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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단상

남촌 0 1160
운동장 옆 느티나무 잎들이 내 심장소리를 따라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문득 박동소리가 좀 크다고 느낄 때마다 더 많은 잎새가 우수수 떨어집니다

가슴으로 어떤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무언가 눈가에

이슬 같은 것이 맺히는 까닭은 무엇인지요

오늘 아침은 늦가을답지 않게 포근합니다

떨어지는 낙엽들과 안개 속으로 희미하게 내려오는 가을햇살을 보니

어쩐지 우울해지고 자신이 초라해 보입니다.

멀어져 가는 계절이 심금을 울려 감상적인 마음을 품게 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 같습니다

아름다웠던 추억 속의 사람들이 너무 그리워서도 아닙니다

이제껏 살아온 인생이 나를 너무 속여 온 것 같아서 억울해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운동장에서 알아듣지도 못할 고함을 지르며 돌아다니는 아이들을 보니,

삶이 그렇게 어둡고 슬픈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암만해도 이제껏 내 마음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내 뜻대로 살았다면 지금 보다 더 행복하리라는 확신은 없습니다

세상살이에서 내 생각대로 사는 이가 많지는 않겠지요

(이런 생각을 한 이 순간만큼은 어느 정도 위로가 됩니다)

문득 문득 내 마음에 노크해 오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넌 역시 혼자야!’라는 암울한 생각 말입니다

‘참 허무하구나!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외로이 혼자 온 것처럼 갈 때도 그러하겠지’라고

지나치게 센티멘탈한 생각을 갖고 싶지는 않습니다

좀 더 부드러이 ‘올 때 그저 왔듯이, 갈 때도 그럴 것이다’라는 것이죠

죽을 때는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불안과 고통일거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세상 올 때 그 어떤 고통을 몰랐듯이,

갈 때에도 아무런 고통을 모를 것이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도 ‘어쩌면 나를 가장 모르는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슬픈 마음이 몰려왔습니다

‘오랫동안 같이 생활하였으면 서로의 마음을 더 잘 알 거고 서로 마음을 잘 맞춰 살 거다’라는 생각은

상식 같아 보이지만 실은 아니죠

같이 오래 살수록 더 모르고 멀어지는 경우도 참 많은 거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라는 생각으로 서로 포기하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서로를 잘 이해하는 양 하는 것이 삶의 방편이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인간의 일에는 상식 밖인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그저 깊이 모르고 살아가는 게 속이 편할 것 같습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조상들의 말씀이 일리가 있는 것이지요

세상에는 자유, 평화, 사랑, 진실, 행복, 도덕 등의 덕목이

과대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모르면서 아는 체,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것들도 많지요

늘 정해진 잣대로 선이니 악이니 하며 이분법의 칼로 막 내리치며 살기도 합니다

‘인간의 일들이 본래 이런 거지’하며 넓은 아량으로 넘길 문제도 아닙니다

그렇게 하며 살아가는 일도 얼마나 괴로운 일이데요

올 가을은 예년에 비해 더 길고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이런 계절의 부름을 따르지 못하고 어두운 표정을 짓는 것이 참으로 아이러니컬합니다

얼마 후 추위가 본격적으로 다가와 온 단풍잎 다 떨어뜨리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거라는 소망을 가져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 속으로 황량한 하늘만 보이고,

새하얀 눈으로 세상을 같은 빛깔로 만들어 버렸을 때를 기다릴까요?

눈에 아무것도 차오지 않으면 생각도 없어질지 모르지요

삼라만상이 꽁꽁 얼어 붙어버리면 마음도 얼어버려

어떤 생각도 한동안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무 아래 가지에는 여전히 아쉬운 미련을 버리지 못한 잎들이 붙어 있습니다

바람에 언제 떨어질 줄 모르고 한들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워 보입니다

억지로라도 기쁜 마음을 품어 보았으면 합니다

인생은 늘 새롭다는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참으로 행복한 이들입니다

그런 이들은 마음먹기에 따라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정신과 신체의 협응이 참 잘되는 사람들입니다

몰라서든 속아서든 무조건 행복한 마음이었으면 합니다

고통 뒤에 기쁨이 온다는 말을 믿고 싶습니다

저렇게 갈바람에 떨어져 내리는 잎새들은 힘이 없어서도 아니요,

생이 끝나서도 아닌 거라는 걸 진심으로 믿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 나무들이 다음 해에는 올해 보다 더 많고 아름다운 잎들을 가지기 위해,

고운 옷을 입혀 잠시 땅으로 소풍 보낸다는 생각을 하기 원합니다

어느덧 내 심장의 뜀박질 소리에 맞춰 잎들이 떨어진다는 생각은 멀어졌습니다

반대로 바람을 따라 불규칙적으로 떨어지는 잎들을 보고

내 가슴도 뛴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가지에 같이 붙어 있던 은행잎도 같은 시간에 함께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이 외롭다는 것은 남이 자기 자신을 몰라주어 불행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자유’라는 것으로 재해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자유로워야 한다면 서로를 잘 모른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저 잎들이 지금 불어오는 바람에 지건, 다음 바람에 지건 그것도 자유이지요

나뭇가지에 붙은 잎들이 바람 때문에 위태로이 나풀거리고 있든지,

끝내 땅으로 떨어지든지, 땅에 수북히 쌓여 있든지

아니면 이곳에서 저곳으로 휘날려 다닐지라도 그 모습은 다 곱습니다

누가 이런 말을 해서 기분이 좋고, 저런 말을 해서 기분을 상했다는 것은

내 자신이 어떤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일 겁니다

나 자신이 내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려고 해서는 안되고,

내 마음이 흐르는 대로 모든 것을 믿고 내버려두었으면 합니다

학년실에 들어온 후 자리에 앉으니 눈앞으로 창밖이 절로 들어옵니다

저곳도 아주 바쁩니다

늦게 물든 은행잎들도 지기 시작합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느낌을 한마디로 말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억지로 말을 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느낌이 들더라도 구애받지 않으려 할 따름입니다 (03.11월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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