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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귀복 선생님의 음악회를 참관하고

鄭宇東 0 1715
신귀복 선생님의 음악회를 참관하고

신귀복(申貴福) 선생님은
이번 2014년 4월 25일 "작은 꽃씨 음악회"를 "사이다 음악회"라 알려 주
었습니다. 사월 이십 오일의 오를 다섯으로 바꾸어 사이다 (4.2.5)로 표현
한 것입니다. 달포전에 들은 스케쥴이었지만 한번 듣고도 잊히지 않는 효
과가 있었습니다. 이런 번쩍 아이디어는 일찍부터 당신 자신을 "복귀신"
으로 소개하는 데서도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날의 음악회는 대 성황이었습니다.
모든 일에 정성과 열심을 다하는 선생님의 심덕의 당연한 결과입니다.
일반 사석에 모처럼 참석해 주신 의정부 초대 교구장 이한택 주교님
반세기를 넘게 끈끈히 이어 온 공군군악대 시절의 동료들과
동도공고와 금옥여고의 교사시절의 사표가 된 수 많은 제자들과
최영섭선생님, 오동일선생님, 윤해중선생님, 오숙자님, 고영필님,
윤상렬님, 정영택님, 김정철님, 한지영님, 임긍수님과
김신환 전 세종문화회관 사장님을 비롯한 음악계의 원로분들과
중앙대 김진우교수, 백석대 정덕기교수, 강원대 안정모교수 등
수많은 현역교수님들과

오두영시인, 전세원시인, 한여선시인, 장미숙시인 등의 문학인들이
가곡애호 클럽들 중의 내마음의노래 정동기 대표들과 그 회원들이
또한 배동인교수님을 비롯하여 나를 포함한 우리가곡의 열성팬들이
바리톤 송기창교수, 테너 하만택교수, 소프라노 임청화교수,
소프라노 이미경교수 등의 호화 출연진을 놓치지 않고 몰려 들었습니다.
옥타브 합창단의 출연 연주도 불가결의 음악회의 화음이었습니다.

특히 평소와는 달리 음악계의 인사들께서 이 음악회에 대거 참석해 주신
것에 대하여 관객 모두가 신귀복선생님의 평소의 대인관계와 도타운 인
덕을 자자히 칭송하였습니다.
몇년전만 하여도 사모님 소개를 극구 사양하시더니
오늘은 임경자사모님의 함자도 밝히시며 소개하니까 보기에도 좋았습니
다. 이런 것은 나이든 어른으로부터 배우는 젊은 사람의 혜택일 것입니다.

申선생님은 1937년 1월 4일 경기도 안성군 구포동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님이 사회를 보거나 담화중에 비상한 기억력으로 음악가들의 생년월
일과 출생지를 번지까지 줄줄이 외우는데는 정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습
니다. 마음먹고 아무리 신귀복 선생님처럼 숭내내 볼려도 아는게 없으니
그저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물새알 산새알을 작곡하면서 동요 작시자 박목월선생님을 찾아가서 작곡
의 인사를 드리니 목월선생께서 맞절로 대하며 치하하시더랍니다. 이전
의 우리 선비나 예술가들의 공대-응수가 이렇듯 깎듯했다 하였습니다.
넝쿨타령을 작곡하며 소월선생 작품의 판권자를 만나는 등 정당한 절차를
밟는 그러한 공정한 마음이 1984년 제2회 MBC 창작동요제의 입상작품인
동요 "노 을"의 작곡자가 안호철이 아니라 최현규님이 원작곡자라고 세상
에 밝혀 놓았습니다.

마지막은 우리 3천만의 국민가곡이라고 해야 할
1967년 동도공고 재직시의 동료교사였던 심봉석 생물교사가 노랫말을
쓰고 申선생님이 작곡한 "얼굴"을, 이제는 신귀복 선생님의 음악회에서
관례화되어 선생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노래 부르며 피날레를 장식하
는 고정 레파토리가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일화로, 스승 김동진翁의 일화
처럼 덕소에 갔다가 검문에 걸려 신분증이 없어 궁한 끝에 "얼굴"의 작곡
자라하고 노래를 부르니 잘 아는 노래라면서 검문에서 통과시켜 주었다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이 작품 얼굴은 선생님의 두번째 작품이고,
첫번째 작품은 송강 정철의 시조 "말하기 좋다하여"에 작곡한 것입니다.
작곡에 부담을 느끼며 번민하던 중 꿈속에서 난파 선생의 귀띔으로 완성
하였다는 전설이 전하여지고 있습니다.

옛날 개성에 松都三絶이 있었듯이
우리 가곡계에는 申선생님의 성파(星坡)를 비롯하여 3坡가 있습니다.
홍영후선생의 호 난파(蘭坡)와 구두회선생의 호 향파(香坡)가 그렇습니다.
여기에 하나 더 덧붙이기 하면 또 세주막도 있었습니다. 
서울 북아현동의 이흥렬 선생님댁, 마산 오동동의 조두남 선생님댁
서울 성산동의 이수인 선생님댁의 獨酌幕이 또 그렇게 불립니다.
그리고 申선생님이 안성의 안법고교에 재학 시절에 이흥렬 선생님이
"안성의 노래"를 작곡하고 시연을 그 학교 밴드부에서 하다가 성악으로
바꾼 것이 너무 절묘해서 훌륭한 작곡가가 되어 좋은 작품을 많이 만들
기로 작정하고 경희대 음대에 입학하게 되었다 합니다. 

음악회의 사회를 맡아 매끄럽고 깔끔하게 진행해 준
김치경시인은 시창작과 시낭송회에서 문학활동을 하면서 성악 활동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김시인의 문학활동이 申선생님의 창작활동에 활기
를 더해주고 있음에 틀림없습니다. 플루타크는 카토가 로마에서 받은
것보다 카토가 로마에 준것이 훨씬 많다고 비평하였듯이 김 시인이
申선생님께 도움되는 것이 많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음악회는 성황이었지만 
세월호 침몰 참사로 전 국민이 슬픔에 빠져 있었기에
申선생님은 김치경시인이 영령들에게 바치는 헌시에 하루밤 사이에 피
눈물로서 곡조를 완성하여 헌정음악회로 가닥을 잡고 준비하였습니다.
피어 나지 못한 참꽃들에 대한 애석함과 이런 사태를 초래한 어른들의
통한이 서린 노래 "편지"는 작사자도 작곡자도 울리고 노래하는 성악가
도 객석에서 듣는 우리 모두를 울렸습니다. 기성곡을 적당히 손질하여
던지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하여 위로하고 추념하는 곡이기에 감동
의 물결이 장내에 크게 일렁그렸습니다. 申선생님은 음악회 후 과로로
한쪽 손이 마비되었고 지금은 후유증으로 몸살을 지독히 앓고 계십니다.
신귀복 선생님의 쾌유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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