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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창'의 꿈 속에서 미친 듯이 산 어느 1.5주일

김형준 18 1346
진대위는 음악적 감성이 매우 풍부한 사람이다.
그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표현할 길이 딱히 없다.
그저 진정한 의미에서 음악에 미친 사람이라고 해야 겠다.
아님 차라리 '음악의 신'이 그에게 내렸다고 보아진다.
무당이 무엇인가. 신 내림을 받은 이가 아닌가.
신의 영을 받은 자들은 인간의 영만 가지고 사는 이들보다
훨씬 더 영력이 뛰어난 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는 바이다.

진대위는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전공자가 아니면서도 전공자 이상으로
음악에 점점 더 빠져들어가는 데에는....
허나 그것을 여기에서 언급하기에는
너무나도 긴 시간이 필요하기에 일단 그 부분은 넘어가도록 하자.

명창이 되는 길은 잘 아시다시피 매우 어렵다.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명창이 세상에 몇이나 있을까.
명창이 되고 싶다고 해서 다 될 수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주변에 명창이 차고 넘칠 것이리라.
일단 타고난 '목청'이 아름다와야 하는 것은 필수조건이다.
목청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도 물론 죽어라 하고 노력하면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 사실이다.
허나 그저 그뿐이다. '꽤 잘 하는 수준' 그것으로 끝이다.
소리 자체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지 않은가.
허나 예외는 언제나 있을 수 있다. 대화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거의 매력이 없지만 복식 호습을 잘 하여 압력을 충분히
잘 가하는 경우 노래하는 목소리는 대화 소리와는 판이하게
매우 예쁜 경우가 더러 있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지만 이름은 언급을 하지 않도록 하겠다.

진대위는 선택할 여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음악의 신'이 내리는 것을 그는 경험했다.
어느 날 밤 그는 잠을 한 숨도 자지 못한 채
계속해서 노래를 부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자신이 선택해서 노래를 계속 부른 것이 아니었다.
음악의 신인 'muse'가 그에게 찾아와 끊임없이
노래하도록 만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한 것이다.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겪었다.
어찌 노래 공부하는 것이 쉽다고 하겠는가.
듣는 것은 노래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쉬운 작업이다.

진대위는 어느 날 부터인가 시를 낭송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그것도 음악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기에 하는 작업이었다. 성악 또는 가곡에 속하는
노래들은 예외없이 시를 기초로 하고 있다. 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명창이 될 꿈을 버려야 한다.

진대위는 어느 시인들의 시낭송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그들과 교류하면서 그는 시낭송할 기회를 가졌다. 물론
그 시인들 중 한 사람의 시를 낭송하는 것이었다. 낭송이
끝나자 시인 중 한 분이 그에게 노래할 것을 청했다.
약 4, 50명에 달하는 청중이 있는 자리에서 말이다.
대위는 도전이 들어올 때 거의 거절을 하지 않고 응전을
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낭송한 시들 중
한 편의 내용과 유사한 노래인 '기다리는 마음'을 불렀다.
일출봉이 나오고 월출봉이 나오는 것이 이 시와 노래의
접목점이었다. 그 노래를 끝내고 다시 섬에 관한 시를
오페라 아리아의 recitative 형식으로 즉흥적 느낌을 담아
노래했다. 그것을 부른 뒤 다시 장사익선생의 '찔레꽃'을 불렀다.
아직 불충분하나 성악적 발성을 추구하고, 성악적 소리를
가지고 있는 그에게 '찔레꽃'은 부르기에 그리 십지 않은 곡이었다.
허나 그는 도전하였다. 틀리면 어떠랴! 틀리는 부분이 있으면
다시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이 세 곡을 그는 무반주로 불렀다.
어느 카페에서 진행되는 그 시낭송 모임에는 피아노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대위 스스로 평가하기에 거의 '신 들린 것처럼'
불렀다 한다. 쉽게 말하면 좀 'over'를 했고, 너무 과잉 흥분하여
자아도취에 빠진 듯도 싶다.

그것이 월요일의 밤에 대위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노래를 할까도 생각했었지만 시간 관계상 생략하려 했던
그에게 연세가 높은 시인이 배려해 주신 것이다.

대위는 오랜 만에 어느 지인(知人)에게 전화를 하였다.
역시 노래에 미쳐 사는 사람이었다. 제2금융권 회사에서
이사로 근무하는 사람인데 음악을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교회에서 지휘자로 일하고 있고, 유명한 작곡가에게
작곡을 사사받기도 하고, 늘 성악 레슨도 받고 다른 몇 명의
성악 매니아 중의 매니아들과 준프로 그룹을 이루어 매달
정규적으로 모여 연습도 같이 하고 발표회도 자주 갖는
사람이었다. 대위가 그를 만난 것도 약 2년 전 쯤에 그런
미치광이 아마(/준프로) 성악가들의 모임에서였다. 대위에게도
정식으로 그 모임의 회원으로 가입하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그는 개인사정으로 인해 그 모임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 주 화요일에 소음악회를 하니
일찍 와요! 이야기 나누게.'

대위는 자신이 아는 이들이 음악회를 한다고 해서 기뻤다.
그들과 만난지 꽤 된데다가 음악을 공부할 기회가 생겼으니
말이다. 배움은 읽음에서 나고, 들음에서 난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대가들의 음악에 늘 경청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명창이나 대가가 될 수 없다.
모방과 끊임없는 연습 그리고 연구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독특한 경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위가 그 발표회에 가자 그날 노래할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이 그에게 노래할 것을 권했다.

'악보는 가지고 있지요?'

이들은 노래 좋아하는 이들이면 응당 언젠나 악보를
가지고 다닌다고 미리 판단을 할 정도의 열성파들이다.

'네!'

하고 말은 했지만 사실 대위는 이태리 가곡 악보 하나만을
가지고 있었다. 허나 자신이 없었다. 그 노래를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불러본 적도 없었고, 발음이 입에 잘 붙을지도 의문이었다.
음악회는 이미 시작이 되었고, 그는 계속해서 고민했다.
이미 하겠다고 말을 했으니 '못하겠는데요!'하려 하니 용기없는
겁장이처럼 스스로가 느껴졌다. 이 모임은 남성들만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여성 성악가들을 일부 초청해서 솔로도 듣고 자신들과
이중창을 하기도 한다. 주로 오페라 아리아 2중창을 하는 것이다.
마침 직업이 의사인 회원이 임긍수님 곡인 '사랑하는 마음'을 불렀다.
대위는 사실 그 곡에 익숙하지 않았다. 언젠가 배워 불러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녹음된 것을 몇 번 들어본 것은 사실이지만 딱히 어디서
그 노래를 불러 보았거나 제대로 연습한 적도 없었던 것이다. 

'도전하기로 했다!'

물론 앞에서 부른 이에겐 실례가 되는 일이기도 했지만 대위에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내 맘의 강물'이나 '목련화'와 같은
악보들을 구해보려고 노력할 수도 있었지만 이미 음악회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앞에서 그 노래를
부른 분의 순서가 끝나자 마자 그에게로 다가가 그 악보를 빌려달라고
해서 받았다. 허나 과연 반주자와 호흡을 맞출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 노래를 잘 모르거나 아예 성악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 앞에서
부르는 것이라면 조금 틀리거나 실수를 해도 어떻게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앞에서 듣고 있는 이들은 수십년간 개인 레슨을 받으면서
공부를 해온 사람들도 섞여 있는 성악 분야의 최고 매니아 그룹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게다가 대학의
전임교수인 어느 유명한 소프라노도 앉아서 듣고 있는 것이었다.

'정말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덜덜 떨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 자주 남들 앞에서
노래하다 보니 그리 크게 긴장하거나 떨지는 않게 된 것이다.

'나 가진 것을 모두 ......'

이렇게 시작되는 꽤 어려운 노래를 대위는 발성적인 문제들을
제대로 풀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런대로 소화해 내었다. 물론
자신의 표현과 발성에 대해 그다지 만족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그 어려운 상황에서 그는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유명 소프라노가 그에게 다른 데서 노래하고 있지 않으면
이 그룹에 속해 노래하는 것은 어떤가하고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이미 레슨을 받고 있으리라고 추측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화요일 밤에 그에게 벌어진 뜻밖의 상황이었다.

그 다음날에 그는 한 달에 한 번 있는 다른 시낭송회에 참석하였다.
세 번째로 참석하는 것이었다. 첫 번째 갔을 때 아는 이가
추천해서 뒷풀이 장소에서 우리 가곡을 하나 불렀었다.
그 모임의 좌장 격인 두 원로 시인 옆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자니
그에게 노래를 다시 해보라고 권하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가곡을
지난 번에 했으니 이번에는 독일 가곡이나 이태리 가곡 중에서
한 곡을 하라 했다. 고민 끝에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토스티의 'ideale (이상)'을 부르기로 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이 곡을 정확히 알지 못하리라 여겨졌다. 헌데 그곳에도 음악
전문가들이 없었던 것이 아니다. 서울대 국악과를 나온 작곡가가
그곳에 늘 참석을 하였다. 또한 작곡가인 그의 동생도 함께
있었다.

'이거 잘 못하다간 된통 욕 먹겠다!'

싶었지만 어쩌리. 틀리면 다시 배우면 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면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좋은 기회를 한 번 놓치게 되는데.
조그마한 단어장에 적은 가사를 꺼내들고 열심히 불렀다.

그것이 수요일 밤에 그에게 벌어진 상황이었다.

진대위는 일주일에 한 번 그가 진정으로 음악 선생님으로 모시는
분에게 가서 노래 공부를 한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신데
무료로 20여명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노래 공부를 시켜주시는
고마우신 분이다. 무료라고 해서 대충 가르치신다고 보면
그건 오산이다. 정말 열과 성을 다해 가르치시는 70대 후반의
이 선생님을 대위는 늘 생각하면서 산다. 자신에게 관심과
애정을 쏟고 계시는 선생님이 만족하실 만한 수준의 노래를
부르기 위해 그는 대가들의 노래를 듣고 또 듣고, 가사를
외우고 또 외우고, 길에서나 전철 속에서나 완전히 미친 놈이 되어
끊임 없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삶을 살고 있다. 일주일에 한 곡씩
대위 스스로가 정해서 그 선생님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오페라 아리아, 이태리 가곡, 우리 가곡 할 것 없이 끊임없이
곡을 바꿔가며 부른 것이다. 심지어는 그 어렵다는 바그너 오페라
아리아들까지 불러대는 만용(?)을 부리기도 했었다. 이 아름다운
목소리와 너무나도 세심한 자상함과 예의를 늘 갖추시는 선생님
모임에 나가자 갑자기 새로운 발표를 하셨다.

'이제부터 네 째주에는
전체적으로 함께 노래부르는 것은 없애고
자유로이 나와 몇 곡이든지 솔로로 부르기로 합시다!'

부를 것을 한 곡 밖에 준비하지 않았지만 대위는 그러한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더 이상 부르지 않지만
아직 시간이 남아 있다면 그는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나가서
노래할 마음이 있었다. ideale를 나가 부르자 선생님께서
세심하게 지도를 해 주셨다. 다 끝나자 '이따가 또 나와 노래해요!'
하신다. 단 조건은 앞에 부른 곡은 다시 부를 수 없는 것이었다.
자리에 앉아 다음 곡을 무엇으로 선정할까 고심했다. 우리 가곡을
부르는 것도 좋지만 가급적이면 발음이 잘 붙지는 않지만 남들
앞에서 불러보면 다음에 공부하기에 쉬울 수 있는 이태리 가곡을
하기로 했다. 그렇게 짧은 고심 끝에 선택한 것이 토스티의
'La Serenata'였다. 그 곡을 나가 부른 뒤 '아마 오늘은 이것이
마지막일 거야!'하고 생각하며 다른 이들의 노래들을 듣자니
사람들이 망설이는 틈이 생겼다.

'에이, 모르겠다. 또 나가서 부르자!
비록 욕을 바가지로 들을 망정....
이미 노래에 완전히 빠져 든 미치광이인데 뭘 따지랴....'

조두남님 곡의 '산'을 불렀다. 이 모임에서 우리 가곡을
부른 것이 그에게는 상당히 오래 되었다. 주로 오페라
아리아들을 부르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이것이 그 주 목요일에 대위에게 벌어진 일이었다.

이곳 저곳에서 노래를 하다 보면 입소문이 나는가 보다.
직접 대위의 노래를 들어본 이들 중에 어느 단체를
이끄는 여성이 있었다. 이 여성은 대위에게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자기 행사에 와서 노래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대위는 시간이 없었기에 번번히 거절을 했지만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 언젠가 한 번은 초대에 응해 주어야지!'

하며 벼르고 있었는데 마침 문학상 시상식에서 노래를 불러달라고
이 여성에게서 다시 부탁이 들어왔다.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이다
'이번에 가서 노래해 주자!'하고 결정을 하고 그 자리에 갔다.
처음에는 '산'과 '황혼의 노래'를 부르려 하다가 반주도 없고 해서
'황혼의 노래'를 '물망초 꿈꾸는...'으로 시작되는 '님이 오시는지'로
바꾸었다. '산'도 2절까지 있고, '님이 오시는지'도 2절까지 있는
그런대로 짧은 곡들이었다. 행사장은 음향이 별로 좋지 않았다.
전혀 울릴 음향적 환경이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런 경우 마이크를
사용해야 겠지만 대위는 그렇게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힘들더라도
마이크 없이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약 1백50명 정도의 청중이
들어차 있었다. '산'을 무반주로 힘겹게 부르고, '님이 오시는지'를
부르기 위해 호흡을 조절하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님이 오시는지'의
가라오케 반주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한편 기쁘기도 했지만 대위는
당황스런 마음을 감추기 어려웠다. 행사 시작하기 전에 그런 반주를
틀자는 약속도 없었고, 노래방 반주가 어떻게 나올지 예측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미 틀어 놓은 것을 어쩌리!

한, 두 군데 틀리긴 했지만 그래도 그나마 반주가 있는 것이
그를 덜 힘들게 했다.

이것이 금요일 오후의 일이었다.

토요일에 그는 또 다른 모임에 나가 뒷풀이 자리에서
소프라노 한 사람과 둘이서 2중창을 했다. '황혼의 노래'와
'목련화'를 둘이 함께 불렀다. 둘이 부르자니 솔로로 하는
것보다는 힘이 덜 들었고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것은 토요일 밤의 상황이었다.

대위는 이렇게 해서 월요일에서 토요일까지 내내
다른 사람들 앞에서, 여러 다른 상황 아래서 노래를 했다.
일요일에는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했다.
그리고 그 전 주 토요일에는 동작현충원에 있는
이승만대통령 묘소 앞에서 돌아가신 대통령을 위해
'목련화'와 '청산에 살리라'를 친구와 함께 둘이서 노래했다.
돌아가신 분을 추모하고 기쁘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
고로 토요일-일-월-화-수-목-금-토-일요일 이렇게 9일 내내
남들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이다. 솔로로, 이중창으로,
합창으로.... 다시 월요일에는 열 명정도의 사람들과 함께
남들 앞에서 '사월의 노래'를 외워서 부르게 될 것이다.
10일 내내 크고 작은 무대에서 계속 노래를 하다보니 대위가
얻은 것이 있었다.

'무대 공포증이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대위는 노래를 불러 달라고 다시 부탁을 받으면
작고, 큰 무대를 가리지 않고 계속해서 노래를 할 것이다.
연습으로 매우 유익하기 때문이다.

명창이 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허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즐거움을 가지고 끊임없이 도전하는 정신을 가진 이에게는...
히말라야의 꼭대기에 가는 이가 과연 몇인가.

중도에서 죽는 자가 많지만
여전히 그 꼭대기에 기를 쓰고 오르고 있다.

명창의 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 미친 사람들이 있다.
그들로 인해 성악은 보다 높은 산의 정상을
유지할 수 있고, 또한 그 정상을 밟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잠 못이루며 고민하고 있다.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
비록 도전하다 피 터져 죽을망정.....'


18 Comments
김형준 2007.04.02 03:57  
  '명창'을 쉽게 꿈꾸지 마시라.
발 한 번 잘 못 들였다간 빼도 박도 못하니까.
그래도 해볼만한 도박이다 싶으면 하시라.
그다지 큰 후회는 들지 않을 중독이니까.

노래하는 이의 삶은 아름답다.
자신뿐 아니라 남을 즐겁게 해주는 이는 행복하다.
'ego' 속에 완전히 빠지지 않고,
남과 함께 더불어 사는 것을 배우니까.

노래를 부르자.
나를 위해,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하모니 2007.04.02 05:22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대가들의 음악에 늘 경청하지 않는 사람은
절대로 명창이나 대가가 될 수 없다.
모방과 끊임없는 연습 그리고 연구를 통해서
자기 자신의 독특한 경지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
공감되는 말씀입니다.
명창이 되는일은 쉽지 않지만
도전하는 삶이야 말로 아름다운 삶인것을...
그런데 무대공포증은 어떻게 극복할수 있나요?
바바라 스트라이젠드도 무대공포증이 있어 10여년 넘게
무대에 서지 못했다고 하는데 저 역시 무대공포증을
극복 못하겠더라구요.
자신감이 문제이겠지요..충분한 연습을 못했거나...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은니..ㅜㅜ
교회 성가대에서 솔로로 몇번 불러본 적은 있지만
역시 힘들더군요.^^
김형준 2007.04.02 12:15  
  '무대공포증(stage fright)',
정말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종류의 공포로 부터
해방이 되는 것은요. 남들 앞에 서는 것은
언제나 부담스러운 일이지요.

예를 들어, 제가 대학생들에게 강단에서 영어를
가르칠 때에는 '무대 공포증'이 거의 생기지 않습니다.
허나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할 때에는 손과 발,
입술, 아니 온 전신이 떨리곤 했었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둘 다 남들 앞에 선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인데요. 노래를 자주 하게 되면서 점점
덜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부르는 노래를
더욱 더 잘 준비했기 때문이 아니라 경험의 문제가
아닌가 싶습니다. 공포와 싸우다 지면 아예 다시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안 하려 하겠지요.
마음 속에서 '하지마!, 하지마!'하고 어느 소리가
유혹을 해도 '아니야, 난 할 거야, 다시 도전할 거야!'
하고 용기를 내어서 일어서는 것이지요. 습관의 문제입니다.
'좀 틀리면 어때, 다음에 다시 더 잘 하면 되지'하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기회가 주어지면 잘 활용해서 쓰고,
안 주어지면 스스로 만들어 내어 노래를 부르곤 하다보면
어느 새 노래를 더 잘 하게 되어 작고 큰 무대에 서게 되는
일이 더욱 빈번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무대에
서는 것에서 큰 희열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또한 무대에
서는 사람들은 performance을 하는 것이니까 사실 다들
연극 배우와 같은 입장입니다. 일단 스스로에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불러 넣고, 몸과 마음과
영혼을 밝은 빛으로 가득 채운 채 남들 앞에 서서 공연을
하면 듣고 보는 이들이 공연자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쉽게
느낄 수 있습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하기는 그리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김형준 2007.04.03 01:49  
  누군가가 말했다.
자신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 없이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과연 그것이 진정 최선을 다 하고 있는 것인가!'

각자의 수준대로,
각자의 지식대로, 지혜대로
최선을 다 하는 수밖에는 없다.

(최고) 명창이란 목표는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비우는 자,
즉 자신의 부족을 늘 느끼고 겸손할 줄 알지만,
언제나 최고가 되기 위해 피를 흘릴 각오가 되어 있는 자에게만
상당한 수준의 깨달음과 도가 얻어지게 되는 법이다.

명창도 이러한 원리에 바탕으로 해서 낳아지는 법이다.
너도 나도 다 명창이라고 떠들지만
과연 그 중에서 진정한 명창이 몇이나 있을까.
김형준 2007.04.03 12:29  
  성악에서 세계적으로 주로 사용되는 언어는
이탈리아어, 독일어, 프랑스어 인 것 같다.
물론 영어와 러시아어로 된 노래들이 불러지기도 하지만
주로 앞서 말한 세 개의 언어로 노래 된다.
좀 더 세분하자면 이탈리아어로 된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많은 것 같고,
그 뒤를 독일어로 된 모짜르트, 슈트라우스, 바그너 등의
오페라와 lied가 따르고 있다. 프랑스어는 이 두 개의
언어에 비해서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는 듯 하다.
그렇다고 해서 가뭄에 콩 나듯한 것은 결코 아니다.

우리 가곡만을 주로 듣고, 부르는 사람들이 많다.
허나 성악의 최고 수준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최소한 이탈리아어로 된 노래들을
부르게 되는 것 같다.
김형준 2007.04.04 05:13  
  이젠 이탈리아어를 진정 열심히 배워야 겠다는
마음이 인다. 문제는 시간이다. 이태리어로 된
오페라 아리아와 가곡들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태리어 자체를 잘 아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느껴진다.
물론 대부분의 성악가들이 이태리어 자체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발음 즉 diction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이유가 이해가 되기는 한다. 허나 자신이 부르는 노래의
내용과 단어 하나 하나가 어떤 뜻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노래를 하는 것은 좀 이상한 일이라고 여겨진다.

수첩에 가사를 써서 열심히 외워 보려고 노력하지만
잘 외워지지 않는다. 발음도 쉽고, 단어들도 그다지
어렵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외국어인지라
이탈리아어가 나를 요즈음 속 썩이고 있다.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언젠가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기억하게 되리라.

빨리 이태리어가 내 삶의 편안한 일부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이종균 2007.04.04 15:53  
  무대공포증이란 게 있군요!
산악인이 극복해야할 것은 고소공포증 입니다.

세계 최고의 첼리스트로 인정반고 있는 95세의 파블로 카잘 교수가
매일 6시간씩이나 연습하는 이유를
"자신의 실력이 조금씩 나아지기 때문"이라 답한 것이나

세계적인 등산가 조지 말로리가 산에 오르는 이유를
"그것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 답한 정신은
서로 같지 않을른지요...

김박사님의 그 정신을
높이 기리며 대성하시기 빕니다.
 
김형준 2007.04.04 21:55  
  무대는 매우 냉정한 곳이라고 느껴집니다.
자신이 잘 한만큼 박수와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겠지요.
음악성이라든지 노래 실력이라든지 하는 것은
산을 오르는 것과, 기악을 하는 것,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 등과
일맥 상통한 점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당장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못한 것 같지만
타고난 소리가 있다든가 잠재된 음악성이 풍부한 경우에는
얼마나 열심히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
현재 훨씬 앞서 있는 사람들 보다 절대적으로
잘 하게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매일 6시간을 첼로 연습을 95세의 카잘 교수님이 하시는 군요.
사실 하루에 1,2 시간씩 매일 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일인데요.
그분은 정말 철인과 같은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나름대로 매일 음악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만
아직은 형편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도 꿈은 정말 높은 곳에 두고 있습니다.
크고 멋진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오늘도 애를 써 봅니다.

지난 주에는 어느 한 군데에서
비록 적은 액수이지만 공연 출연비를 받아서
프로 신고를 했습니다.
과연 얼마나 비싼 목소리가 될 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이선생님,
방문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난 주 내마노 가곡 모임 활동 사진에서
선생님의 모습을 뵈었습니다.

황선생님께 안부 전해 주십시오.
김형준 2007.04.05 10:29  
  아직도 '표현의 자유'를 얻지 못했다.
발성, 호흡, 발음, 언어 등의 한계에서
벗어나야 나만의 표현을 하기가 수월한 법인데
아직도 이러한 기본적인 것들에 묶여
늘 고민하고 있으니 말이다.

노랫말, 즉 시를 정확히 분석하고
나름대로의 해석을 만들어야
내가 원하는 표현의 기본에 들어섰다고 보여지는데
그것 또한 외국어라는 언어 장벽에 막혀
제대로 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태이다.

그냥 대충하는 것은 명인이 가야할 길이 아니다.
베르곤지, 디 스테파노, 코렐리, 탈리아비니 등은
이탈리아인이니까 이탈리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므로
이탈리아어로 표현이 자유롭게 될 수 있고,
너는 한국인이니까 이탈리아어로 표현이 부자연스러울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그러한 한계를 아무리 힘들다 해도 훌쩍 뛰어 넘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대가들과 함께
무한 경쟁을 할 차비를 갖추고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부담이 되어도 어쩔 수가 없다.
그것이 원하는 길이라면.....
김형준 2007.04.06 18:10  
  서서히 옳바른 소리의 길을 찾아나가고 있다.
내 혼자서는 그 길을 찾는 것이 불가능하다.
나를 사랑하고 아껴 주시는 선생님께서 계시기 때문에
실현이 되어 가고 있는 듯 하다.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하리라는 것은
그 분을 만나 뵐 때까지 잘 알지 못했었다.

나는 다른 이들에게
좋은 스승이 되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해야 겠다.
김형준 2007.04.06 18:40  
  나의 선생님께서 나를 위해 시간을 많이 주셨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뻔히 아시면서도 말이다.
너무나도 고마왔다. 어떻게 보답을 하면 될까.
더 열심히 노래 공부를 해서 그분이 만족하시는 수준에
올라가는 길이 유일한 보답의 길이 아닐까.
또한 내가 더욱 더 노래를 잘 하게 되어
다른 많은 이들 앞에 가서 노래를 하며,
나의 선생님께 대해 그분들 앞에서 감사를 표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

너무나도 고마운 분을 만났다!
김형준 2007.04.07 03:41  
  같은 곡이라도 누가 부르는 가에 따라 많은 차이가 있다.
오페라 'Tosca'에 나오는 'Recondita Armonia'나
오페라 '사랑의 묘약'에 나오는 'Una Furtiva Lagrima' 등을
세계적인 여러 대가의 소리로 들으면서 서로 유사한 점과
다른 점들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해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끊임없이 듣고 또 들어서 나의 뇌세포들이 무의식적으로
아리아, 가곡 등에 자동적으로 반응할 수 있도록 하려 한다.
아마도 수 천 번씩은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것도
의식이 완전히 깨어있는 상태로 말이다. 그저 스쳐지나가듯이
듣는 것은 아무리 반복을 해보았자 그다지 큰 효과가 나지
않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서편제'에 이어 '천녁학'이 명장 임권택감독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다. 국악적 명창의 길과 서양 성악적 명창의 길이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믿는다.

자, 오늘도 다시 명창의 꿈을 안고 길을 떠나자!
김형준 2007.04.08 03:56  
  Ferrucio Tagliavini는 Lezzero Tenore의 전형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고 봐야 겠다.
나는 렛쩨로가 아니라고 판단이 된다.
탈리아비니와 같은 발성을 하고 싶지도 아니한 데다
나의 소리와는 상당히 다른 음색을 가지고 있다고 느껴진다.

차라리 베르곤지나 비욜링 또는 겟다와 같은 발성을 하고 싶다.
그들의 소리와 내 소리가 유사한 지는 아직도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허나 그들의 발성과 호흡이 내게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지고 있다.

나의 선생님도 Carlo Bergonzi의 소리를
많이 들어보라고 권면해 주셨다.
그가 소리를 잘 띄우고, 강제적으로 힘을 목에 주어
고음을 내지 아니하고 자연스럽게 낸다고 말씀해주셨다.
김형준 2007.04.11 06:37  
  다시 placido domingo의 소리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그 사람 때문에 오페라 아리아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었다.
단 한 번도 직접 도밍고의 공연을 본 적은 없지만
그의 소리를 끊임없이 듣고 배우고 즐기고 있다.
내가 LA에서 살고 있을 때 그는 LA Opera의 상임 감독이었다.
그저 그것 뿐이다. 내가 오페라를 보러 갈 여유가
그때 전혀 없었거니와 그러한 쟝르의 예술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질 수 없었고, 또한 그것은 귀족의
음악이라 하여 약간은 주눅이 들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젠 오페라가 그저 평범하게 느껴진다.
죽을 때까지 사랑하고 아끼고 듣고 노래 부를테지만
오페라의 무게에 눌려 낑낑 거리지 않을 정도의
수준은 된 것 같다.

도밍고선생님에게 감사드린다.
덕분에 상당히 고상한 취미 및 삶의 영역을 구축하게 되어서...
김형준 2007.04.13 03:43  
  테너이지만 그저 테너가 아니다.
인간이 가진 악기로서,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담은 표현을 하는 예술가로서
인간, 자연, 우주가 가진 보편적 가치를 다 담을 수 있는
최고조의 작품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테너라는 한계에 묶여 있어서는 아니 됨을 절실히 깨닫고 있다.

소프라노는 무엇이냐,
메쪼는 무엇이고 알토, 콘트랄토는 무엇인가.
테너는 무엇이고, 바리톤, 베이스는 또 무엔가.
보이 소프라노는 무엇이고 카운터 테너는 무엇인가.

주어진 성(性: gender)에 상관 없이
모든 생명체 속에 양과 음이 각각 다른 비율로
함께 담겨 있다면 남자는 여자를 여자는 남자를 담고 있다.
테너라 할지라도 소프라노의 성질을 안에 일부 품고 있다.
보다 훌륭한 표현을 이루어 내기 위해서
조수미님과 같은 콜로라투라가 고음에서 뿜어내는
우아하고 고운 음의 색깔과 부드러움을 테너도
배워 냅다 지르려 하지 아니하고
보다 절제되고 투명하면 고운 선을 이루어 낼 필요가 있다.

조수미님과 테발디, 슈바츠코프, 바르톨리와 같은
대가들의 소리를 끊임없이 들으며
소리에 남녀, 플러스 마이너스, 냉온, 명암 그리고
그것들의 중간 내지는 다양한 차이들을 모두 통합하는
우주적 가치를 담은 균형잡힌 소리의 경지에 도달하고 싶다.
김형준 2007.04.14 12:04  
  다시금 카운터테너 발성에 도전하고 있다.
반드시 카운터네너가 되겠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러한 발성법을 제대로 터득함으로써
정상적인 테너 발성을 하는데 있어서
고음에 가서 보다 부드럽고 자유로운 발성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카운터테너로서도 조만간 노래하며 다니고 싶다.
김형준 2007.04.16 10:33  
  신승훈님의 소리를 들었다.
조용필님의 소리도.
임형주님도 듣고, 안치환님도 듣고....
소리의 길을 제대로 찾아 내기 위해서는
누구에게서도 배울 마음이 섰다.
쟝르를 구분하고, 이것 저것 따지다 보면
제대로 소리를 배울 수가 없는 것이다.

배울 수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김형준 2007.04.16 12:41  
  너무 많이 듣고 노래 부르다 보면
심신과 영혼이 지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외국어 공부와 다른 분야의
공부에 잠시 신경을 더 씀으로 인해서
휴식을 취하는 때가 있다.
그리하여 다시 마음이 비워지고, 힘이 생기면
그때부터 더욱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듣곤 한다.

서서히 익어야 제대로 된 맛을 낼 수가 있는 법이다.
그것이 신이 우리에게 주신 자연의 법칙이며 순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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