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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고추는 누가 따 가버렸느냐?

바다 24 1549
네 고추는 누가 따 가버렸느냐?

                          바다/박원자



텃밭에 심어놓은 고추가 이번 장마에도 꿋꿋이 잘 견뎌내고 이제는 가지마다 주렁주렁 빨갛게 익어 어서 오라한다. 그 연약한 가지에 몇 십 개씩 열린 탐스러운 고추를 보며 늘 창조주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어찌하여 싹이 돋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때가 되면 자기를 다 내어주는가...

잘 익은 고추를 따면서 농부들이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면서도 이 일을 쉽게 버리지 못하고 해마다 더욱 열심히 일하는지 바로 이런 기쁨 때문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었다. 고추농사를 지으면서  본가지는 어느 것이며  곁가지로 난 것들은 왜 다 따주어야 하는지도 이번에 배워 알게 되었다.

빨갛게 익은 고추를 바구니 가득 따다가 문득 어린 시절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어렸을 적 동네 어른들에게 곧잘 들었던 질문

"원자야,  네 고추는 누가 따 가버렸느냐?"
 "정식이가 따 갔어요."
 
언제나 죄 없는 두 살 위의 뒷집정식이가 범인이 되곤 하였다
너만 아들이 되었어도...
고추와 아들...
귀에 못이 밝힐 정도로 듣곤 하여 어린 아이였지만 은연중에 사내아이에 대한 동경이 싹트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을 땐 쉬하는 모습을 흉내 내어 보기도 하였다.

 우리어머닌 늦은 나이 마흔 한 살에  날 세상에 내어 놓을 때까지 이번에도 딸이면 아무도 몰래 들밭에서 낳아 감쪽같이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는데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얼마나 컸으면 막 태어난 죄 없는 어린 생명을 버리고자 하셨을까?

어머닌 그 때까지 내리 딸만 넷을 낳으셨고 그 당시 아들이 없다는 이유 또 아버지의 바람끼까지 합해 이미 작은 부인을 얻어 두 아들을 두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날 임신하였으니 심리적 불안감이 얼마나 크셨을까... 산통이 오자 차마 들밭에는 못가시고 안방에서 낳았는데 딸이어서 속치마로 둘둘 말아 윗목에 놓아두셨다고. 근데 두 눈을 말똥말똥 뜨고 바라보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시는데 아랫집에 사는 작은 어머니가 큰 오빠와 함께 왔는데 큰오빠가 아기를 풀어놓자고... 해서 차마 못 버리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키우셨다고 한다.

  노후에 우리 어머닌 큰언니네가 모셨는데 큰언니는 나와 스물 한 살의 차이가 나 마치 친정어머니 같은 분으로 큰언니처럼 효녀도 없건만 내가 아들이면 우리어머니를 이렇게 모시겠느냐 나는 동생들에게 죄인이라고 죄송해 했고 우리어머닌 딸집에 사시는 당신의 처지가 사위에게 늘 죄송한 마음으로 건강하실 땐 언니집의 상머슴처럼 일을 해주시며 지금이라도 아들을 낳을 수만 있다면 낳겠다고 눈물 반 한숨 반으로 사셨던 우리어머니.. 

하마터면 바리데기가 될 뻔한 내 막내딸이 이렇게 효도를 한다고 단 한 번도 효도를 해본 적이 없는데 몇 푼의 용돈을 어쩌다 한 번 드리면 하시던 말씀이 생생이 귓전을 맴돈다 .

 빨갛게 익은 고추 밭에 무형의 향기로 오신 나의 어머니...
 어머니가 살아계시면 금년에 태양초고추로 담근 겨울김장김치와
고추장을 드리련만...
2006.8.4


우리 큰언니는 실제로 군청에서 주는 효도상을 수상하였음

24 Comments
수패인 2006.08.04 12:12  
  바다님~오랫만 이어유.. 정식이가 고추 잘 따갔죠. 요즘같은 더위엔 그넘의
고추 걸그적 거리기만 했지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유.ㅠㅠㅠ
옛날 어르신들은 요즘같으면 눈탱이 밤탱이 될 짓 참 많이 했어요?
아들 없다고 딴살림 이라고라...
몇년전에 전북남원 사매에 사시는 큰고모님의 아들(저와는 띠동갑으로 12년위)
께서 제게 아들이 없으니 튼튼하고 참한 색시 소개해 줄거냐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서 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뒤로 아무에게도 안알리고 친구녀석 비뇨기과에서 점심때 짤라버리고 왔는데
하고나서 마누라 한테 그얘길 했더니 마음놓고 바람필라고 짤랐냐며 싫지않은
눈빛으로 눈을 흘기더군요.
요즘같으면 딸둘만 있는게 복덩어리 입니다.복덩어리.ㅎㅎㅎ 남의 대쪽같은
고추,두개씩이나 훔쳐오니까요.
건강한 여름 보내세요. 주절대다 보니까 댓글이 쥔글(주인의 글)이 되버렸네요.
김경선 2006.08.04 12:16  
  하마터면 내마노의 보배 박시인님을
만나지 못할 큰 실수를 범할 뻔도 했곘네요.
'튼튼하게만 자라다오!"
바다 2006.08.04 13:13  
  수패인님!
ㅎ ㅎ
정식이가 잘 따 갔네요
아내사랑 딸 사랑
 넘쳐나서 보기에 좋습니다.
요즘은 딸만 낳은 분들 위세가 아주 당당해요.
남의 고추 홈쳐오니까요 ㅎ ㅎ
덕분에 더위 잠깐 잊었네요.
건강한 여름 되셔요^^*
sarah* 2006.08.04 13:14  
  바다시인님...
불과 한 세대전 일인데도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남아선호라는 족쇄때문에 눈물로 살아야 했던 이 땅의 많은 어머니와 딸들 이야기가  어릴 적에 느꼈던 성차별에 대한 억울함이 새삼 떠오르는군요..... 절대 극복하지 못할 장벽처럼 높았었는데.... 이 즈음에는 변해도 한참 변했죠^^  아들보다는 딸이, 그것도 도전의식 강한 씩씩한 딸이 훨 보배처럼 여겨지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바다님~~  혹, " 바리데기 " 설화 들어 보셨나요?  딸 많은 집 일곱째 공주가 부모로 부터 버려졌는데(죽지 않고 살아) 나중에 부모가 중병 들었을 때 먼 나라에서 귀한 약을 구해다 살리고 효도 한다는......      아마도 바다님 기억에 남았던 설화일 듯 싶습니다^^^     
바다님  고추 많이 수확하셔서 맛있는 김장 고추장 담그셔요~~~
바다 2006.08.04 13:14  
  김원장님!
네 튼튼하게만 잘 자라다오 입니다.
그래서 잘 자랐네요. ㅎ ㅎ
 김 원장님도 더운 여름 건강하세요^^*
 
단암 2006.08.04 13:17  
  선생님같은 막내 많았지요. 대개 그런 분들이 부모님을 즐겁게 해 드리면서, 스스로 알아서 구김살 없이 잘 자라고, 효도하고 ..... 저를 보면 고추 그거 별거 아닌데.     
바다 2006.08.04 13:19  
  sarah님!
처음으로 인사 나눕니다.
사라님은 세례명이신가요?
 바리데기 설화... 알고 있어요
근데 바리데기를 버리데기로 알았다 방금 전에 수정했었거든요. ㅎㅎ

  제 반 아이들도 딸형제만 있는 아이들이 제법 많아요
격세지감을 느끼지요.

  사라님!
 이렇게 만나보게 되어 기쁩니다.
이후엘랑 보면 눈인사 보내는 것 잊지 않으렵니다.
지금 매미소리 요란합니다.
 더운 여름 잘 이겨내셔요 
감사합니다.^^*
바다 2006.08.04 13:21  
  단암님!
ㅎㅎ
잘 지내시는지요?
 고추밭에서 만난 어머니로 인해 잠시 더위를 잊어봅니다.
 많이 덥습니다. 팥빙수라도 한 그릇 하시지요. ㅎㅎ
sarah* 2006.08.04 13:50  
  바다님~~~
인사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    ㅎㅎ 제가 조금만 기다렸더라면 좋았을텐데요오늘도 정말 덥기는 하지만....그래도 저는 긴 장마에 지쳐서, 햇살 뜨거워도 맑은날이 좋으네요^^      바다님의 고추도^^ 더 예쁘게 빨갛게 색이 들을테고요....
하지만 이 여름도 어느 새 힘이 진하면....  바다시인님의  "가을엔 코스모스 되어"를 부르고 싶은 아름다운 가을이....오고야 말겠지요^^^
가곡교실에서 꼭  만나뵈어요~~~
해야로비 2006.08.04 13:50  
  아항~~ 저의집도 남의 고추 두개 훔쳐 올 수는 있군요. ㅎㅎ
바다 2006.08.04 14:38  
  해야로비님도 좋겠어요.
고추를 훔쳐 올 수 있으니... ㅎㅎ
해야님도 팥빙수 한 그릇 택배로 보냅니다.
바다 2006.08.04 15:17  
  사라님!
감사합니다
가곡교실에 가면 뵈어야지요.
근데 제가 모르면 먼저 인사해 주실거죠? ㅎㅎ
지금 고추 잘 마르고 있어요.
가을엔 코스모스가 되어도 기억해 주시고...
정말 반갑습니다.
자~ 악수 ㅎ ㅎ
그리고 팥빙수 한 그릇도 드립니다. ㅎㅎ
고광덕 2006.08.04 18:55  
  우리 부모님 세대는 그러했죠.
다음 세대는 어찌 변할 지 궁금합니다.
지난 주 광주에 갔다가 능주, 이양을 거쳐 지석천에서 놀다 왔답니다.
계곡의 시원함을 만끽하고 돌아오면서 해변보다 강이 좋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하면서 왔죠.
깨끗한 시골 동네에도 요즘엔 새롭게 지은 집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 전원주택에 대한 제 기대를 자꾸만 키워주네요...
고추 잘 말려 놓으세요, 저도 훔쳐올 수 있게...
유랑인 2006.08.04 19:07  
  크크~~  우리 두놈의 고추는 누가 따갈라나~~  ㅎㅎ
건사 잘하고 잘 여문 고추를 주신 모든 것에 감사하는
참한 색시가 따가면 좋으련만~~  ㅋㅋ

바다님~~  시원하게 잘지내시쥬?
바다 2006.08.05 00:22  
  고광덕님!
광주에 다녀가셨군요.이양 지석천이 어디에 있나요?
화순의 물이 아주 좋지요.
이양의 송석정에 다녀오셨나요?
 예전에 시골 근무할 때  이양쪽에서 전직원이 물놀이 갔는데
남자 선생님들이 팬티만 입고 수영하던 모습이 떠오르네요. ㅎ
바다 2006.08.05 00:25  
  유랑인님!
 ㅎㅎ
 두 아들에게 고추 도둑맞지 않도록 잘 지키라 하세요
아니 은근히 도둑이 가져가길 바라는지도 모르겠군요. ㅎㅎ
 시원하게 잘 보내고 있습니다 ㅎ ㅎ
 여름을 시원하게 잘 보내세요.
돈 아까워 하지 말고 팥빙수랑 사먹음서 ㅎ ㅎ
바 위 2006.08.05 05:38  
  풋 고추 큰것이가  덜 맵고 맞있더마

빛 좋고 달고매운 놈야 처년 모르지

어머님 신념이 맞소 천지조화 누편드랴


한 집안  자매들도
여자보다남자로 태여 어울릴이 있고
남자 보다 여자 태여 맞을 사람있다
바다 2006.08.05 08:20  
  권운 선생님!
더위에 잘 지내시는지요?
언제나 멋진 글로 화답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셔요^^*
신은희 2006.08.05 13:12  
  바다님은 딸부자였군요.
저는 오빠가 두명이 있는 가운데 딸로 태어나 만인의 축복에서
자랐습니다.지금도 여동생 일이라면 맨발로 뛰어오지요.
그런데 저는 여자형제들이 없어서 항상 혼자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형제가 많아서  부럽습니다....^^
노을 2006.08.05 17:32  
  앗, 바다님에게 그런 출생의 비밀이?
서슴없이 혐의를 씌웠던 그 뒷집 정식이가 저는 왜 궁금할까요.
이상하게 그런 편견속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들이 더 알차고
큰 재목이 되는 걸 많이 봤는데 바다님도 그러시네요.
고추에 대한 두 가지 의미 때문에 저는 고추를 좋아하면서 섣불리
'난 고추가 좋아' 하고 말을 못한답니다. ㅎㅎㅎ 
바다 2006.08.05 17:53  
  신은희님!
저는 언니들이 다 연세가 많이 들어 어렸을 적부터
언니들하고는 별 교류가 없었지요
그 대신 조카들하고 놀았어요.
왕초(?)노릇을 쬐끔하면서..

큰언니네 큰딸하고 제가 동갑인데 그 집 아들들이 엄마처럼 젊은 제게
이모할머니라고 부르기가 곤란한지 엄마 원자이모한테 뭐라고 부를까?
저도 아직 새파랗게 젊은데 할머니라는 호칭을 듣고 싶지 않아서
그냥 원자이모라고 해. 알았지?
 반 협박(?)을 하니 그 아이들이 그렇게 불렀답니다.
이모라고 ㅎ ㅎ
바다 2006.08.05 18:15  
  노을님!
제가 그런 질문을 수없이 받았던 때는 아마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인 3~6살 정도의 일이 아니었나 싶네요.
뒷집 정식이는 저와 초등학교를 같이 다녔고 같은 초등동창과
일찍 결혼하여 서울에 살고 있는데 지금 아주 생활이 어렵다고 전해 들었지요,
만나본 지 아주 오래 되었어요 .
언젠가 여름 소주 되병을 두 병 들고 시골 자기 부모님을 찾아보러 온
모습이 가물가물합니다.

고추가 자꾸 다른 의미로 쓰이니 ㅎㅎㅎ
뭉게구름 2006.08.11 18:31  
  바다님!
 고추는 불볕 더위라야 더욱 붉게 익는 진리를 깨닫게 됩니다.

 빨갛게 익은 고추 밭에 무형의 향기로 오신 나의 어머니...
 애틋한 사모곡으로 들려오는 감동이 가슴 뭉클함을 느낍니다.
 저도 몇년전 <어머니의 그림자>란 수필집을 낸 적이 있습니다.
 요즈음도 어머님 생각이 나면 선산을 찾곤 하지요. 이 세상에
 어머님보다  훌륭한 스승은 어디에도 없지요.
바다 2006.08.11 18:39  
  교수님!
저도 그 수필집 보내주셔서 읽었어요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영원한 그리움의 원천이지요.
어머니 가장 훌륭한 스승이셨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있습니다
어머니..많이 그립습니다
. 이제야 사모곡을 부르는 막내딸 어머니도 보고 싶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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