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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국어의 차자표기

鄭宇東 0 1579
옛 국어의 차자표기

.  ㅡ 들어 가는 말 ㅡ
우리나라는 고래부터 우리말은 있으나 이를 표기할 고유한 글자가 없어서
1446년 세종임금이 훈민정음 28글자를 창제하기까지는 남의 글자 즉 漢字
를 빌려 이른바 신라의 향찰(鄕札), 고려의 이두(吏讀), 조선의 구결(口訣)
과 반절(半切) 등등의 시스템으로 표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차자표기(借字表記)의 형식에 있어서도
한자지식이 일천한 한자도입의 초창기에 쓰여진 任申誓記石銘文 처럼
순한문형식이 아니라 우리식 어순한문이었으나 차차 漢學지식의 발전으로
순한문투로 변하였습니다.

    ㅡ 任申誓記石銘文 ㅡ
壬申年六月十六日, 二人幷誓記, 天前誓.
今自三年以後, 忠道執持, 過失无誓.
若此事失, 天大罪得誓. 若國不安大亂世, 可容行誓之.
又別先辛未年七月卄二日, 大誓. 詩尙書禮傳, 倫得誓三年.
이 명문의 임신년(壬申年)은 552년(진흥왕 13) 또는 612년(진평왕 34)의
어느 한 해일 것으로 보이며 서예사적(書藝史的) 측면에서도 자형과 획법,
그리고 명문의 새김방식에서 6세기 신라시대 금석문(金石文)의 일반적 특
징을 보여주는 자료입니다.

한자·한문을 받아들여 우리의 표기수단으로 삼을 때 향찰식(鄕札式) 표기,
한문식(漢文式) 표기 외에 훈석식(訓釋式) 표기가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증거해 주는 유일한 금석문 유물로 세속 5계 중의 ‘교우이신(交友以信)’, 즉
신라 젊은이들의 신서(信誓) 관념의 표상물(表象物)이고, 우리 민족의 고대
신앙 중 ‘천(天)’의 성격의 일단을 시사해 주는 자료입니다.

  ㅡ 향찰(鄕札) ㅡ
우리말 특히 신라 향가를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표기한 문자체계입니다. 
14首 밖에 전해지지 않는 향가중 처용가(處容歌)의 원문과 고어문은
東京明期月良          : 동경 발기 달밤에
夜入伊遊行如可      : 밤드리 노닐다가
入良沙寢矣見昆      : 들어와 잠자리 보곤
脚烏伊四是良羅      : 가라래 네히어라
二隱吾下於叱古      : 아아, 둘은 아내것이고
二隱誰支下焉古      : 둘은 누구의 것이런고
本矣吾下是如馬於隱 : 본디 내 것이다만
奪叱良乙何如爲理古 : 빼앗긴 것을 어찌하릿고
여기서 동경명월은 한자의 뜻이고 기랑은 한자의 음을 사용한 것입니다.

  ㅡ 이두(吏讀) ㅡ
향찰의 노력도 사라지고 다만 우리말을 한문으로 적으면서 조사와 어미만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적었습니다. 이것을 이두라고 합니다.
다음에 대명률직해에서 그 실례를 들고, 다시 구결문으로 고칩니다.
(한 - 문) 凡典買田宅, 不稅契者, 笞五十.
(이두문) 凡他人田宅乙交易爲乎文記稅納官斜是不冬爲在乙良笞五十齊.
(구결문) 凡典買田宅乎代不稅契者隱笞五十爲羅.
(번역문) 무릇 大典에 전택을 사되 세금을 내지 않은자는 태형 50 이라.
위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이두문)은 문장을 우리 어법순으로 배열하고 거기다가 토씨를 붙혔으며
(구결문)은 원문에다 훈석하는데 필요한 토씨를 달았을 뿐입니다.

  ㅡ 구결(口訣) ㅡ
한문 문장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구절이 끝나는 곳에 끼워넣던 우리말의 문법
요소로 '입겾' 또는 '입겿'이라는 순 우리말 명칭도 있었고, '토'(吐)라는 말도
구결과 거의 같은 뜻으로 쓰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말 적기와 별개로 한문에
다가 우리말을 토를 붙였는데 한글로 안 붙이고 한자로 붙인 것입니다.
(원문)  天地之間萬物之中厓 有人是 最貴爲尼羅
(번역)  천지지간만물지중에 사람이 가장 귀하니라.

  ㅡ 반절(半切) ㅡ
한자의 음을 완전히 표기하기 위해 두 글자를 합하여 한 글자의 음을 나타
낸 것을 반음(反音)·번절(翻切)이라고도 합니다. 후한 때 불교와 함께 전래
된 범자(梵字)의 표음법(表音法)에서 유래한 것이며 이것을 학술적인 표음
방법으로 채택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 위(魏)의 손염(孫炎)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동'(東)의 발음을 표시하기 위하여 '東 德紅反(切)'과 같이 써놓고
'덕'(德)의 성모/t/와 '홍'(紅)의 운모/u/을 취하여 '東'(/tu/)이란 음을 표시하
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때, 성모를 표시하는 글자를 반절상자(反切上字)라
하며 운모를 표시하는 글자를 반절하자(反切下字)라고 합니다.

  ㅡ 나오는 말 ㅡ
향찰은 신라때 향가의 우리말을 적은 것입니다. 향찰은 한자의 음과 뜻을 이
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두와 구결은 한문에 사용되었습니다. 이두는 조사와
어미만 향찰처럼 적은 것이고, 구결은 한문에다가 토를 단 것입니다.
지금의 우리는 문자생활의 이러한 역사를 모른채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 선인들이 신라때 시작하여 고려를 거쳐 조선때까지 사용해 온
吏讀文만 하더라도 훈민정음 한글의 500년 역사보다 2배나 되는 1000년의
역사인데도우리 후손들은 이두문의 공과를 모르고 삽니다. 간혹 일어나는
우리말에 대한 시비는 이러한 옛말에 대한 연구와 천착이 모자란데서 일어
난다 하겠습니다. 우리 말글을 바르게 알고 또 아름답게 갈고 닦기 위하여
서는 옛사람들의 문자생활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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