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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톤 윤치호 선생님에 대한 오해와 진실들

바리톤 6 3265
조금 전 테너 임웅균 선생님의 talk show에서 한국 성악가의 계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한국 성악가의 계보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고 합니다.

테너 이인범(희망의 나라로) - 베이스 오현명(명태)-테너 엄정행(목련화)-테너 박인수(향수)-테너 임웅균(민요 날 좀 보소)

물론 사람들이 말하는 한국 성악가의 계보는 한국가곡을 많이 불러 대중화 시킨 분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분들 가운데 또 한 분을 한국 성악가의 계보에 넣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분은 바리톤 윤치호 선생님입니다. 1942년 생의 윤치호 선생님은 1943년 생의 임정행 선생님과 비슷한 연배의 성악가 이시고 엄정행 선생님과 더불어 한국가곡의 대중화에 앞장서신 분이셨습니다.

화려한 테너 성악가로 엄정행 선생님이 계셨다면 힘찬 목소리 바리톤에는 윤치호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제가 장래 성악가의 꿈을 꾸던 중고등학교 시절 윤치호 선생님과 엄정행 선생님은 딱 한 번이라도 만나뵙고 싶은 성악가 였습니다.

물론 두 분 외 우리나라 성악가분들 가운데 정말 대단한 분들이 많이 계셨지만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기라고 하는 청소년 시기에 저의 마음 가운데 자리잡은 성악가분들은 윤치호 선생님과 엄정행 선생님 이셨기에 지금도 저의 마음 속에는 두 분의 성악가가 아름답게 자리잡고 계십니다.

제가 성악을 전공하면서 여러 성악가(지방과 서울의 무명 성악가들을 포함)들을 만나서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윤치호 선생님과 엄정행 선생님 처럼 성악계의 호사가들의 입에 오르내린 성악가 분들이 없을 듯 합니다.

참으로 두 분 성악가 선생님께서는 많은 분들에게 있어서 부러움과 질투의 대상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분 모두 외국 유학을 다녀오시지 않았지만 국내외에서 연주를 활발히 하시고 TV에 자주 얼굴을 보이셨기에 그만큼 많은 오해도 받고 부러움의 대상이 아니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엄정행 선생님은 무대 위에서 노래 하실 때 몇 번 뵈었습니다. 하지만 윤치호 선생님은 바로 앞에 앉아계신 모습도 뵐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털털한 성격이셔서 그랬는지 하얀 매리아스가 옷을 삐져나왔는데 그것도 아시지 못하고 앉아 계시는 모습은 청소년기에 선생님을 흠모하던 저의 마음에 환상이 깨지(?)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윤치호 선생님에 대해 제가 들은 이야기 가운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윤치호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하신 후 불혹의 나이가 훌쩍 넘으셔서 단국대학교 대학원을 다니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수님들 가운데는 성악가로서 윤치호 선생님보다 후배인 경우도 계셨다고 합니다. 너무나도 바쁘게 연주활동을 하시다 보면 미처 실기시험 준비를 잘 못하셔서 실기시험을 보시다가 간혹 가사를 잊어버리기도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 앞에서 평가를 하는 교수님(성악가로서는 후배)의 입장에서 얼마나 난감하셨을가요?

참으로 윤치호 선생님에 대해서는 많은 오해가 있었습니다. 그 오해들 가운데 어떤 것은 국내대학교만 졸업한 학력으로 활발한 연주활동을 하고 TV에 모습을 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에도 있었을 것이고 어떤 것으로는 워낙 털털한 성격 탓에 깔끔하고 말쑥하게 자기관리를 잘 하시지 못하시는 성격 때문이기도 하셨을 듯 합니다.

털털하고 옷을 입고 다니시고 또 중후한 무대위에서의 모습과는 달리 털털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시고...

성악가 윤치호 하면 "타고난 재주만 믿고 노력하지 않는 성악가"라는 오해가 있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윤치호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몇 년 전 사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윤치호 선생님은 타고난 재능이 많지 않지만 성실한 노력으로 극복을 하신 성악가이셨다고 합니다.

일상적인 모습에서는 참으로 털털하셨던 성악가!

TV에서 뵈면 중후한 분위기로 시청자를 압도하지만 실제 앞에서 뵈면 예상 외로 체구도 아담하셨던 성악가!

선천적인 재능은 많지 않았지만 성실한 노력으로 극복했던 성악가!

윤치호 선생님은 바로 그런 성악가가 아니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 윤치호 선생님이 출현하신 맥심 커피 CF를 보고 오늘날 거의  커피 중독자된 저는 오늘도 윤치호 선생님의 노래를 듣고 따라부르며 선생님의 팬으로서 남고 싶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윤치호 선생님을 추모하며 생전 그분이 애창하셨던 한국가곡을 모아 무명의 목사이며 무명의 성악가인 제가 추모 음악회를 갖고 싶은 생각도 해봅니다.

한 번도 선생님께 배운적은 없지만 ..

선생님! 존경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존경합니다.
6 Comments
귀명창 2008.10.13 22:44  
놀라운 소식에 소름이 돋습니다.
윤치호 선생님...
지급 이세상 분이 아니라는 생각에...
어느 세월에....
하늘곰 2008.10.14 00:07  
중고등학교시절 교회 성가대 지휘 하시는 뒷모습만 바라보았던 그 분이 윤치호 선생님이셨네요.굉장히 열정적으로 지휘 하셨던 기억으로만 남아 있습니다. 목사님! 추모 음악회가 기다려지네요.
Schuthopin 2008.10.14 01:01  
맞습니다..
같은 무대에서 함께 공연도 했었습니다만
털털하시고 꾸민없고 솔직하신 분이셨습니다.

무엇보다도 다른건 다 싫고 산사춘 2병이면 만사 오케이...
참 정감있으셨는데 생각이 나는군요..

추모음악회 추진 해보세요...^^
김형준 2008.10.14 05:51  
짧은 시간동안 그분에게 직접 배운 적이 있습니다.
좋은 분이셨지요.
청음이 대단히 좋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난 일을 안 하면 못살아요.'하시며 웃으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암에 걸려 투쟁을 하시며, 수척한 모습으로
끝까지 제자 양성에 힘을 쓰셨던 그 분의 장인 정신이 존경스럽습니다.
청산 2008.10.19 16:42  
윤치호 선생님이 부르신
<청산은 깊어 좋아라>, <산길>, <은발>을
지금도 자주 즐겨 들으며 따라 부르곤 합니다만
정말 매력적인 힘찬 목소리의 소유자라 믿어 집니다.
김영기 2009.03.26 10:03  
아아... 중경고등학교 음악선생이셨습니다. 저는 71년~74년 그 학교에 다녔고요. 수업시간에 떠드는 학생이 있으면 오페라 투로 ~~ 이리 날라와~~ 하시던 모습이 생생히 남아 있습니다. 2년이 지난 후에야 선생님의 비보를 들었습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었지만 뭔지 모르게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뵙고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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