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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일 선생님을 뵈온 날

노을 6 1256
우리가 모두 일어서서 마지막 곡  ‘삼월이 다 가기 전에’를 부를 때
통로를 따라 노작곡가님이 천천히 걸어 나가셨다.
그 순간, 이상한 감동 같은 것으로 내 목소리가 잠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약간 굽은 뒷모습은 그 연세에 상당히 큰 키였고
걸음걸이는 서둘지 않는 여유로움과 꼿꼿함으로 정정해 보이셨다.
그분은 여러모로 놀라움을 주셨다.
가곡을 즐겨 듣고 부르던 오래 전부터 봄이면 ‘강이 풀리면’을
꼭 한 번쯤 흥얼거리거나 일부러 골라 듣곤 했다.
그 곡을  작곡하신 분의 성함인  ‘오동일’,
부르기에 어감이 좋은 그 이름은 나로 하여금
어쩐지 기백이 넘치는 젊은 분으로만 여기게 했고 그런 줄만 알았다.
몇 해 전, 모차르트 카페 시절에 처음 발을 디딘 내마노 모임에서
‘삼월이 다 가기 전에’를 처음 배우며 노래는 낯설었지만 작곡가의 이름이
나에게는 익숙하였기에 참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그 노래는 여고시절에 배웠던 가곡들, 예를 들어 ‘그집 앞’을 비롯해 ‘동심초’라든가
‘봄이 오면’ 같은 가곡의 고전에만 머물러 있던 그때까지의 내 수준에 변화를 주고 
지평을 한 단계 더 넓혀 준 노래로 애창곡이 되었다. 
막상 선생님을 뵈었을 때 생각보다 연만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았으나
자신의 곡이 연주될 때마다 간단히 그 곡에 대한 소회를 피력하시는 품이
군더더기 없는 간결한 설명과 은근한 윗트에 조금도 그 나이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대개 연세가 높으시면 마이크를 잡고 여간해서는 내려놓지 않는 걸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비록 실력이 안 되어 무대에 서는 것을 사양했지만 오동일 선생님을 뵙고 후회했다.
표정도 없으시고 말씀도 길지 않았지만 그분에게서는 시들지 않은 음악에의 열정이
느껴졌고 음악가로서의 순수한 진정성이 감출 수 없는 향기처럼 전해져 왔다.
못 부르는 노래나마 그분 앞에서 불러보는 일은 분명 큰 영광이며 좋은 추억이 되었으리라.
그날 소프라노 이연화님이 불러주신 선생님의 다른 곡들도 우리 정서에 어울리는
아름답고 정겨운 노래들이었다.
오랜만에 걸음한 내마노의 작은 음악회는 언제나처럼 돌발감동이 여전했으며
그 시간을 위하여 수고하시는 스텝 여러분들의 노고도 여전했다.
또 하나의 수확, 제목이 영 낯설어 선뜻 들어볼 생각을 못했던 정영택 선생님의 곡
‘그 어느 지날 손이’를 알게 된 것이다. 
또 하나의 듣고 싶고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만났으니 그동안 배웠던
여러 주옥같은 신작가곡들과 더불어 또 나를 당분간 행복하게 해줄 것 같다.
내마노는 그런 모임이다. 옛 노래와 새 노래가 정선 아우라지처럼
한데 어울어져 가곡의 물결은 더 도도해진다.
그 도도한 물결이 언젠가 이 땅에 우리 가곡의 시대를 열어줄 것을 기대해본다.
6 Comments
열무꽃 2008.08.26 16:30  
내마노 서울모임의 정감어린 후기를 올려 주신
노을님도 보배이십니다.
기다리던 3월이 다 가고
벌써 9월이 온다네.
요들 2008.08.26 16:53  
벌써
9월이네요...ㅎ
노을님, 원장님...*
鄭宇東 2008.08.26 18:30  
겉으로 근엄하게 보이시는 오동일 선생님은 몇 차례 뵙고 낯을 익히니
나의 경상도 억양을 악보 읽듯 정확하게 흉내내시며 장난을 걸어오십니다.
그래서 나는 선생님을 뵙거나 생각하면 일본 전설의 동물로 물가에 살면서
배바닥만 둥글게 하얗게 칠하고 진흙판에 마구 딩군 것처럼 전신이 새까만
장난치는 河童(kappa)을 떠 올리곤 합니다.
물에 노는 아이들을 물에 빠뜨리고, 물장구를 치는 장난꾸러기 말입니다.

서울음대 재학수학때
의대에 다니면서 입학 못한 한을 풀러 이웃 음대로 음악수업에 도강하던
박경민님이 지은 <내 마음 적시리>에 곡을 붙인 인연으로 미국에 사시는
작사자와 한해에 한번씩 회동하신다는 긴 우정이 부럽습니다.
미국에 정착한 박경민님은 우리 음악인이나 음악단체가 미국에 가면
온갖 편의를 제공하면서 도와 주신다니 내마음의노래합창단도 한번 가시기요.
홍양표 2008.09.02 14:21  
노을님!
그리 감동하셨나요.
노 작곡가의 뒷모습 보며

뒷모습이 아름답고 영원해야 하는데

아름답게 보는 마음이
아름답지요.
풀꽃 2008.09.03 11:36  
노을님,

오동일선생님을  뵙고...
또 노을님을 뵙고..  즐거운 날이 었습니다.
노을님!  오랫만인데도 알아보시고  인사건네 주셔 고맙습니다`
자주 보게 되기를...
노을 2008.09.09 14:51  
풀꽃!
너무 어울리는 네임이시군요.
저, 이름만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그 이름은 또 얼마나 외모와 다른 분위기이시던지요.
제가 참석하지 못했던 시간들
사진 속에 모습을 보며 앗차 갔었더라면 만났을 것을... 했답니다.
반가웠어요.
그저 아는 것이라고는 얼굴뿐이지만 어쩐지 정이 가는 풀꽃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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