의 우주생성연대도 지금의 과학수준으로
야 검증과 증명할 수 없는 여러 가설중의 하나로 여겨집니다. 이 망원경은 우주
의 팽창을 관측한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포웰 허블(Edwin P. Hubble 1889~19
53)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대기권을 벗어난 곳에서 관측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탄생이 BC 7~4년이라는 3년차의 갭을 메우는데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데, 하물며 아득한 태곳적의 몇 백억년전의 일이야 어찌 알수 있겠습니까?
나는 인간의 인식능력에 심한 회의와 한계를 느낍니다.
극히 상식적인 결정을 한다든가 명명백백한 사안을 묘사하는 것은 몰라도
금지된 신비하고 신성한 지식을 다루어 단정하는 일은 신중하여야 합니다.
확실한 지식이 아니면 솔직히 또 겸손하게 모른다 하는 버트런드 레셀 경의
"불가지론"적 입장에 크게 공감을 느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