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창고
마음의 창고
내 나이 서른 살을 목전에 두었던 때였을 것이다
20 대를 마감해 가던 그 해 가을, 필자는 이혼이라는 아픔을 치유
하기 위해서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었다
반듯한 결과 보다, 시행착오적인 과정만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하
게 머리를 디밀어 올렸던 필자의 20 대…연애 3 년, 결혼생활 1 년
만에 쫑을 낸 서툰 필자의 인생사…꿈을 꾸던 시기에서 인생사의
쓰디 쓴 맛을 겪어야만 하는 시기로 전진해 가야 했던 그 아픈 시
절에…필자는 멜랑꼬리한 마음을 가다듬지 못하고 결국 무전여행
이라는 현실도피로를 택한 후 비행기를 타고 말았었다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필자는 나름 대로 현실 타개책을 세
워 보겠다는 각오와 다짐으로 떠난 무전 여행이었으나 그것은 분
명 현실 도피였던 것이다
아무튼, 필자는 비행기 표를 끊기 위해서 통장과 지갑을 모두 털어
야 했었는데, 정말이지 비행기 표를 끊고 보니 땡전 한 푼 없는 알
거지임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혼을 하면서 딸아이의 용품과 내 옷가지를 제외한 그 모든 것을
처가에 주었기 때문이다
딱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필자는 주섬 주섬 여행 가
방을 챙기기 시작했는데, 나 자신도 모르게 오기가 발동하여 여행
가방을 내던지고 신촌역 부근에서 술을 퍼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모텔에서 깨어나 보니 이미 비행기 출발 시간이 임박해 오
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때부터 필자는 첫 해외여행이라는 미증유의 복병과 끊임없이
싸움을 해야 했는데,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던 필자는 비행기 표
가 너무 아까워서 무조건 비행기를 타고 보자는 식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여행 가방은 집에 놓아 두고서 말이다
(여권발급도 자유롭지 않았던 그 당시의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한
다면, 이러한 해외여행의 해프닝은 필자만의 몫은 아니었을지 모
르지만)
비행기 표는 딜레이 시키면 그만인 것을,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
이 없었던 필자에게는 고생문이 훤한 출발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술이 덜깬 채 머나 먼 여행길을 휘돌아 다니다가 어느덧 홍
콩에 들르게 되었는데, 저간에 갈아 입을 옷 하나 없이 겪어야 했
었던 수 많은 이야기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홍콩에서 겪었던 재
미난 이야기 거리가 하나 있어서 그것부터 여기 소개해 보기로 하
겠다
무전여행이란 것이 그렇듯, 변변하게 갈아 입을 옷 하나 없이 다니
던 필자는 그야 말로 입성과 먹성이 말이 아니었는데, 다행스럽게
도 홍콩 주재 모 종합상사의 친구와 통화를 한 후 호텔에 투숙하
게 되었고, 며칠은 정말 사막 속의 오아시스를 만난듯 호사를 하였
다
갈 곳이 없는 필자에게 낯선 여행지에서 주어진 그 호텔방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오아시스 그 자체였다
스케줄을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데로 휘돌아 다니는 무전여행이
그러한 것처럼, 필자를 반겨 줄 이도, 필자가 찾아갈 곳도 없는 침
사추이에서 며칠을 보낸 후, 필자는 더 이상 친구에게 신세를 질
수 없어서 호텔 로비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
고, 식사는 단체여행객들이 식사를 할 때 슬쩍 함께 들어가서 조
식 부폐를 실컷 먹고, 잠은 주로 호텔 로비 의자에 앉아서 자고, 샤
워는 방금 체크아웃 된 룸으로 들어가서 재빨리 하고 나오곤 했었
는데, 그 때 그 짜릿한 쾌감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될 정도로 필
자를 흥분케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 뿐, 호텔 지배인이 나의 숙식 해결 방법을 알
아내곤 저녁 때만 되면 햄버거 집으로 데려 가서 맛없는 햄버거를
사 주려고 하는 것이다
두어 번 그렇게 햄버그를 얻어 먹으니 도무지 미안해서 그곳 호텔
에 머무를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필자는 거리의 부랑자처럼 지
붕 없는 곳을 하염없이 거닐게 되었다
그렇게 이틀쯤 굶고 다녔을까… 자정도 훌쩍 넘긴 시각에 필자를
딱하게 바라보던 교포 아주머니 한 분이 나의 손을 잡아 끄는 것
이 아닌가
필자는 염치 불구하고 그 교포 아주머니를 쫓아 가게 되었는데, 때
마침 빈 방이 없었는지 필자는 창고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전등도 꺼진 컴컴한 창고에서 매트리스 위에 몸을 눕혔지만, 그 창
고는 필자에게 호텔방처럼, 애인의 품처럼, 아늑하기만 했다
그렇게 실컷 잠을 잔 후 일어나 보니 모텔은 텅 비어 있었고, 필자
가 잠을 잔 창고 속은 그야말로 온갖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배는 고프고, 샤워부터 하고 싶었으나, 불청객인 필자 처지로서는
뭔가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하게 되었고, 창고 속에 어지럽
게 널려 있는 잡동사니들을 깨끗하게 정리하게 되었는데…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그 교포 아주머니는 샌드위치와 주스를 들
고서 빙긋이 웃고 있지 않은가
염치 불구하고 필자는 그 교포 아주머니 숙소를 구경하면서 샌드
위치도 먹게 되었고, 그 교포 아주머니가 주인이 아니고 종업원이
란 사실을 알고 더욱더 미안해 했었는데,
그러나 필자가 정말 미안해 할 일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갑자기 주인 할머니께서 창고 속의 잡동사니 중에 이것 저것 찾아
오라고 하였고, 아주머니는 위치가 달라진 잡동사니들을 찾느라
고 온통 먼지 범벅이 됐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필자는 주린 배를 채운 후에 느긋하게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필자는 그곳에서 며칠간 아무런 대가
도 바라지 않고 일을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고, 그 덕분
에 필자는 며칠간 숙식 걱정은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필자가 왜 이처럼 구차한 이야기를 디테일 하게 써 내려 왔는가 하
면, 필자는 바로 그 부분에서 필자의 인생 지표를 하나 얻었기 때
문이다
짤막한 결론이지만, 잔잔한 감동이 일렁이는 필자의 인생 지표 하
나를 그렇게 갑자기 얻은 후, 필자는 미련없이 무전여행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생각을 했었다. 언젠가는 이 잔잔한 감동을
꼭 수필집에 담겠노라고…
사막에서 며칠씩 헤매어 보지 않은 사람은 사막의 그 삭막함과 쓸
쓸함을 모른다
무전여행을 하면서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 낮선 곳을 방황해 보
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서러움에 관해
서…
그리고, 민족적 자존심 때문에 구걸조차 할 수 없는 그 배고픔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수 많은 얼굴들 속의 아리송한
미소에 관해서…
그러한 와중에 필자는 컴컴한 창고 속에서 포근하게 잠을 자게 되
었고, 그렇게 잠이 드는 그 순간에는 그곳이 호텔방 보다도 더 아
늑하게 느껴졌었다
비록, 그 방이 창고인 줄 모르고 잠이 들었으나, 그렇게 잠이 든 필
자를 바라보면서 미안해 하였을 그 종업원 아주머니를 생각해 보
면, 필자에게는 그 잠자리가 더욱더 값지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
진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다고, 필자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도 전에 온갖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고, 그 덕분에 그 아주머니는 먼
지 속 창고를 헤집고 다니면서 할머니의 호령을 감당해야 하지 않
았던가
인생사란 것이 때로는 호의가 악의가 될 수도 있고, 악의가 때로
는 호의가 될 수도 있음을 필자는 그제서야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 같았다
며칠 굶은 사람은 눈에 뵈는 게 없어서 조폭이 먹고 있는 짜장면
그릇에 젖가락을 디밀게 되고, 쥐도 몰리면 고양이한테 뎀빈다고
하지 않던가
갈 곳이 없는 사람들, 갈 곳이 없어서 방황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은 컴컴한 창고조차 홀륭한 쉼터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컴컴한 어둠은 이내 걷히게 되고, 누군가는 그 잡동사니
를 정리해야만 하는 것을…
그것이 나중에 악의가 될지 호의가 될지 당장은 모르겠으나, 이왕
이면 불청객이 정리하는 것 보다는 주인이 정리하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감동이 되지 않을까?
여권발급도 자유롭지 않았던 그 때 그 시절의 우리나라 현실을 감
안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지구촌 가족으로서의 한국적
구성원 노릇이 얼마나 초보적이고 서툰 메너 속에 살고 있는지 고
민해야 한다
마음으로 우러난 호의라고 하여서 무조건 호의로만 상대에게 받
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호의가 악의로 돌변하게 되
는 절묘한 상황 속으로 빠져든다면, 그 또한 결코 세련된 의식의
행위는 아닐 것이다
그러한 관점으로 필자가 얻어 먹은 햄버그 사건을 고민해 보면 우
리에게 작지 않은 교훈을 주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홍콩이란 나라가 왜 그리 관광객이 많은 곳인
지, 홍콩이란 나라의 관광객에 대한 메너가 얼마나 세련되어 있는
지 짐작하고도 남는 사건이었다
골치 아픈 필자를 그냥 내쫓기 보다는 싸구려 햄버그를 사주면서
미안해 하도록 만드는 그 세련된 메너에 필자는 쫓겨난다는 마음
하나 먹지 못하고 쫓겨나지 않았는가
물론, 그 호텔 지배인에게는 나름의 지구촌 한가족적인 우정도 조
금은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 당시의 필자는 젊고, 매력 있는 인물이었을 터이니 말이
다
그러나, 이 햄버그 사건과 교포 아주머니의 마음창고 사건을 돌이
켜 보면, 필자가 겪은 수혜적 정서의 주관적 관점 보다는 객관적
인 관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호의를 베푼 것이 호의가 되든 악의가 되든, 얼마나 깔끔한 정서
로 가슴에 남는 가가 더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한국인은 한국인을 바라보면서 뭔가를 느끼려고 하는 지구촌 가
족들에게 지금 어떠한 세련된 메너를 보여 주고 있을까?
한국인을 느끼려고 하는 지구촌 가족들은 지친이들도 있을 수 있
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조그만 배려에 고마워
할 줄 아는 세련된 메너의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다만, 그들에게 한국인은 지금 어떻게 느껴지게 할 것인가를 고민
하지 않는 한국인이 있을 뿐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는 며칠 신세를 지게 된 그 교포 아주머니
를 생각하면서 고마워 하지 않는가?
이십 년이나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는 햄버그를 건네 주던
그 백안의 메니저를 고마워 하지 않는가?
한국인은 지금 어느 곳의 누구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
일까?
우공이산의 즐거운산책로에서…
문화게릴라 시인 박재곤
내 나이 서른 살을 목전에 두었던 때였을 것이다
20 대를 마감해 가던 그 해 가을, 필자는 이혼이라는 아픔을 치유
하기 위해서 어디론가 떠나야만 했었다
반듯한 결과 보다, 시행착오적인 과정만 콩나물 시루처럼 빼곡하
게 머리를 디밀어 올렸던 필자의 20 대…연애 3 년, 결혼생활 1 년
만에 쫑을 낸 서툰 필자의 인생사…꿈을 꾸던 시기에서 인생사의
쓰디 쓴 맛을 겪어야만 하는 시기로 전진해 가야 했던 그 아픈 시
절에…필자는 멜랑꼬리한 마음을 가다듬지 못하고 결국 무전여행
이라는 현실도피로를 택한 후 비행기를 타고 말았었다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필자는 나름 대로 현실 타개책을 세
워 보겠다는 각오와 다짐으로 떠난 무전 여행이었으나 그것은 분
명 현실 도피였던 것이다
아무튼, 필자는 비행기 표를 끊기 위해서 통장과 지갑을 모두 털어
야 했었는데, 정말이지 비행기 표를 끊고 보니 땡전 한 푼 없는 알
거지임을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혼을 하면서 딸아이의 용품과 내 옷가지를 제외한 그 모든 것을
처가에 주었기 때문이다
딱하기 그지없는 자신을 되돌아 보면서 필자는 주섬 주섬 여행 가
방을 챙기기 시작했는데, 나 자신도 모르게 오기가 발동하여 여행
가방을 내던지고 신촌역 부근에서 술을 퍼마시게 되었다
그리고, 모텔에서 깨어나 보니 이미 비행기 출발 시간이 임박해 오
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때부터 필자는 첫 해외여행이라는 미증유의 복병과 끊임없이
싸움을 해야 했는데, 해외여행 경험이 전혀 없던 필자는 비행기 표
가 너무 아까워서 무조건 비행기를 타고 보자는 식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것이다
여행 가방은 집에 놓아 두고서 말이다
(여권발급도 자유롭지 않았던 그 당시의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한
다면, 이러한 해외여행의 해프닝은 필자만의 몫은 아니었을지 모
르지만)
비행기 표는 딜레이 시키면 그만인 것을, 이것 저것 생각할 겨를
이 없었던 필자에게는 고생문이 훤한 출발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술이 덜깬 채 머나 먼 여행길을 휘돌아 다니다가 어느덧 홍
콩에 들르게 되었는데, 저간에 갈아 입을 옷 하나 없이 겪어야 했
었던 수 많은 이야기들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홍콩에서 겪었던 재
미난 이야기 거리가 하나 있어서 그것부터 여기 소개해 보기로 하
겠다
무전여행이란 것이 그렇듯, 변변하게 갈아 입을 옷 하나 없이 다니
던 필자는 그야 말로 입성과 먹성이 말이 아니었는데, 다행스럽게
도 홍콩 주재 모 종합상사의 친구와 통화를 한 후 호텔에 투숙하
게 되었고, 며칠은 정말 사막 속의 오아시스를 만난듯 호사를 하였
다
갈 곳이 없는 필자에게 낯선 여행지에서 주어진 그 호텔방은 지금
생각해 보아도 오아시스 그 자체였다
스케줄을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데로 휘돌아 다니는 무전여행이
그러한 것처럼, 필자를 반겨 줄 이도, 필자가 찾아갈 곳도 없는 침
사추이에서 며칠을 보낸 후, 필자는 더 이상 친구에게 신세를 질
수 없어서 호텔 로비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었
고, 식사는 단체여행객들이 식사를 할 때 슬쩍 함께 들어가서 조
식 부폐를 실컷 먹고, 잠은 주로 호텔 로비 의자에 앉아서 자고, 샤
워는 방금 체크아웃 된 룸으로 들어가서 재빨리 하고 나오곤 했었
는데, 그 때 그 짜릿한 쾌감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될 정도로 필
자를 흥분케 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며칠 뿐, 호텔 지배인이 나의 숙식 해결 방법을 알
아내곤 저녁 때만 되면 햄버거 집으로 데려 가서 맛없는 햄버거를
사 주려고 하는 것이다
두어 번 그렇게 햄버그를 얻어 먹으니 도무지 미안해서 그곳 호텔
에 머무를 수가 없게 되었고, 결국 필자는 거리의 부랑자처럼 지
붕 없는 곳을 하염없이 거닐게 되었다
그렇게 이틀쯤 굶고 다녔을까… 자정도 훌쩍 넘긴 시각에 필자를
딱하게 바라보던 교포 아주머니 한 분이 나의 손을 잡아 끄는 것
이 아닌가
필자는 염치 불구하고 그 교포 아주머니를 쫓아 가게 되었는데, 때
마침 빈 방이 없었는지 필자는 창고에서 잠을 자게 되었다
전등도 꺼진 컴컴한 창고에서 매트리스 위에 몸을 눕혔지만, 그 창
고는 필자에게 호텔방처럼, 애인의 품처럼, 아늑하기만 했다
그렇게 실컷 잠을 잔 후 일어나 보니 모텔은 텅 비어 있었고, 필자
가 잠을 잔 창고 속은 그야말로 온갖 잡동사니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배는 고프고, 샤워부터 하고 싶었으나, 불청객인 필자 처지로서는
뭔가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부터 하게 되었고, 창고 속에 어지럽
게 널려 있는 잡동사니들을 깨끗하게 정리하게 되었는데…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그 교포 아주머니는 샌드위치와 주스를 들
고서 빙긋이 웃고 있지 않은가
염치 불구하고 필자는 그 교포 아주머니 숙소를 구경하면서 샌드
위치도 먹게 되었고, 그 교포 아주머니가 주인이 아니고 종업원이
란 사실을 알고 더욱더 미안해 했었는데,
그러나 필자가 정말 미안해 할 일은 그 때부터 시작되었다
갑자기 주인 할머니께서 창고 속의 잡동사니 중에 이것 저것 찾아
오라고 하였고, 아주머니는 위치가 달라진 잡동사니들을 찾느라
고 온통 먼지 범벅이 됐던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필자는 주린 배를 채운 후에 느긋하게 샤워를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나중에야 그 사실을 알게 된 필자는 그곳에서 며칠간 아무런 대가
도 바라지 않고 일을 해 주어야겠다고 마음 먹게 되었고, 그 덕분
에 필자는 며칠간 숙식 걱정은 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다
필자가 왜 이처럼 구차한 이야기를 디테일 하게 써 내려 왔는가 하
면, 필자는 바로 그 부분에서 필자의 인생 지표를 하나 얻었기 때
문이다
짤막한 결론이지만, 잔잔한 감동이 일렁이는 필자의 인생 지표 하
나를 그렇게 갑자기 얻은 후, 필자는 미련없이 무전여행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생각을 했었다. 언젠가는 이 잔잔한 감동을
꼭 수필집에 담겠노라고…
사막에서 며칠씩 헤매어 보지 않은 사람은 사막의 그 삭막함과 쓸
쓸함을 모른다
무전여행을 하면서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 낮선 곳을 방황해 보
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어디에도 갈 곳이 없는 서러움에 관해
서…
그리고, 민족적 자존심 때문에 구걸조차 할 수 없는 그 배고픔을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 수 많은 얼굴들 속의 아리송한
미소에 관해서…
그러한 와중에 필자는 컴컴한 창고 속에서 포근하게 잠을 자게 되
었고, 그렇게 잠이 드는 그 순간에는 그곳이 호텔방 보다도 더 아
늑하게 느껴졌었다
비록, 그 방이 창고인 줄 모르고 잠이 들었으나, 그렇게 잠이 든 필
자를 바라보면서 미안해 하였을 그 종업원 아주머니를 생각해 보
면, 필자에게는 그 잠자리가 더욱더 값지고, 소중한 추억으로 남겨
진다
가는 정이 있으면 오는 정이 있다고, 필자는 허기진 배를 채우기
도 전에 온갖 잡동사니들을 정리하고, 그 덕분에 그 아주머니는 먼
지 속 창고를 헤집고 다니면서 할머니의 호령을 감당해야 하지 않
았던가
인생사란 것이 때로는 호의가 악의가 될 수도 있고, 악의가 때로
는 호의가 될 수도 있음을 필자는 그제서야 어렴풋이 깨닫게 된
것 같았다
며칠 굶은 사람은 눈에 뵈는 게 없어서 조폭이 먹고 있는 짜장면
그릇에 젖가락을 디밀게 되고, 쥐도 몰리면 고양이한테 뎀빈다고
하지 않던가
갈 곳이 없는 사람들, 갈 곳이 없어서 방황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은 컴컴한 창고조차 홀륭한 쉼터로 느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컴컴한 어둠은 이내 걷히게 되고, 누군가는 그 잡동사니
를 정리해야만 하는 것을…
그것이 나중에 악의가 될지 호의가 될지 당장은 모르겠으나, 이왕
이면 불청객이 정리하는 것 보다는 주인이 정리하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감동이 되지 않을까?
여권발급도 자유롭지 않았던 그 때 그 시절의 우리나라 현실을 감
안하더라도,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지구촌 가족으로서의 한국적
구성원 노릇이 얼마나 초보적이고 서툰 메너 속에 살고 있는지 고
민해야 한다
마음으로 우러난 호의라고 하여서 무조건 호의로만 상대에게 받
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호의가 악의로 돌변하게 되
는 절묘한 상황 속으로 빠져든다면, 그 또한 결코 세련된 의식의
행위는 아닐 것이다
그러한 관점으로 필자가 얻어 먹은 햄버그 사건을 고민해 보면 우
리에게 작지 않은 교훈을 주기도 한다
지금 생각해 보면 홍콩이란 나라가 왜 그리 관광객이 많은 곳인
지, 홍콩이란 나라의 관광객에 대한 메너가 얼마나 세련되어 있는
지 짐작하고도 남는 사건이었다
골치 아픈 필자를 그냥 내쫓기 보다는 싸구려 햄버그를 사주면서
미안해 하도록 만드는 그 세련된 메너에 필자는 쫓겨난다는 마음
하나 먹지 못하고 쫓겨나지 않았는가
물론, 그 호텔 지배인에게는 나름의 지구촌 한가족적인 우정도 조
금은 있었을 것이다
그만큼 그 당시의 필자는 젊고, 매력 있는 인물이었을 터이니 말이
다
그러나, 이 햄버그 사건과 교포 아주머니의 마음창고 사건을 돌이
켜 보면, 필자가 겪은 수혜적 정서의 주관적 관점 보다는 객관적
인 관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호의를 베푼 것이 호의가 되든 악의가 되든, 얼마나 깔끔한 정서
로 가슴에 남는 가가 더 중요한 것이니 말이다
한국인은 한국인을 바라보면서 뭔가를 느끼려고 하는 지구촌 가
족들에게 지금 어떠한 세련된 메너를 보여 주고 있을까?
한국인을 느끼려고 하는 지구촌 가족들은 지친이들도 있을 수 있
고, 갈 곳이 없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조그만 배려에 고마워
할 줄 아는 세련된 메너의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다만, 그들에게 한국인은 지금 어떻게 느껴지게 할 것인가를 고민
하지 않는 한국인이 있을 뿐이지…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는 며칠 신세를 지게 된 그 교포 아주머니
를 생각하면서 고마워 하지 않는가?
이십 년이나 지난 지금 이 순간에도 필자는 햄버그를 건네 주던
그 백안의 메니저를 고마워 하지 않는가?
한국인은 지금 어느 곳의 누구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하고 있는 것
일까?
우공이산의 즐거운산책로에서…
문화게릴라 시인 박재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