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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명록

김동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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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1901년∼미상)
시인. 함경북도 경성 출생, 아호는 파인(巴人), 1926년 동환으로 개명
경성보통학교, 중동중학교, 일본도요대학 영문학과
북선일일보사,·동아일보사, 조선일보사 기자 역임
1929년 6월 종합잡지 《삼천리 三千里》및 《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간행
대표작: 국경의 밤, 북청 물장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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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1년(광무 5)∼미상. 시인. 본관은 강릉. 아명은 삼룡(三龍), 아호는 파인(巴人)
1926년 동환으로 개명하였다. 함경북도 경성 출신. 아버지는 석구(錫龜), 어머니는 마윤옥(馬允玉)이다.
 6남매 중 장남이다. 출생지와 본적지는 같고, 1926년 신원혜(申元惠)와 혼인하여 분가한 이후 서울 종로구 돈의동으로 옮긴 것으로 되어 있다.
 1913년 경성보통학교(鏡城普通學校)와 1921년 중동중학교(中東中學校)를 거쳐 일본 도요대학(東洋大學)영문학과에 진학하였다가, 관동대진재(關東大震災)로 중퇴하고 귀국하였다.
 그뒤 함경북도 나남에 있는 북선일일보사(北鮮日日報社, 1924)·동아일보사(1925)·조선일보사(1927) 기자를 지냈다.
 1929년 6월 종합잡지 《삼천리 三千里》를 자영하였으며, 1938년에는 그 자매지로 문예지 《삼천리문학(三千里文學)》을 간행하기도 하였다.
 1942년 5월 《삼천리》를 《대동아(大東亞)》로 개명하면서 황국신민화운동을 벌이는 등 친일적인 행각을 시작하였다. 이런 친일적인 행각으로 광복 후 반민특위(反民特委)에 의하여 공민권 제한을 받다가 6·25남침 때 납북되었으며, 그뒤 행적에 대하여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의 문단활동은 1924년 《금성(金星)》 5월호에 시 〈적성(赤星)을 손가락질하며〉를 처음 발표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뒤 《조선지광 朝鮮之光》·《조선문단》·《신민 新民》·《동광 東光》·《삼천리》·《신동아 新東亞》·《조광 朝光》·《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 등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에 시·소설·희곡·수필·평론 등 많은 작품을 발표하였다.
 1925년에는 제1시집 《국경의 밤》과 제2시집 《승천(昇天)하는 청춘(靑春)》 2권을 간행하였다. 그리고 1929년에는 주요한(朱耀翰)·이광수(李光洙)와 함께 제3시집 《삼인시가집 三人詩歌集》을 펴냈고, 이어 1942년에는 제4시집 《해당화(海棠花)》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그의 시세계는 〈국경의 밤〉·〈북청(北靑)물장수〉등 북방의 정서를 보여준 초기시와, 〈우리들은 칠인(七人)〉·〈오호 태평양상(嗚呼 太平洋上)의 군신(軍神)〉 등 자기 안주를 위하여 현실에 순응하여 친일성과 야합한 중기 시, 그리고 〈무명전사(無名戰士) 묘 앞에〉·〈33인의 송가(頌歌)〉 등 자신의 친일적인 행각을 참회하고 애국주의를 표방한 광복 후의 후기시로 구분해볼 수 있다.
 이 가운데 특히 〈국경의 밤〉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사시로 일컬어지는 그의 대표작으로서, 두만강일대의 겨울밤을 배경으로 하여 밀수꾼으로 위장하고 떠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의 불안한 마음을 통하여 망국민의 민족적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
 그리고 그의 시세계의 커다란 맥을 형성하는 일련의 민요시들 가운데 〈산(山)너머 남촌(南村)에는〉은 따사로운 자연과 순박한 인정을 노래한 것으로 곡을 붙여 널리 불리고 있는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이다.
 그밖에 그가 납북된 후 최정희(崔貞熙)가 유고를 모아 펴낸 제5시집 《돌아온 날개》(1962)가 있으며, 《삼천리》에 실린 논설들을 모은 산문집 《평화(平和)와 자유(自由)》(1932)가 있다.
 또, 시·소설·평론을 함께 묶은 《조선명작선집 朝鮮名作選集》(1936), 명사들의 기행문을 모은 《반도산하 半島山河》(1941), 수필집으로 《꽃피는 한반도(韓半島)》(195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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